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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un 06. 2021

생각을 자유롭게, 그게 너의 우주야

책 '개새끼 소년'을 읽고

진정한 소통은 그가 어떤 공간과 현실에 살든
그의 세계에 진지한 관찰자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작정하고 이 책 리뷰를 잘 쓰고 싶었다. 아니,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모조리 설득할 작정이었다. 우아하고 유하게, 이 책에 관심을 두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교묘하게. 나답지 않게, 평소답지 않게 그들의 문법으로 그들의 언어에 맞춰서 이 책을 꼭 보시라 매끈하게 에둘러 협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의 제목이 ‘개새끼 소년’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는 리뷰를 또 이렇게 적나라하게 쓸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책을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내가 보기도 좋고 남이 보기도 거부감이 없어 누구에게나 권하는 무난한 책이다. 그런 책은 보통 책 리뷰 글을 쓰는 대상이 된다. 다른 하나는 나에게는 강한 에너지를 선사할 정도로 미친 듯이 좋은데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가 괜한 검열과 판단 당할 위험이 커서 굳이 말하지 않고 내 보물 상자 안에 소중히 넣어두는 나만을 위한 책이다. 나는 사랑하면 숨기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티를 내고 마는 철부지이기 때문에 다른 주제 글을 쓰다가 문득문득 그런 책의 제목이나 내용이 조금씩 튀어나오고 만다.


진짜 간직하고 싶은 추억은 글로 쓰지 않는다는 어느 에세이스트의 고백처럼 가장 사랑하는 책들은 꽁꽁 싸매고 모두의 앞에서 그 책을 좋아한다. 굳이 선언하지 않고 혼자 간직하게 되었다.




내가 멕시코를 여행하고 쿠바에서 모험을 시작하는 그때 마법사 멀린 님은 일본과 미국을 횡단하며‘개새끼 소년’ 원고를 집필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분명 나의 현실은 지금의 현실과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때 나라면 지금과 비교해 반의반만큼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운명을 믿는 지독한 운명론자이므로 지금 여기 물성으로 만난 ‘개새끼 소년’이란 책이 가장 좋은 때 나를 만났다고 믿는다.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생각의 자유는 없는 시대, 코로나 이후로 그 시대는 더욱 득세하기 시작했다. 2014년 내 삶의 화두는 ‘자유’였다. 아니 배낭여행 가서 이토록 자유에 대해 사유하게 될지는 몰랐다. 나는 그때 내가 얼마나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인지, 만인이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내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했다. 그런데도 자유가 주는 위화감을 떨쳐 내기 어려웠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배낭여행으로 탕진할 수 있는 나보다 사회주의 정부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온갖 룰을 개무시하는 ‘알레’ 쪽이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그때까지 철저한 모범생에 선악이 명확한 나는 알레의 행동과 선택에 ‘예의 없다’, ‘염치없다’,’배려 없다’ 등등의 온갖 꼬리표를 붙이며 그를 내내 판단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내 우주는 크게 뒤틀리고 휘어졌고 개고생을 하고 남은 걸 탈탈 털어 준 후에 20년 넘게 나를 지배해온 관념에서 조금 벗어나 말랑말랑한 사고체계를 갖게 되었다. 내가 사는 현실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두렵고 나약한 나는 그 현실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자유로움과 규칙 사이, 혼란스러워진 나는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이유로 성장해 놓고도 내가 퇴보했다고 믿었다. 타이타닉처럼 보물을 품고 그대로 가라앉은 난파선이 되었다.


떠오르기 위해 다시 글을 썼다. 글이 해방구였다. 글을 쓰면서 매번 자유로웠냐고 한 번도 자기 검열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못했다. 가끔은 너무 튈까 봐 거북하게 받아들이고 배제될까 봐 조금 더 온화하게 표현하거나 생각을 깎아 매끈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삶보다 글은 항상 자유로웠다. 꼭 전하고 싶은 생각이나 이야기가 있을 때 조금 미친 사람이나 바보처럼 보여도 나는 글을 쓰고 올렸다.


그래, 내가 글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자기를 드러내는 글을 쓰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단지 문장을 유려하게 쓸 수 있어서 아름다워서 글을 쓰는 것만은 아니다. 자기 색과 생각을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다. 평소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간직하고 있는 내면과 무의식의 세계를 용기 내어 전하는 글들이 좋았다. 그런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좋았고, 자기 것을 드러내 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글은 그 사람이 아니고 글은 삶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글은 삶이고 그 사람이었다.





