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제일 높은 경기. 축구? 배구? 아니, 한일전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 한일전을 이야기해 보자면
1.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가 나온 축구 한일전
2. 김연아의 아사다 마오와의 피겨스케이팅
3. 2020 한일 여자 배구 전
인 것 같다.
왜 이 세 개가 기억에 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선, 박지성 선수의 산책 세리머니는 정말 신사답고 멋졌다. 수비수들을 제치고 골을 넣고 여기가 내 안방이다. 내가 "박지성"이다라고만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표정. 이런 박지성 선수의 제스처를 보면 메시의 엘 클라시코에서의 유니폼 세리머니가 생각난다. 결과로 관중들을 숙연하게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모습 말이다. 비폭력적인 언어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유사했다. 내가 느낀 진짜 복수는 이런 것이다. 우리가 한일전에서 이기더라도 멋있게 실력으로 이겨서 우리 존재를 일본에게 알려주여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를 비판하기보다는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되어 나타나는 것. 그게 진짜 복수다. 괜한 작은 일에 목숨을 걸지 말자.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참 보고 있으면 어떻게 둘이 저렇게 같은 시대에 라이벌로 태어났을까 싶다. 물론 김연아가 전 세계를 아우를 정도로 월드클래스였지만, 그 밑에 일본인으로서 만년 2등을 차지했던 마오의 맘도 참 지옥이었을 것 같다.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마오의 경기와 고득점 이후 기뻐 날뛰며 김연아 선수의 멘털 흔들기 작전을 보며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넘긴다. 프로는 그렇다. 그냥 웃고 넘기자. 우리는 이미 더 큰 여정을 가고 있고 더 큰 무대에 서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마오는 후에 고백한다. 김연아는 자신에게 넘고 싶은 존재인 동시에 존경하는 사람이었다고 말이다. (출처: kokomadekokomo트위터) 우리나라와 일본의 산업도 이제 이런 관계가 시작된 것 같다. 양국이 서로의 발전을 위한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을 쓰게 되었던 2020년 도쿄 올림픽 여자 배구의 한일전.
나는 사실 일본에서 유학하며 한번 아마추어 스포츠 팀 통역을 맡았던 적이 있다.
당시 2020년 도쿄 올림픽이 확정된 이후에 양국 간의 친선을 다지기 위해 아마추어 팀들 간의 스포츠 경기가 열렸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내가 살고 있던 도시를 중심으로 대회가 개최되었고, 짭짤한 통역비용과 우리 도시에서 내놓으라 하는 호텔에서 숙박하게 되었다. 사실 그 호텔은 내가 일본에 처음 도착하고 말도 잘 못하고 못 알아먹던 시절 새벽과 밤낮으로 연회와 이런저런 이벤트 준비, 식당 알바를 뛰었던 호텔이었다. 근데 이렇게 어엿하게 그 호텔에서 한일 통역가로 일한다는 게 너무 감회가 새로웠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대견스러웠다. 간단한 비닐 '벗기기'라는 단어도 몰랐는데 열심히 공부하니 작은 통역가로서 이 호텔의 좋은 방에서 이렇게 잠 도자고, 그 연회장의 일원으로 맛있는 음식과 파티를 즐길 수도 있음에 다시 한번 더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뭐든 순간에 열심을 다하면 되돌아온다는 맛을 알 수 있었다. 그 호텔에서 배운 일본어를 그 호텔에서 사용하고 있는 나였다.
(이 호텔 썰은 풀게 많으니 나중에 또 풀어보겠다^^)
다시 돌아와,
당시 자전거, 테니스, 배드민턴, 축구 등의 정말 다양한 스포츠 팀이 참가하였는데 내가 담당한 팀은 바로 "여자배구"팀이었다.
배구는 체육시간에 수행평가를 위해 손으로 몇 번 받은 게 다였고, 봐본 경기라곤 남자 경기 뿐이었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오? 배구? 참 신기하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경기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아마추어 선수들을 맞이하게 되었고 여러 일본팀과의 경기를 보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큰 배구장을 휘젓고 다녔고 경기장에도 들어갈 수도 있었다. 경기장 뒤의 선수대기실, 마사지실, 샤워실 등도 구경할 수 있었던 정말 값진 경험과 순간들이었다. 그보다도 귀한 건 배구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거였을 거다. 통통통 퍽! 의 묘미란, 정말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여러 선수들의 몸을 던지는 멋진 장면들과 순간들을 잊을 수 없었다. 당시에 한국팀이 정말 많은 일본 팀들과 경기를 치렀는데 일본의 배구팀들을 아마추어임에도 만만하지 않았으며 정말 전국 각지에서 참가하였기에 더욱 경쟁은 치열했다. 아쉽게 우리 팀은 패배의 쓴맛을 보았지만 마지막에는 다 같이 모여 친목을 다지고 또 서로를 안아주고 격려하는 멋진 스포츠 십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일본에는 생각보다 배구경기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정말 많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한일 여자 배구 전은 각별했다. 아시아의 배구 강국인 일본과 붙을 때 나는 그동안 일본의 여러 실력들을 보아왔길래 솔직히 마음속으로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에겐 김연경 선수가 있었지만 스포츠는 결국 팀의 평균이 높아야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우려가 앞섰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여자 배구팀은 한일전을 이기는 기적을 만들어 냈고 그 과정 또한 너무 어려웠지만 듀스 상황을 역전해내는 드라마를 보여줬다. 2021년,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짜릿하고 감동적인 장면은 그 장면 아녔을까. 이기는 순간 내가 함께했던 아마추어 팀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고, 아직도 카톡에 남아 계시는 그분들의 프로필을 보게 되었다.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잘 헤쳐나가시는 것 같았다. 나이가 꽤 있으심에도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승리를 위한 갈증은 깊었던 그분들은 일상에서도 원하시는 바를 위해 강한 서브를 날리고 계심이 분명했다. 그 당시 패배에도 항상 서로를 돋아주고 괜찮다며, 긍정적인 면을 더 찾으려 하셨던 그 마음과 태도에 나는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잊히질 않는다. 그건 사실 내 유학생활을 버틸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 여자배구팀은 비록 메달을 가져오지 못했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추억과 기억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아마추어팀이 그랬듯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항상 일본이든 누구든 삶이든 이실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었는지가 결국 중요한 것이다. 많은 한일전을 보며 생각한다. 과연 이번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 그리고 이를 지켜본 국민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그러했듯 우리가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지 이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그 결과를 어떻게 만들어 내 가는지 결국 그 과정에 우리는 더 집중하고 바라봐 줄 필요성이 있다. 내가 요즘 고민하는 어려운 질문이다. '과정이 중요하냐?, 결과가 중요하냐?' 이 글을 쓰며 나는 혼란스러웠던 나의 마음이 확신으로 변했다. 결국, 결과를 위해서는 과정이 중요하다. 즉, 과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다. 앞으로 우리가 만날 여러 한일전들을 보며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을 보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한일전에서 기대하는 것은 과정인가? 결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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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런 소중한 마음과 경험을 들려준 사랑하는 아마추어 여자배구팀의 멋진 한일전을 기억하며,
쌀쌀한 가을바람이 맨살에 서늘함을 남기는 2021년 8월의 끝자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