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내 맘 속에 상처 - 천주교 논현동 교회
카페 바로 뒤편 작은 성당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입구에 있는 표지석이었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다녀가셨다는 성당이었다. 그리 유명한 성당은 아닐 텐데 거기다 규모 면이나 동선으로 봐도 왜 굳이 빌딩들 사이 작은 성당을 방문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오래전 교황님이 서울에 오셨을 때 그야말로 난리가 났던 것을 기억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신자들 - 수십만 명 이상 당시 한국 최대 규모 행사라고 한다 - 이 축복을 받으려고 여의도 광장을 찾아갔고 뉴스에 연일 보도되었다. 내겐 없었지만 애들마다 교황님의 얼굴이 담긴 책받침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얌전히 갖고 있는 애는 드물었다. 남자애들은 서로의 책받침을 깨뜨리는 싸움을 하거나 눈과 귀 부분 인쇄를 샤프로 벗겨내어 교황님의 얼굴을 경쟁하듯 괴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때 교황님이 한국 순교자 103명을 성인으로 공식 선포하러 오셨음을 꽤 긴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성당 내부는 나의 어릴 적 성당 같은 인상이었다. 차분하고 소박했다. 여기도 역시 자매님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계셨다. 평소에는 당황하여 간단히 기도만 하고 자리를 피하는데 오늘은 왠지 그분들 기도를 듣고 싶어 자리에 머물렀다. 성모송을 외우시며 중간에 짧은 찬송을 부르셨다.
‘어머님께 청하오니 내 맘 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마음에 깊이 새길 것은… 내 상처가 아니었다. ‘주님의 상처’였다. 맘 속에 내 상처를 깊숙이 아로새기고 또 그것을 순간순간 들추다 새로 상처받고 주변에 그 독을 뿜을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려다 그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하신, 어쩌면 세상 가장 억울하시게 상처를 받으신 분을 기억하는 게 우리 몫이었던 거다. 다시금 깨달으면서도… 아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성전 밖에는 미소 짓는 교황님의 동상이 있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 그 쉬운 말이 참으로 쉽지 않다. 감사하고 행복해야 되는데 순간 그러다가도 다시 돌아서면 언제나 제자리다. 예전에 교황님 사진이 담긴 책받침을 그렇게나 못 살게 굴던 짓궂은 애들은 지금 행복할까. 다들 또 다른 애들의 아빠가 되어있겠지. 이 나이를 먹으면 안정을 찾고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나보다 젊은 세대의 귀감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귀감은 무슨…. 순간순간 ‘될 대로 돼라’고 엇나가고 싶은 충동이 사춘기 때보다 더할 때가 있다.
긴 한숨을 쉬고 밖으로 나왔다. 봄이었다. 달라진 공기와 햇빛 아래 성모님이 환한 모습으로 서 계셨다.
‘성모님이 좀 빌어주세요…. 제가 지금 그게 너무 안 돼서요. 제 마음과 제 가정과 이 어지러운 세상을 위해 성모님이 같이 빌어주세요…’
잠시 성모님을 바라보다 꾸벅 하니 고개를 숙이고 밖을 나섰다. 낮은 더워져서 카디건을 벗어야 할 판이었다.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었다. 새로운 계절… 새로운 시간…. 나는 준비가 돼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