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나는 성당을 걸었다

1. 말씀을 주세요 - 용인 신봉동 성당

by 작약

일 년 넘게 감정의 소용돌이에 시도 때도 없이 숨이 찼다. 나의 삶은 턱 밑까지 지하로 빨려 들었다. 평생 우울했지만 태어나 가장 격하게 느낀 울분과 환멸과 자기 파괴의 시간이었다. 그 후 새해 들어 몇 가지 상징적인 꿈을 꾸었다.

‘이제는 정결하지 못한 그 땅에서 빠져나오라’. AI가 벌레떼에 몸이 물어뜯긴 꿈을 성경적으로 해석해 주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이 메뚜기떼에 덮인 이집트를 빠져나오듯 더럽혀진 감정의 구렁텅이에서 이제 너는 나올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에게 종속되어 가는 건가. 너무 핵심을 찌르는 맥락에 섬뜩해졌다. 그래서 직접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진짜 마음만 먹지 말고 성당들을 찾아 나서는 거야.


친구가 사는 용인으로 향했다. 긴 간병과 일상의 무게에 지친 친구가 성당으로 가는 길을 함께 해주었다. 내 가까운 이들은 긴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몇몇 이미지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4학년때의 친구는 바다색 푸른 외투에 하나로 길게 땋아 내린 머리를 옅은 노랑 방울로 묶었다. 왜 그 모습이 오랫동안 남았을까.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 친구는 아직 곁에 있고 어느 순간 나는 이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너와 길게 갈 사람을 알아보라는 하느님의 선택.


image.png


용인 신봉동 성당은 전체가 둥글고 아담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호기심이 일었다. 마침 그 친구 아버지의 고교 친구분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신 김인중 신부님이라고 했다. 프랑스에 유학하시고 전시회와 더불어 작품을 많이 남기셨다고 들었다. 이런 인연이라니 첫출발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image.png


성당 메인홀은 하얀 아치를 이루고 있었다. 중앙에 커다란 스테인드 글라스가 자리했고 주변에 좁은 직사각형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이 줄지어 있었다. 그것은 12 사도들을 상징한다고 했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흔히 보던 고전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갑갑하게 좁은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았고 자유롭게 흩뿌린 마블링 기법과 비슷했다. 널찍하니 보기에 시원했다. 채도가 높아 산뜻했으며 오색이 주를 이루었는데 좁은 창들은 주로 푸른색과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창은 자연광으로 밝게 빛났고 글라스의 색깔들은 제각기 유영하다 부딪히며 또 다른 움직임과 색을 자아냈다. 자유롭게 춤추듯 빛났고 한편으론 사이사이 핏기를 품고 있었다.


중앙의 메인 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몸을 나무인지 쇠인지 재질은 알 수 없었으나 가는 철사롤 얽어매듯 거칠게 표현했다. 그것은 채찍으로 수없이 맞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 손상된 몸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리고 군데군데 그 비어버린 몸 사이로 붉은 색깔이 예수님의 피를 머금은 듯 투과되었다. 성당의 글라스들 중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붉은빛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강렬하고 선명한 십자가의 상징이었다.


나는 그 밑에 앉아 기도했다. 거창한 기도는 아니었다. 그런 기도는 할 줄도 몰랐다. 그저 가족을 지켜달라고 그리고 주변에 복을 달라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저를 인도해 달라고 했다.

‘말씀을 주세요.’

지금부터 하려는 일이 단순히 개인적인 셀프 치유의 목적인지 아니면 나아가 의미가 있는 건지 보증이 필요했다. 마치 초등학교 때 내 일기를 봤다고 공책 아래 선생님이 찍어준 커다란 보라색 도장처럼. 그리고 그 유명한… 하지만 이제까지 내겐 그리 와닿지 않았던 말씀이 마음에 떠올랐다.


image.png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와… 달라니까 진짜 바로 주시네. 이것은 내 인생에 매우 드문 경험이었다. 가고 싶은 길을 가게 해달라고 20세기말부터 30년의 시간을 기다린 내게 이 즉각적 응답은 정말이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남들 눈에 미련스럽게 보이고 스스로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 길을 놓지 못하는 내가 지긋지긋하게 답답했다. ‘안 해! 안 해! 이거 못 한다고 내가 못 살 것도 아니고….’ 하면 SNS, O튜브, TV 방송, 신문 전면의 기획 기사까지 눈에 팍 띄게 하셨다. 도무지 손에 놓지도 못하게 하시면서 길은 도통 안 열어주시는 하느님에게 난 속으로 외쳤다.

‘더 어쩌라고요…?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이렇게 흰머리가 늘어가는데 누가 할머니랑 일하고 싶겠어요….’


그런 분이 이렇게 바로 답을 주시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못 믿겠고 세상이 싫고 사람이 싫고 이런 나 자신이 아주 싫어진 나는 이 길을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릴 때, 삶이 버겁고 공허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씀이라고 AI가 또 거든다. 아직도 말씀의 뜻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방향은 맞다고 인증받았으니 가보기로 한다.

홀 밖에는 아주 인자한 모습의 모자상과 아름다운 성모상이 있었다.


‘제가 가야 할 길을 잘 가게 빌어주세요’ 가끔 갈 길을 삐끗하곤 하는 내가 말했다.

밖의 공기는 상쾌했고 하늘도 파랗고 맑았다. 성당 입구에 전사 같은 천사 미카엘상이 보였다. 이런 천사상도 처음 본다는 나의 말에 성당마다 꽤 있다고 친구가 말했다. 자신의 세례명이 ‘미카엘라’라 사는 게 전쟁이라는 친구가 말이다.

이 시기가 지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바라며 성당을 나섰다.


image.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