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기반 없는 회사에서, 리스크관리를 시작했다

지금 재직 중인 증권사의 리스크관리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 내가 마주한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리스크를 관리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전날 데이터를 손으로 정리해 보고서를 만들고, 시장 금리가 얼마나 움직였는지는 뉴스를 뒤져봐야 알 수 있는 구조였다. 위험을 감지해야 할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고, 숫자는 있었지만 실시간으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문제는, 리스크는 늘 조용히 쌓인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에 손실이 커지고, 일이 터진 후에야 "왜 미리 몰랐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라도 이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매일 시장 금리를 자동으로 확인해 위험 신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고, 부서별로 보유한 채권이 금리 변화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계산해서 정리했다. 이 수치를 보면 금리가 조금만 변해도 어떤 팀에서 손익이 크게 바뀌는지를 미리 알 수 있었다. 누구도 그런 숫자를 요구하진 않았지만, 누군가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뉴스나 공시에서 위험 신호가 될 만한 키워드가 등장하면 알림을 보내주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전문적인 도구는 없었지만, 엑셀과 간단한 자동화 도구, 알림을 받을 수 있는 메신저만으로도 많은 것이 가능했다. 중요한 건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지금 무엇이 위험할 수 있는지를 한 발 먼저 감지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리스크를 보여주는 숫자도, 결국은 사람이 반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내가 만든 시스템이 단순한 경고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누군가의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들고 싶었다.

경영진과 운용 실무자가 리스크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위에서 보는 리스크는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지만, 운용자에게는 성과를 내기 위한 제한조건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리스크관리는 일종의 줄타기다. 경영진의 가치관을 맞추면서도, 트레이더들이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는 공간을 남겨줘야 한다. 지나친 통제는 시장 대응력을 떨어뜨리고, 느슨한 감시는 나중에 큰 손실로 돌아온다. 그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진짜 리스크관리다.

나는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해 자동화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리스크관리의 첫번째 단계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리스크의 인식'이다. 위험을 더 명확히 보고, 더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 시작했다. 복잡한 분석이 아니라, 단순한 경고 하나가 회사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 기반도 없던 곳에서, 리스크관리 체계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시스템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게 더 어렵고, 숫자보다 설득이 힘들 때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시장에 큰 변화가 생기면 어떤 팀이 먼저 반응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는 알려줘야 한다'는 사실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침마다 시장 금리를 확인하고, 그 숫자를 해석해본다.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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