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죄하는 사람.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태극기를 그렸다. 내가 나고, 자라고, 온 곳이 대한민국임을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마음을 철컥하고 걸어 잠갔다. 마치 적국에 온 것처럼 모든 것에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고 긴장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친구들은 멀게만 느껴졌고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참 답답하면서도 일본인들에게 한국인은 어떻게 생각될까? 만을 고민했던 것 같다. 나 조차도 일본인을 경계해서인지 참 녹지 않는 얼음을 마음속에 두고 산 것 같았다. 아무리 녹여보려 했지만 녹지 않았다. 근데 이런 나의 경계를 허문 것은 내가 다니고 아주 작은 동네 교회에서였다. 그냥 동네 주민 10명 정도와 한국인 목사님, 사모님, 대학생이 모인 15명 남짓의 아주 작은 교회 말이다.
그 녹지 않을 것만 같던 날의 일을 나의 일기장의 필적에 약간의 기분을 더해 여러분에게 전달해본다.
2015년 1월 24일 (주일; 일요일)
그날도 그냥 다른 날과 다를 것 없이 교회를 갔다. 이제는 번역기의 도움 없이 설교를 들을 수 있어 한편으론 정말 뿌듯했다. 오늘은 외부 일본 목사님의 설교였다. 나는 밥을 먹고 나른함에 취하기 전, 설교를 듣기 위해 앉았다. 그날 말씀(설교)의 주제는 '용서'였다. 설교의 시작은 요즘 일본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사회생활 중 제일 힘든 게 무엇인가 했더니 1위가 '인간관계'라고 하였단 한다. 그 '인간관계'라는 것은 내가 저 사람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내가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내가 정해놓은 용서의 마지노선은 어디인가?라는 것들에 관한 것이라 하셨다.
(종교 내용;기독교)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용서를 정의하고 용서의 범위를 정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나의 죄마저 용서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다른 사람의 죄를 가지고 감히 용서의 불가 여부를 따질 수 있을까 싶다.
그러면서 설교를 듣고 있던 중 마지막에 일본 목사님이 무겁게 한마디를 꺼내셨다.
"우리 일본은, 한국에게 사과를 구합니다. 사과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죽고 처참히 살해되었던 것을 자신이 전쟁 박물관에서 보았다면 말씀해 주셨다. 모두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고 말해주지 않았다. 마음에는 보따리처럼 있지만 누구도 풀어주지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같이 예배를 드린 대사관 원장님, 나, 한국 목사님, 대학 청년들 모두 애써 휴지로 감추려 해 보았지만 그 자리에 계신 모든 한국인들은 눈문을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었다. 동석한 일본인 분들도 함께 울어주었다. 그리고 예배는 끝났다.
집에 오는 내내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저 강당에서 어떠한 용기로, 일본분들이 더 많이 계시는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사과를 하셨을까?'
이로써 내가 유학 전부터 그 순간까지 흉터처럼 가지고 있었던 '일본은 싫고 밉다.'라는 편견이 정말 유리창이 한꺼번에 깨지듯 무너졌다.
뽑으려 하니 모두 잡초였고, 품으려 하니 모두 꽃이었다.
결국 우리는 어쩌면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독자들에게 일본을 용서하세요 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본인도 있답니다.라고 전하는 것은 국민들의 소중한 지원을 받아 유학을 떠나게 된 나에게는, 나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서로 이해할 때 우리는 더 발전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맞다. 나조차 일본은 너무나도 어려운 나라였다. 그러나 서로 말하지 않고 있던 이야기를 하나둘씩 내려놓고 듣고, 정면 하다 보면 그래도 상호 간 더 배우고 도와줄 수 있게 되는 그날이 오지 않을까. 내가 보았던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호의를 베푼 것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