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수많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가슴을 관통한 작가의 메시지는 결국은 ‘사랑’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란 책은 그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의 말하고자 했던 ‘사랑’이란 고귀한 단어의 기술이자 서술이자 사랑의 농축된 정수의 심리학 서적이다.
참신하고 인상적인 생각과 글귀들을 정리해 본다.
1)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람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1-1) 남성 성 기능의 절정은 준다는 데 있다. 남성은 자기 자신을 , 자신의 성기를 여자에게 준다. 오르가슴의 순간에 남자는 정액을 여자에게 준다. 그는 능력이 있는 한, 정액을 주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여자의 경우, 비록 약간 더 복잡하기는 하지만,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여자도 자기 자신을 준다. 여자는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중심을 향해 문을 열어 준다. 받아들이는 행위를 통해서 그녀는 주고 있는 것이다.
1-2)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랑은 사랑을 일으키는 힘이고 무능력은 사랑을 일으키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2) 성숙한 사람은 외부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해방되어 내면에 그 모습을 간직한 사람이다. 자신이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어머니다운 무조건적인 감정적 양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아버지다운 양심을 간직하는 것이다.
3) 인도인이나 소크라테스의 사고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자의 사고에서도, 우리는 사고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는 ‘알 수없다’인 것을 알게 된다. “알면서도 알지 못한가도 ‘생각하는 것은 최고의 ‘각성’이고,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병이다.”
4)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개념에서 중요한 강조점은 참아낼 수 없는 고독감으로부터 피난처를 찾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에서 마침대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안식처를 찾아낸다. 사람들은 세계에 대항하는 두 사람 사이의 동맹을 형성하고,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는 사랑과 친밀감으로 오해된다.
5) 사랑은 성적 만족의 결과가 아니며, 성적 행복은 오히려 심지어 성의 기교에 대한 지식조차도 사랑의 결과다.
6) ‘화목한’ 가정’ 안에 감도는 긴장과 불행의 분위기가 공공연한 결별보다도 자식들에게 더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공연한 결별은 적어도 자식들에게, 인간은 용감한 결정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을 종결할 수 있음을 가르쳐줄 것이다.
7) 두 사람이 서로 그들 실존의 핵심으로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랑은 가능하다.
8) 사랑의 기술의 실용에는 첫째 ‘훈련’이 요구된다. 둘째 ‘정신집중’ 즉 몰입이다, 세 번째 요소는 ‘인내’이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기술을 배우는 조건은 ‘최고의 관심’이다.
9)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이성’이다. 이성의 배우에 있는 정서적 태도는 겸손이다. 사랑은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목적에 전 생애를 바쳐야 한다.
10) 정신 집중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집착한다면, 그 또는 그녀는 생명을 구조하는 자일 수는 있지만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 된다.
11) 자기 자신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성실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만이 미래에도 오늘과 같을 것이며, 따라서 그는 지금 기대하는 바와 같이 느끼고 행동할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앙은 약속할 줄 아는 능력에 의해 규정될 수 있으므로, 신앙은 인간 실존의 한 조건이다.
12) 다른 사람에 대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그의 기본적 태도의 불변성, 그의 퍼스낼리티 핵심의 불변성, 그가 가진 사랑의 불변성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의견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기본적 동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13)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그나 그녀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 있다. 내가 게으르다면, 내가 끊임없이 각성과 주의화 활동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나는 사랑받는 사람과 능동적인 관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4) 인간의 발달에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곧 성숙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에리리 프롬의 가장 마지막 제자 라이너 풍크 교수는 프롬과의 대화에서 느낀 점을 공유한다.
프롬은 상대가 본래는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질문만을 했다고 한다. 프롬과의 사적인 대화에서 소통의 특별한 점은, 프롬이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보이며 그를 대신하여 직접 질문을 던짐으로써 직접성과 친밀성을 형성한다는 사실이었다. 질문은 날카로웠고 상대를 강하게 자극했다. 프로는 나를 시시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하고 회피하고 억압하고 무시했던 질문들을 던졌다.
그의 시선과 질문은 ‘사랑의 기술’에서 말하는 그 인식에서의 소망을 특징으로 했다.
“어떤 사람은 존경하려면 그를 잘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인식은 제기된 질문에 스스로 자신을 내맡겼을 때만 얻을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을 심리학적으로 탐구하고 사랑했다.
그러나 그 능력은 무엇보다도 그의 애니스(아내) 대한 사랑에서 나타난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입 맞추고 그녀와 작별인사를 하고 그녀와 대화하고 그녀를 쳐다보고 쓰다듬을 때 그러했다.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해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으며 주목할 수도, 파악할 수도 있다.
결국 에리히 프롬이 말하고자 했던 가장 고매한 사상은
나를 사랑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인류애이자
사랑이다.
George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