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
언문일치와 사소설의 시작이자 일본 근대문학의 효시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시점으로 인간의 일상을 포착한 120년 전 소설이다.
‘나는 인간과 동거를 시작한 뒤로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그들이 매우 방자한 존재하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라고 인간을 시니컬하고 어쩌면 조롱하는 듯한 이름 모를 고양이의 인간에 대한 묘사는 꽤 흥미롭다.
고양이는 자신의 주인을 그리고 인류를 관찰하며 디스를 서슴지 않는다.
‘우리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자기의 마음을 어두운 방 안에서 드러낼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고양이들은 굳이 그렇게 귀찮은 품을 들여서 자기 진면목을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기를 쓸 시간이 있으면 차리리 툇마루에 누워서 자는 편이 낫겠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의 예를 들어, ‘그 남자는 엄청나게 사치를 부리는 사람이었는데, 물론 이는 입맛에 사치를 부린다는 뜻이 아니라 소설가였던 만큼 문장에 욕심을 부렸다는 뜻이다.’이며 인간은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 이름 하나 붙이는 데 하루 종일 파리를 돌아다녀야 하다니 정말 힘들기 짝이 없는 일이며, 나처럼 입 다문 조개 같은 주인을 가진 처지로는 도저히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라며 의식의 흐름대로 사는 자신과 대비하여 인간과 주인을 돌려깐다.
인간은 누구나 경중이 다를 뿐 내면에 자기혐오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2살 때 가정 형편으로 친부에 의해 양자로 들어가게 된 나쓰메 소세키는 소설에서 고양이로 분해 주인(구샤미)의 하찮고 겉과 속이 다른 허영과 허세의 내면과 외면을 관찰자 시점으로 묘사한다. 작가 자신의 인생과 고양이의 인생은 소세키의 소설로 자기혐오적인 색채를 드리운다. 특이한 점은 고양이(화자)는 소설 속 주인공과 영혼이 물려 있으며 자기 고백 같은 문법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메이테이 선생에게서 온 서신에는 지식인의 허세가 ‘공작새의 혀’ 요리로 은유되며 상대방을 퍽 유쾌하게 조롱한다.
‘잘 아시는 봐야 같이 공작새 한 마리에 혀 고기의 분량은 새끼손가락 반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대식가이신 귀하의 속을 채우려면… 이 공작새 혀 요리는 먼 옛말 로마의 전성시대에 한때 매우 유행한 것으로 사치풍류의 그치라 할 수 있으며.. 위가 좋지 않은 주인공에게 목욕 전에 먹었던 음식을 모조리 토해 내어 위장 안을 청소하는 방법의 놀리는 듯한 서신에는 지식인들의 허영을 풍자한다.
지식이나 사상은 정신적 소화를 시켜야 그 사람의 좋은 양분이 되어 정신적으로 단단하고 건강하게 자신에게 온전히 체득된다.
하지만 위를 통한 소화가 아닌 맛만 느끼고 구토하는 것은 말 그대로 지식과 사상의 겉핥기에 불과하여 깊이 몸에 베이지 않아 금방 휘발되어 버린다.
메이지 유신을 지나 신구세대의 혼란과 과도의 시기에 수많은 사상과 지식들이 난무한 세상에 이름 모를 고양이처럼 심플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오롯이 태평의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결말 부분에 고양이는 술에 빠진다.
처음에 독한 술이 괴롭히지만 술이 주는 정신적 달콤함에 이내 젖어든다. 점점 몸이 따뜻해진다. 눈가에 열리 오른다. 귀가 후끈거린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 춤을 추고 싶다.
주인도 네이테이도 도쿠센도 모두 엿이나 먹으라는 기분이 든다. 할퀴고 싶다. 부인의 코를 물어뜯고 싶다. 일어서서 건들건들 걷고 싶다. 재밌다. 아아.. 기분이 좋다.
점점 본능에 더 가까워진다. 맥이 풀린 다리를 아무헐게나 움직여서 가는데 자꾸만 졸린다. 자고 있는 것인지 걷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은데 무겁기가 이를 테 없다. 졸리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물 위에 떠 있었다. 나는 나올 수 없는 물독에 빠져 있다.
독에 빠져 죽음에 가까움을 인지하지만 목숨을 갈구하지 않는다. 체념하니 오히려 태평이 드리운다.
점점 편해진다. 괴로운 것인지 황홀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속에 있는 것인지, 방 안에 있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어디에서 어떻게 있든 상관이 없다.
그냥 편하다. 아니, 편안함 그 자체도 느낄 수가 없다.
세월을 잘라 내고, 천지를 분쇄하여 불가사의한 태평으로 들어간다.
나는 죽는다. 죽어서 이 태평을 얻는다.
태평은 죽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이타불,
고맙고도 고맙도다.
나에게도 언젠가 올 태평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린다.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