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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세 Nov 20. 2020

그림그리는 방랑자가 세상을 견뎌내는 법

New prologe. 보도블럭에서 피어난 들풀

본론에 앞서, 나는 여러번 SNS와 주변 지인들에게 나의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도움 요청을 한 바 있었다. 그 과정에서 듣지 않아도 될 비아냥거림을 받은 만큼 여러 응원도 받았다.


특히 제일 상처가 됐던 건 이런거다. 구글, 네이버에 작가 필명만 검색하면 전부 나오는데다 텀블벅 후원 성적도 좋은 편인 사람이, 왜 자꾸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는 거지?

좀 더 거친 표현으로 얘기하면 다음과 같다.


저 사람 그냥 관심 끌려고 구걸하는거 아냐? 차라리 그렇게 돈이 모자라면 알바라도 하던가.

여기서 좀 더 구차한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22살 이후로 회사생활을 할 수 없게 됐으며 이미 잦은 야근과 철야작업으로 인해 몸과 정신이 많이 망가졌고 카페인 쇼크로 인해 밤낮이 바뀌는 불상사가 생겼다. 또 이때 교제하던 남자친구가 다이어트를 요구하면서 무리하게 시도하는 바람에,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라는 난치병까지 얻게 됐다. 물론 그 이후 본인이 결별 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모두 사과하기는 했지만.


또 웹툰작가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외주작업이 자주 있는편도 아녔으며, 내 화풍이 시장에서 크게 매력을 어필할만한 스타일이 아닌 것도 알고 있다. 물론 내가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그림이 될 때까지 노력을 해야겠지. 다만 나도 어느정도 내 변호를 하고싶다. 웹툰작가로서 계약기간이 전부 끝난 2019년 3월엔 차기작 및 다른 외주, 커미션을 받을 수 있는 몸과 정신상태가 아니었는데다 그렇게 되려면 모아둔 돈을 조금씩 써가며 구상을 해야하는데 당장 생계가 급했던 나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부업을 택한 것이다.


이미 익히 알고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더 넓어질수록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많이 남겼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면 된다.




브런치 글을 갈아엎기 전에도, 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일찍이 생업전선에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여느 동기 대학생들이 겪지 않아도 될 온갖 쓴소리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내가 어떤 일을 겪어도 비교적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포석이 되었지만 사실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는 받는다.


그래도 내가 인생을 그리 헛살지는 않은 것인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 나를 도와주고 되려 나의 허물까지도 기꺼이 끌어안아주는 모습을 보며 좀 더 바르게 살아야겠단 다짐을 해왔던 것 같다.


프리랜서로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커리어를 가졌고, 중간중간 여러 어른들의 사정으로 이력이 끊기면서 웹툰작가나 다른 부업으로 빠지는 바람에 커리어가 다소 구멍이 뚫렸지만 2018년엔 내 이름으로 된 책도 냈고, 그 이전엔 2014년과 2015년에 삽화작업으로 참여한 책도 있다.


또 어떻게 잘 버티다 보니 네이버나 구글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프로필을 보며, 그렇게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못하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공연히 알 수 있게 되는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헛살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매끄러운 글과 추후 낼 에세이북을 위해 부득이하게 글을 모두 갈아엎게 됐지만 좀 더 나은 글과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더 크게 와닿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기왕 작가로 활동하는 이상 좀 더 좋은 결과물로 대중에게 보이며 나의 이야기를 진솔히 전하고 싶다.


아무리 내 20대 초반과 중반이 고통과 눈물, 여러 방황으로 얼룩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렇다 할만한 커리어와 스펙을 쌓지 못해 비슷한 나이대 작가들에게서 한참 뒤쳐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내 1인분,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그런 훌륭한 30대를 맞이하고 싶다.


조금 늦더라도 그만큼 더 빡세게, 내가 그간 쌓아온 어떤 노하우와 여러 깜냥이 있다면 못 할 것도 없겠지. 어쩌면 이게 나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스스로를 위로하는 글일 수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어려운 상황과 고난이 닥쳐도 결국 시멘트 블럭 사이에서 피어난 들풀과 민들레처럼, 결국은 아주 조금이나마 결실을 맺게 된다면 나에겐 그것마저도 굉장히 소중한 기억과 이력으로 남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먼 길을 돌아왔지만 나는 다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여러가지 어른들의 사정으로 고통받았던 시간들을 다시 회고하고 연재하면서 여러 일들을 이야기도 할테지만, 내 모든 글들이 일러스트레이터나 어떤 예술직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정표가 되진 못할 것 같다.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들일 수도 있고 이미 그 전선에 먼저 뛰어들어 더 능숙하고 유연한 대처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단지 내가 겪어온 일들과, 어떻게 이런 상황을 헤쳐나갈 것인지를 상소히 이야기하고 싶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삶을 살아온 경우도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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