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프리지어 꽃을 보며 - 잠실 성당
시작은 좋았다. 전철역 계단을 올라오니 프리지어를 한 단씩 묶어 파는 꽃집이 보였다. 그 샛노란 빛깔만으로 봄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성당에 가기 전 버거집에서 아침을 먹으며 폰으로 영상을 보았는데 그때부터 가슴이 벌렁대기 시작했다.
빨리 끝났으면 하는 중동 전쟁은 길어지고 이제 우리 일상도 위협받고 있었다. 당장 쓰레기봉투 묶음을 1인당 하나씩밖에 안 판다는 얘기가 들렸다. 샴푸도 치약도 미리 사두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얼마 전만 해도 사재기를 하지 말라고 들었는데 말이다. 항공유 가격 부담으로 비행기 운항 취소 또한 속출한다고 한다. 경제는 IMF때만큼이나 심각해질 거라는 예측까지 돌았다.
코로나 끝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더구나 IMF때는 처음 보는 극심한 경제적 타격에 다들 기가 차 멍하니 앉아만 있던 기억이 났다. 뭘 하려고 해도 손에 잡히질 않았고 사실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가만 보면 지금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발생한 일은 아직 없지만 뭔가가 터질 거라는 불안이 문제였다.
성당 안에 들어와서도 여전했다. 숨이 거칠어지며 가슴이 계속 벌렁거렸고 불안은 겹겹이 엄습해 왔다. 지금 내 가정도 수습이 안 되어 성당을 찾았는데 이젠 세계를 걱정해야 되나….
성당 내부는 경사면과 천정이 온통 목재로 둘러싸인 구조였다. 특이한 것은 정면 제대의 십자가 위 예수님에 동그랗게 비친 조명이었다. 조명은 딱 예수님만을 향했는데 잠시 바라보자니 마치 천국에 뚫린 작은 구멍 같았다. 하늘에서 그 옛날 골고다 언덕 위의 예수님만 내려다보셨다면 딱 저런 모습일까. 수난주일이라 십자가 위 예수님을 좀 더 와닿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들리는 말씀도 없었다. 나는 계속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생각나는 것은 가슴이 벌렁거릴 때마다 떠올리는 찬송가였다.
‘내 주를 가까이하려 함은’.
영화 ‘타이타닉’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연주한 그 곡이었다. 실제 재난 때도 연주자들은 끝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고 생존자들이 증언했다. 그래서인지 곡을 들을 때면 그야말로 가슴 묵직한 안정감이 든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줄 수 없는 안정감이었다. 이 불안이… 고통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든 삶은 하늘의 섭리 하에 있다는 것.
책상 위에 올려놓은 어제 아침 묵상 캘린더는 이것이었다. 그림이 귀엽기도 하고, 주는 메시지가 희한하게도 불안과 걱정의 무게를 생각보다 빨리 덜어주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정할 수 없는 일이 우리 삶엔 너무도 많다. 내 얼굴도 키도 이름도 부모 형제도 질병도 내 죽음까지 (수술과 개명과 자살은 제외하고 말이다) 마음먹었다고 내가 딱딱 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2022년 12월 초 나는 마침내 항복 선언을 했다. 내가 계획한 수십 년의 모든 시도가 어그러졌을 때 현실 곳곳이 막히고 기력이 다 빠져버린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었다.
‘항복! 하느님… 항복이요. 저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으니 도와주세요. 하라시는 대로 할게요.’
밖을 나오자 성당 건물 위에 닭이 보였다. 방향을 제시할 때 표시판처럼 봐온 것이라 별 주목을 하지 않았다. 건물 밑에 해설을 보고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베드로는 평생 닭 우는 소릭만 들으면 회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 했다. 신심이 깊었던 옛사람들에 따르면 아침은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께 속한단다. 하루의 시작인 데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시간 역시 아침이라 하루 중 가장 고귀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뚝 선 저 닭이 이른 아침 우릴 부른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침으로 속죄의 정신을 지니고 오라’
불안 속 세상의 걱정에 휩싸이기보다 다 맡기라 하셨다. 내 주어진 상황을 보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회개한 뒤에 하늘을 바라보라고.
지난 세기 ‘프리지어 꽃향기를 내게 알려준…’ 노래가 거리마다 울려 퍼졌을 땐 참으로 세상 걱정 없이 놀기 바빴었는데. 지금은 뭘 그리 걱정하고 불안에 떨 일이 이렇게나 많은가….
이런 마음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저 당당히 선 꼬꼬닭이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의 벌렁거림은 멎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