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주 찾는 시흥갯골생태공원에 최근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주차장 진출입로에 생긴 주차차단기입니다. 지금까지는 누구나 무료로 주차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용 시간에 따라 돈을 내야 합니다. 시흥시는 방문객이 늘었고 주차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주차장을 유료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민들이 모처럼 마음 편히 쉬고 뛰놀 수 있는 공간조차 돈을 내야 한다니……. 오랫동안 방치되는 차량을 막기 위한 취지는 이해되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새로운 제약이라는 생각에 착잡했습니다.
더 씁쓸했던 건 이렇게 뭔가를 막는 장치가 곳곳에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아파트 진출입로에도, 건물 주차장에도 어김없이 주차차단기가 설치돼 있습니다. 주차차단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건물 내부 화장실은 도어락으로 잠겨 있습니다. 해당 건물에 입주해 있는 사무실이나 매장을 이용하는 사람만, 즉 비용을 지불한 사람만 쓰라는 거겠죠. 택배 기사에게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내라는 아파트까지 있습니다. 이 모든 행위는 ‘합법적인 재산권 행사’, ‘관리의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설명됩니다. 모두에게 개방되면 함부로 사용한다는 거겠죠.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신뢰’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1995년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규정했습니다. 책이 출간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후쿠야마 교수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신뢰가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여러 사회 지표들을 봐도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는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저신뢰 사회의 단면은 주차차단기처럼 자유를 제약하는 장치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문제는 합리적인 것 같은 이 장치들이 모든 이들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겁니다.
주차차단기가 생긴 이후 갯골생태공원의 차량정체는 더 심해졌습니다. 사람이 몰리는 주말에는 주차요금 결제를 도와주는 사람까지 동원되고는 합니다. 주차차단기가 고장 났을 때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건물에 입점해 있는 매장을 이용하면서도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비밀번호부터 확인한 뒤 가야하고, 길을 가다 정말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 할 때도 굳게 잠긴 문 앞에서 주저앉아야 할지 모릅니다.
최근 이웃 간의 층간소음이 칼부림으로 번진 기사를 보면서 주차차단기가 떠올랐습니다. 이웃 간에 충분한 소통이 있었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면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웠습니다.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던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위층에 사는 아이를 만난 뒤 마음이 누그러졌다는 사연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낭만적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이 해결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 가까이 돼 가면서 마음의 거리도 그만큼 멀어진 것 같습니다. 모두가 힘든 상황이다 보니 ‘신뢰’ 같은 가치는 우선순위에서 더 멀어지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법대로’라는 말에 기대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조폭 ‘덕수’는 함께 게임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우승하는 데 집중합니다. 역설적인 건 본인도 누군가가 자신을 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됐다는 겁니다. 어느 때보다 경제적, 사회적 불확실성이 높은 지금, 서로 믿고 연대한다는 건 생존을 위해서라도 ‘선택’이 아닌 ‘필수’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