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나는 성당을 걸었다

3. '순교자들의 꽃' -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by 작약

“거길 오늘 꼭 가야겠어?”

영하 12도의 한파였다. 김밥 롱패딩에 꽁꽁 싸고도 추위를 타는 남편이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그의 팔짱을 끼었다. 남편은 신자가 아니다. 하지만 성탄절이나 부활절에 가족 모두 성당에 간다고 하면 잘 따라나섰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 몰아닥친 이번 한파로 기꺼이 나의 순례에 함께 해주었다.


급한 오르막에 ‘중림동 약현성당’이 있었다. ‘약현’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예전에 약초밭이라 유래되었다는데 여길 오르면 조선시대 서소문 사형집행장이 잘 보인다고 했다. 사형집행장이 잘 보이는 전망이라니. 끝내 믿음을 지키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오래된 성당이라곤 명동성당밖에 모르던 나는 이곳이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붉은 벽돌의 고딕 건물이 1892년에 명동성당보다 먼저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라고 했다. 어디가 입구인지 몰라 헤매다 최양업홀이라 써진 곳의 문을 열었다. 황금색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는데 마침 연주자의 장중한 연주가 울려 퍼졌다. 요즘 하루하루 버티느라 하느님의 계시에 민감해진 내게 환영 인사처럼 느껴졌다.


건물을 나와 오르막을 조금 오르자 뾰족 지붕에 붉은 성당이 보였다. 공기도 하늘도 너무 깨끗해서 푸른 하늘 아래 성당이 돋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라기엔 그리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아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내부는 고전 양식이었고 제대 뒤 스테인드글라스를 향해 지붕의 선들이 뾰족한 아치를 이뤄 시선이 모아지는 구조였다. 각각 양쪽에는 아기 예수와 함께 한 성모님과 성 요셉님이 보였다.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세 부분으로 크기가 크지 않았지만 매우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십자가를 향해 성령님의 상징인 흰 비둘기가 날아오는 모습이었다.



멀리서 어색해하는 남편을 앞으로 불러 앉혔다. 맨 앞자리에서 나는 남편에게 본인의 분노를 내려놓으라고 했고 나 자신도 성령님에게 속을 털어놓았다.

‘이 고집쟁이에게 언젠간 성령님이 임해주세요. 그리고… 용서가 안 되는 다른 사람도… 본인이 두려워 정말 불안을 어찌할 바 모르고 잘못된 방식으로 살아온 거라면…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저는 못 하겠으니 도와주세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밖으로 나와 언덕을 조금 올라가자 뒤편에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이 보였다. 박해는 지난 순례에 접한 1866년 병인박해뿐 아니라 정조의 승하 이후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특히 119명의 순교자를 낸 기해박해는 경기 서울에서 크게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천주교는 오히려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남은 이들은 산간벽지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한복 차림에 십자가를 손에 들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순교자들, 그리고 이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오래된 서학서와 교리서도 볼 수 있었는데 크기는 정말 작았고 한글이었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작은 책자를 소맷부리에 숨기고 믿음으로 굳건히 무장한 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너무나 큰 비극 앞에 개인의 고난은 작아지나 보다. 세상의 안위를 뒤로 하고 목이 잘려 나갈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수백의 이름과 그들의 삶을 접하자 내 고통의 무게는 조금 덜어졌다. 미사 전 기도 때 순교자들의 이름이 길게 나열되면 조금 지쳐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들의 순교를 지켜보신 하느님은 진정 기특하여 미쁘셨을까 아니면 같이 슬퍼하셨을까.


주변의 초가와 논밭 위 올라가는 오솔길 끝에 자리한 성당은 1998년 일어난 대화재로 대대적인 복구공사를 거쳤다. 세월이 그리 느껴지지 않는 성당 외관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남대문과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에서도 느꼈지만 늘 그 자리를 지키던 상징적 건물이 화염에 휩싸였을 때 지켜보는 이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지는 쉽게 상상이 갔다.


밖을 나오자 성당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지만 꼿꼿하고 균형미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1892년 이래로 이 오르막을 지키며 혼란스러운 조선 말기, 전쟁과 발전을 겪은 20세기 그리고 21세기 로봇과 인공지능의 시대까지, 시간을 아우르는 역사 앞에 여전히 단단한 모습이었다. 오래전 순교자들이 믿음을 지켜주어서 그리고 약현성당이 아직도 우리를 지킬 듯 버텨주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남편과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작고 소중한 이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남편의 굳은 마음에도 빛이 임하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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