상처받은 나는 성당을 걸었다

22. 승리의 노래 - 신천동 성당

by 작약

역시나 다운된 기분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성당 메인 출입구에 딱 이 구절이 보였다.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주님께서 너를 부르신다.”


‘좀 기운 내 보는 게 어떻겠니…?’가 아니라 그저 자리에서 발딱 일어서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주시는 건지,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 내 생각인지 아닌지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명쾌하고 직접적인 이것은 명령이었다.


image.png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연주자가 파이프 오르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남성 호르몬이 치솟는 줄 알았는데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듣자마자 울컥해졌다. 일요일 부활절 미사를 위해 연습하고 있는 듯했다. 위풍당당한 곡은 승리를 축하하듯 온 성당에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검색기를 돌려 곡목을 검색해 보니 ‘헨델의 오르간 콘체라토’라고 했다. 예전에 ‘왜 남자인데 어머니로 부를까’만이 내게 관심사였던 헨델은 정말 ‘음악의 어머니’가 맞긴 한 것 같았다. 수백 년이 흘러도 이렇게 듣자마자 지나가던 평신도의 가슴을 묵직하게 두드릴 수 있으니 말이다.



성당은 육각형의 천장이 상당히 높게 설계되었는데 매우 구조적이며 입체적인 느낌을 주었다. 인상적인 것은 제대 앞 십자가 상이었다. ‘저것이 십자가상 맞아?’ 하며 언뜻 보면 지나칠 정도로 단순화한 모습이었다. 몇 번을 다시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예수님은 마치 이태리 피노키오 상처럼 애처로이 매달려 계셨다. 벌 받는 어린아이처럼 너무나 여리고 미약해 보였다. 그 작은 모습 뒤로 여전히 들리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엄숙한 울림을 자아냈다. 약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부활의 승리를 보여주셨으니 너도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image.png


오는 길에 석촌 호수를 들렀다. 이미 벚꽃들은 만개하여 하늘과 내 시야를 가렸다. 인간이 절대 만들어내지 못할 자연의 경이로움이었다. 귓가에는 계속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승리의 팡파르처럼 울리고 그래서 나는 또 하루를 버틸 만큼의 희망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