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옛날에 그 먼 길을 대체' - 용인 손골 성당
친구가 신봉동 성당을 가본 뒤에 가까이에 있는 ‘손골성지’를 가보자고 했다.
‘성지? 그건 계획에 없던 건데… 가까이 있으니.’ 내가 그럼 거긴 순교지냐고 묻자 친구가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성지라고 했으나 난데없이 좁은 주택길 오르막에 있었다. 주택들은 최근에 생긴 것 같았고 허름한 장소는 새로 지은 성당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주차장 주변은 이틀 전 내린 눈으로 덮여 있었다. 돌계단과 두 팔을 벌리신 예수님상이 보였다. 작은 기념관으로 가자 하얀 벽면에 1860년대 한국을 찾으신 프랑스 두 신부님의 조선입국경로가 그려져 있었다. 말이 안 되는 멀고 먼 거리였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둥글게 에워싸는 화살표만 봐도 입이 안 다물어졌다. 어떻게 저런 행로가 가능했을까. 비행기도 없던 160여 년 전에.
붉은 벽돌의 작은 성당 앞에는 성 김(도리) 헨리꼬 신부님과 성 오 (오 매트르) 베드로 신부님 외 순교자들을 모신 순교자들의 길이 있었다. 성모상과 함께 매우 큰 십자가상이 있었는데 매달리신 그리스도 모습에 눈길이 갔다. 주변엔 눈이 쌓였지만 이 길은 햇살이 따스했고 두 마리 고양이들도 기분 좋은 듯 서로 비비고 있었다. 뭐 사실 나는 특히 검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 따스함과 평온함을 그 애들도 느끼는 게 분명했다.
오랜만에 보는 너무 작고 아담한 성당이었다. 나는 작은 성당을 좋아한다. 물론 크고 웅장한 규모의 성당도 좋아한다. 요크와 스트라스부르에서 대성당을 본 적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대성당은 그 압도하는 규모만으로 숨소리를 죽이게 된다. 아울러 ‘난 역시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구나’란 겸허함을 느끼게 한다. 이 안에 거의 수백 년 아니 천 년에 걸쳐 얼마나 많은 스토리가 담긴 걸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 또한 고개를 든다.
작은 성당만의 매력은 작음 그 자체이다. 가운데 십자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 하느님과 좀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다. 난 평소에는 하느님이 두렵지만 성당 안의 십자가상 앞에 앉으면 그렇진 않다. 그 고양이들처럼 편안하고 평소의 나와 달리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다. 아마 어렸을 적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다. 6살 때였는데 내가 처음 다니던 작은 성당은 노란 불빛 아래 따스했고 거기선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았다.
손골성당 안은 나무 지붕과 조선 시대 순교자들을 담은 스테인드 글라스로 빛났다. 나는 아까처럼 ‘이 성당에 대한 말씀을 주세요’하고 기다렸지만 딱히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앞에 있는 기도책을 펼쳤는데 손골성당과 관계된 신부님들에 대한 특별 기도책이었다.
김 헨리코 성인이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가 있었다.
‘… 저는 하느님 형상대로 창조된 이 영혼들을 내버려 둘 용기가 없습니다…’
1862년이었다. 신앙은커녕 하루 먹고사는 것도 해결이 안 돼 거친 풀뿌리를 캐어 연명하던 이들에게 어느 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서양의 신 예수를 믿으라는 몸짓은 얼마나 이상하게 비췄을까. 그리고 말도 안 통하는 동양의 저 끝 나라 가난한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신부님의 노력은 얼마나 벽에 부딪혔을까.
같은 시기 성 오 베드로 신부님은 자신의 부친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 하느님께서 이리 오라 하시면 이리 오고, 저리 가라 하시면 저리 가며, 이것을 하라 하시면 하는 착한 종이 되게 해 주소서.’
낯선 땅 그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 속의 순종이란 이런 거구나. 배우 그레고리 펙이 신부님 역으로 주연했던 영화 ‘천국의 열쇠’가 떠올랐다.
1865년 헨리코 신부님은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 저는 이 작은 외딴 마을에서 행복하게 지냅니다. 아마 프랑스에 있었다면 이처럼 행복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이 그토록 행복했을까. 이 나라 언어를 배우고 조금씩 다가가려는 신부님의 노력에 마침내 마음을 열고 신심이 강해져 가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일까. 우리가 지금도 가고 싶어 하는 프랑스 자신의 나라에서 얼마든지 편하게 선교할 수 있었을 텐데 대체 어떤 부르심으로 그 옛날 그 먼 길을 찾아 고생을 자처했을까.
그분들은 1866년 병인박해 때 거의 참수당하셨다. 그냥 참수도 아니고 군문효수형 – 군문에 머리를 매다는 형벌이었다.
“스물일곱이야. 겨우 스물일곱이었어.”
성당 밖을 나와 탑 모양의 현양비 앞에서 친구가 말했다. 낯선 땅에서 자신의 젊음을 갈아 믿음을 전한 대가는 그렇게도 이른 죽음이었다. 그 치열함을, 숭고함을 그 나이의 갑절을 먹어도 이리 어리숙한 범인(凡人)이 무슨 수로 헤아릴 수 있으랴.
현양비 꼭대기에는 작은 돌 십자가가 있었는데 도리 신부 부모님이 사용하던 맷돌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내 시선은 현양비를 넘어 작은 돌계단으로 향했다. 만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올 법한 작은 돌다리도 있었다. 신부님들의 고향인 프랑스 시골을 본뜬 걸까 싶었다. 돌계단과 돌다리에 살포시 눈이 쌓인 풍경은 빈티지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앙증맞고 예뻤다.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몇 개의 계단을 올랐다.
적당히 차가운 공기와 맑은 하늘, 눈 덮인 돌다리와 한적한 성당… 그 몇 분의 시간이 한없이 타들어가던 지난 삶에 크나큰 위안이 되었다. 어둡고 더럽고 짓이겨진 상처를 흰 눈은 그렇게 조용히 덮어주었고 들이마신 깨끗한 공기는 내 안의 부패한 잔해와 교체되었다. 두 팔을 벌린 예수님 상을 보자 느닷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이 말씀이었잖아. 아까 성당 안에서 기다려도 말씀을 받지 못한 이유를 퍼뜩 깨닫게 되었다.
뜻하지 않은 힐링이었다. 오랜 친구가 안내하는 작고 작은 성당. 그 안에 빛바랜 듯 오래되었지만 오로지 순종을 향한 열정이 있었고 세상의 결말과는 다른 위대함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는 눈 덮인 덤불 위로 이제는 그만 힘들어하고 내게로 오라는 두 팔 벌린 예수님의 모습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