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창조주의 자궁인 듯 - 천주교 논현 2동 성당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라 밖은 무척 북적거렸다. 이제 봄기운을 확연히 느낄 만큼 따뜻해져서 거의 모두가 손에 커피를 들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오자 세상 소음이 차단되었다. 복도 한 편에 ‘가나의 혼인 잔치’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 이 장면은 다른 성당에서 본 일이 없었고 성모님이 정말 아들 부르듯 예수님을 부르시는 듯한 모습이 처음이라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좀 더 깊이 안으로 들어오자 아주 모던한 성 모자상이 보였는데 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라 이 또한 인상적이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마치 아이가 그린 듯 단순화되어 있었는데 여기 성당의 전체적인 분위기인 것 같았다.
그리고 독특한 부조에 눈길이 갔는데 어떤 절망에 빠진 여자가 주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 같네.’
작품을 보자마자 마음속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여인이 사람들에게 돌을 맞을 뻔한 그 여인인지 혈우병에 걸린 여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여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다출혈로 인한 수십 년의 고통 때문일까. 아니면 물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는 지금의 삶 때문일까. 불이 꺼지듯 점차 시야가 좁아지고 경직된 팔다리가 실제 오그라들 만큼의 통증으로 평생 힘들었다. 나중엔 극심한 출혈로 심장으로 가는 피가 모자라 호흡곤란이 왔고 수혈과 수술과 시술이 이어졌다. 그 답답한 순간에 희한하게도 뭔가 희망적인 의심이 들었다.
‘하느님이 정말 나를 정금과 같이 쓰시려고 이렇게까지 하시나…?’
결국 지긋지긋한 올가미에서 벗어났지만 또 다른 핵펀치들이 기다리고 있던 걸 그땐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늘의 도움을 구하며 지금도 한 손을 내미는 중이었다. 아니면 남들 일할 때에 온 성당들을 이리 찾아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내부 환한 성전이었는데 아치와 겹겹의 포물선들이 부드럽고 편안한 마음을 느끼게 했다. 마치 조물주의 하얀 자궁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하느님은 아버지라시니 어폐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를테면 ‘나’라는 생명을 품은 곳이 창조주 소유였다는 말이다.
그렇게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자니 말씀이 떠올랐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생명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까지 관할하시는 분의 아들이 그러시다는데 무슨 토를 달 수 있을까. 무력하고 머리 굴릴 힘조차 잃은 나는 그저 그 안에 가만 앉아있었다. 가만히 잠잠히… 지금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또 그러길 바라시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서툴지만 온전히 하늘에 맡기는 연습 중이다. 조바심이 나거나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순간순간 갖가지 방해가 밀려들지만 애써보고 있다. 하늘에서 다 지켜보신다니 오늘도 또 한 번 믿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