멀린 님의 글은 이전부터 내게 강한 회오리바람 같았다. 어느 날은 그의 글을 읽고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고, 어느 날엔 나를 위한 맞춤 메시지처럼 열정과 용기가 샘솟기도 했다. 그의 글은 무난하지 않다. 남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타협해주지도 않고, 욕도 서슴없이 뱉는다. 어쩌면 과격하게 들린다. 그는 진실을 말한다. 현실을 왜곡하며 위로해주지도 않고, 괜찮을 거라고 다 좋아진다는 희망 고문을 해주는 일도 없이, 있는 그대로 처절하고 어두운 면까지 그대로 전한다. 모순을 꼬집고 현실을 바로 보게 한다. 그는 생각한다. 생각에도 자유가 필요하다고. 세상일에 선과 악이 없다고.


그러나 그의 글은 조금도 공격적이지 않다. 오히려 말랑하고 관대하다. 마치 본을 보이듯 네가 어떤 다른 생각과 미친 행동을 해도 다 괜찮다고 그저 알고 싶다고 다정하게 말해준다. 어른 없는 세상에서 대표로 어른이 되어 준다. 관념에서 벗어나라고 인제 그만 일어나라고 현실은 너의 것이니 네 맘대로 실컷 살다 가라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위선을 조금이라도 넣어 쓸 수 없게 되었다. 생각을 주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책이 정답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환기하고 자신을 바로 보기 위해 지금의 현대인 특히 청년들이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보고 이 책에 감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였다면 이런 책이 나올 일도 없었다. 아마도 미래 시대 인류가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다른 사람을 깨우고 미래에 관해 말하던 ‘멀린’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발견될지언정.


이 책에서 부자가 되고 싶으면 미래 가치에 대해서 떠들지 말고 혼자만 묻어둬야 한다고 하던데, 내 책장 속에 고이 간직해두고 봉인해 두어 다른 사람들 모르게 나 혼자만 실컷 읽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만의 비기처럼, 용기가 안 날 때, 검열당할 때 세상의 편견에 흔들릴 때 종종 꺼내 보고 나만의 우주를 선택해 나가는 질료로 삼고 싶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말고.


그러나 내가 원하고 꿈꾸는 미래는 이런 ‘개새끼 소년’의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자신의 다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상호작용하고 확인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니 그런 우주를 위해서라도 혼자만 간직할 수 없다. 동의하지 않아도 좋으니 좋아하지 않아도 좋으니 꼭 한 번 읽어 보시고, 그게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박이라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마땅히 이 책은 많은 사람에게 읽힐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책이란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키거나 글을 쓰게 만들어 주는 데 가치가 있다는 분들에게도 이 책이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Index


선택을 포기하면 운명은 멈춥니다. 그 뒤론 뒤죽박죽 랜덤 인생만 펼쳐집니다. 남들의 선택에 의해 따라오는 결과만 계속 감당해야 하는 뒤처리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용기 있는 선택은 운명을 좌지우지합니다. 내 선택에 따라 사회, 국가, 지구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에 따르는 책임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열매 또한 온전한 내 것이 됩니다.

-인생은 어떻게 미끄러지는가, 87p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다른 이들이 동조하기를 바라지만, 본 사람은 나뿐이니 믿는 사람도 나 혼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이었던 시절, 홀로 대홍수를 준비했던 노아처럼 누가 뭐래도 산꼭대기에 배를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어처구니없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ridiculuous’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두 그렇게 미래를 현실로 가져왔습니다. 알을 품는다고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더라도, 머리에 바람만 들었다고 손가락질받아도 멈추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백남준, ’Are you ridi?’, 231p


그래서 저는 글을 극단적으로 씁니다. 최대한 자기검열 없이 나오는 대로 지껄입니다. 이게 있는 그대로의 나니까. 마음에 안 들면 너도 떠들면 되니까. 너도 글을 쓰면 되니까. 그렇게 시소의 양쪽 어딘가 자기 자리에서 신나게 나도 너도 떠들다 보면 우리 사회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것을 아니까 말입니다.
-극단적 균형, 내가 글을 쓰는 이유, 278p


정직, 성실, 근면은 가만히 있는 사람의 덕목입니다. 열정, 패기, 도전은 잘 노는 사람의 덕목입니다. 열정이 넘치다 보면 미처 정직하지 못할 때도 있고, 패기가 지나쳐 성실하게 일을 완수하지 못할 수도 있고,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한 가지 일에 근면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열정적인 사람은 인생에 근면한 사람이고, 패기가 넘치는 사람은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고, 도전적인 사람은 목표에 성실한 사람입니다. 자기보다 힘센 사람에게 정직하고, 비굴한 인생에 성실하며, 좀비 같은 하루하루에 근면한 인생보다 훨씬 나은 인생입니다.
-놀지 않은 자는 일하지도 말라, 3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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