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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Apr 26. 2024

멋이란 무엇인가

『멋 설(說)』이 말하는 조지훈,  조지훈이 말하는 ‘멋’

나 폼에 살고 죽고 폼 때문에 살고

폼 때문에 죽고 나 폼 하나에 죽고 살고

사나이가 가는 오 그 길에 길에

눈물 따윈 없어 못써 폼생폼사  

        


다들 말랐네... 나도 어렸을 땐 말랐는데...



 위는 ‘젝스키스’라는 남성 6인조가 불렀던 ‘폼생폼사’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 사실 ‘폼’은 영어 Form에서 나온 말인데, 우리말로는 ‘멋’이라는 명사가 그 의미에서 가장 흡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실속없는  Foam(거품)이 끼어있는 것 같은 ‘폼(Form)’보다는 ‘멋’이라는 어감이 군더더기를 없애 단출한 명문장같이, 면실유(棉實油)를 뺀 참치통조림의 살코기같이 진실되게 다가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참치 통조림에는 목화씨에서 짜낸 기름인 면실유나 카놀라유, 올리브유 등의 식물성 기름이 들어있다. 



 우리말로 ‘멋’의 사전적 의미는, 옷이나 얼굴 따위의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맵시이다. ‘멋’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무엇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동물들도 짝짓기를 위해 보통 수컷이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암컷도 수컷의 ‘멋’에 이끌리는 것이 분명하리라. 

 따라서 ‘멋’이라 불리우는 그것은 인간을 넘어선 자연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수컷 공작(peacock).  동물은 수컷이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



 청록파 시인 중 한 명이었던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은 나름대로 ‘멋’에 대한 가치를 그의 수필 『멋 설(說)』을 통해 확립할 수 있었다.     


      

한 바리 밥과 산나물로 족히 목숨을 잇고 일상(一床)의 서(書)가 있으니 이로써 살아있는 복이 족하지 않은가. 

시를 읊을 동쪽 두던이 있고 발을 씻을 맑은 물이 있으니 어지러운 세상에 허물할 이가 누군가. 어째 세상이 괴롭다 하느뇨. 이는 구태여 복을 찾으려 함이니, 슬프다, 복을 찾는 사람이여, 행복이란 찾을수록 멀어가는 것이 아닌가.        


  

 위 조지훈의 외침은 박주산채(薄酒山菜)로 만족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삶을 지향하는 노자(老子)의 가르침을 좇는 것 같기도 하고, 위 조지훈의 안분지족(安分知足)에서 상대론적 관점으로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그리하여 행복과 괴로움의 구별도 무의미하다는 장주(莊周)의 목소리도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다. 이와 같이 조지훈은 만물의 근원이자 원동력을 ‘멋’에서 찾고 있다.           



 ’, 그것을 가져다 어떤 이는 ()’라 하고 일물(一物)’이라 하고 일심(一心)’이라 하고 대중이 없는데하여간 도고 일물이고 일심이고 간에 오늘 밤에 이다태초에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멋이 있었다.          


 

 ‘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다’라는 종교다원주의와 같이 조지훈은 ‘멋 다원주의’를 주창한다. 하지만 다양한 이름과 표현으로 알파와 오메가가 되어 버린 ‘멋’은 외부적·적극적인 멋이 아닌, 내부적·소극적인 멋으로서 1인극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조지훈은 관객이 되어 이따금씩, 아니 계속적으로 1인극 배우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원리 유일의 실재에다 이란 이름을 붙여 놓고 엊저녁 마시다 남은 머루술을 들이키고 나니 새삼스레 고개 끄덕여지는 밤이다.      


      

당시 180cm가 넘는 장신이었던 고려대 국문과 조지훈 교수.  범같이 엄하지만, 호탕한 교수님 스타일로 추정된다.



조지훈은 멋과 지조의 사람이었다. 『지조론』이라는 수필을 통해 당시 정치인들의 지조없음을 꾸짖으며 세속적인 이해와 타협을 거부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재직 당시 지은 '호상비문(虎象碑文)'이라는 시는, 고려대 응원가인 ‘민족의 아리아’의 원작시가 되었고, 고려대 교가, 캠퍼스 내의 4·18기념비문 등 그의 흔적을 고려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당시 사회를 비판하던 선비들이 벼슬을 거부하고 은거하거나 방랑하던 것과는 달리 조지훈은 세상 속에서 활동하고 부대끼며 지조를 나타내었다. 이것이 또 조지훈만의 ‘멋’이 아닐까.  

 

  

필자가 대학원 박사과정을 보냈던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위 두 사진은 필자가 직접 찍은 호상비문(虎象碑文).  다양한 연구활동(?)으로 인해 아직도 고려대학교 캠퍼스를(주로 지하광장) 배회하는 필자를 굳이 아는 척 할 필요는 없다.



 반면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교시적(敎示的)인 그의 어조는 누군가에게는 반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지조가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자아가 강하거나 고집이 세다는 부정적 해석도 가능하기에 특히 오늘날의 작품감상에 있어서 다각적인 관점도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일 것이다.          


 

어떤 이 있어 나에게 묻되 "그대는 무엇 때문에 사느뇨?" 하면 나는 진실로 대답할 말이 없다곰곰이 생각노니 살기 위해서 산다는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조지훈은 ‘멋’이 곧 삶이었고, ‘삶’이 곧 멋이었다. 그는 1968년 만47세의 나이에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속된 말로 폼나게 살았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세우지 못하고 지금도 흔들리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멋’이라는 조지훈의 대송(大松)은 낙락장송(落落長松)으로 빛을 발할 것이다. 

 한편 조지훈의 아들 조태열은 현재 윤석열 정부의 제41대 외교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다.     


조지훈 교수, 아니 시인의 아들인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낙락장송(落落長松). 낙락장송은 단순히 큰 소나무가 아니라 절벽에 위태롭게 뿌리를 내린, 강인한 지조와 치명적인 멋 자체이다


조태열 前 대사 "아버지 조지훈, 6척 장신에 말술…집에선 가계부 쓰셨던 분"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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