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윤 Feb 13. 2024

ETIK/ NONFUNGIBLE:

대체불가한 당신의 이야기, NFA 전시, 후기



사이드 레터를 보다가 한 번에 꽂혀버린 전시, 오늘 드디어 다녀왔다!

배우가 아닌 한 사람 이야기가 오브제가 된다. 그들의 특기인 영상으로 담아낸 사적인 의미 아카이브, 대체할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 대화 그리고 그에 의한 퍼포먼스 아카이브 전시.


매우 사적이고 내밀했다. 어디에서도 체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감각이었다.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 앞 흑백 영상 속 그들의 눈을 바라보면 마치 그와 일대일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커튼을 열자, 작은 방 커다란 스크린이 앞 뒤로, 때론 한 면에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긴 퍼포먼스 영상과 토막 인터뷰, 하나하나를 소중히 듣고 보면 그들에게 직접 답하고 싶어 진다. 




누군가는 배우의 숨겨진 이면, 배우도 똑같은 사람이구나 공감을 느끼길 바라며 마음속 담아 온 감정을 터트렸다. 누군가는 진짜 모습을 담백하게 전하면서도 꼭 전해질거란 희미한 믿음을 은근하게 전했다. 누군가는 지금 자신을 하나의 현상으로 기록하길 바랐고, 누군가는 기대 없이 그냥 사람이 좋아서 순간 상호작용을 관찰하며 흐름에 맡기며 기록했다. 


전시 막바지 그들의 책에 메시지를 써서 마음을 전할 수도 있고, 그들처럼 질문 종이에 자신만의 답을 하며 미처 몰랐던 자신의 본질적 속성을 끄집어내어 기록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처럼 르동일 작가의 의자에 앉아 인터뷰를 하며 현재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풀어보는 체험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말했다. 관객이 무엇을 느낄지는 짐작할 수 없다고. 그냥 해보는 거라고. 그래서 멋진 전시회를 통해 생겨난 내가 받은 인상과 영감, 상호작용을 세상에 표현하고 싶었다. 






제한


'스피커로서의 배우는 제한적이다.'


공통적으로 배우로서 창조를 하고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직접 자기 생각과 감정, 이야기를 바로 쓰고 세계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작가, 가수, 화가 등 예술가와 다르다고, 그 창조물이 부럽다고 말했다. 배우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간직하며 살다가 어느 날 그에 맞는 역할이 주어지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비로소 협업을 통해 창조할 수 있을 뿐이라고.


그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산다. 그래서 배우 일을 사랑한다고, 오히려 사람으로서 자신은 지극하게 평범하다고, 콘셉트 같은 건 조금도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놀랐다. 단 한 번도 배우가 제한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배우는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아야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어찌 보면 그들은 중간 다리이다. 그들 마음대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없는 데다가 그들 모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 본모습이라고 부를 수 없는 여러 자아를 선보이며 매 번 다르게 창조한다. 그런데도 왜 작가에 비해서 배우가 유독 자유롭고 멋지다고 느꼈을까?


온몸 연기로 감정을 바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글이라는 매개를 통하지 않고도 그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의 말과 몸짓, 표정은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현존하는 예술 중 가장 공감할 수 있으며 몰입할 수 있는 느낌을 창조하는 작업이 배우에게 있다 생각했다. 


사람들이 배우를 사랑하는 건 단순히 그들이 잘생겼거나 예쁘다는 외적 매력에 전부 있지 않다. 삶을 은유하는 이야기를 짙은 농도로 현실세계에 창조하는 메신저가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의 연기를 보며 위로와 위안을 받고, 슬퍼하고 분노하며 그동안 해소하지 못했던 감정을 분출한다. 삶에서 찾지 못한 어떤 느낌을 간접적으로 얻는다.


그런 느낌을 기가 막히게 특출나게 뛰어나게 전달해 주는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연기를 잘한다. 좋은 배우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그들의 말처럼 선택과 작업의 형태에 있어서 배우는 제한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강도는 어떤 예술보다도 강력하다.





자유와 영향력의 상관관계를 생각했다.

이전 배우가 자유롭다고 생각한 데는 많은 이에게 비교적 크고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에 있었다. 예를 들어 사랑받아 유명해진 배우라면, 그가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을 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일 것이고 상대적으로 협업을 하거나 새로운 분야로 확장해 나갈 때도 그의 영향력이 수월하게 작용할 거라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힘에는 스피커 자체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비례한다고 생각했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 이것이 자유의 한 속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실제로 영향력을 가져본 적 없는 자의 반쪽자리 환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관심과 영향력이 커지기에 더 조심스럽고 제약이 생긴다. 작은 실수에도 비난받는다. 요새 세상이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며 답답해하는 그의 말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오히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말은 뭉텅 잘라내야 하고, 행동과 선택 범위는 좁혀진다. 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닌데도 그럴 자유와 권리가 있는데도 타인을 위한 배려를 명목 삼아, 사람들의 판단과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힘에는 대가가 따른다. 배우로서 자유로워지기.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나 자신으로 온전한 사람 자체로 살아가기. 외부인으로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다만 이 전시회를 보고 감동하고 좋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처럼 많다면, 앞으로는 더 그래도 된다. 그냥 그 사람 자체로 온전히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자신 안에 쏟아지는 이야기, 하고 싶은 메시지, 자연스러운 창조의 흐름을 막지 않고 다 세상에 꺼냈으면 좋겠다. 


또 그게 많은 이들에게 용기가 될 것이다. 그러니 힘들겠지만, 큰 힘에 억눌리거나 통제당하지 않고, 자신 그대로 살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자유롭게 펼치길 바라본다.



진짜


'배우는 AI로 대체될까?'


지창욱 배우님의 '설사 기술이 고도로 발전해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구현이 되어 감각적으로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진짜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순간과 우연의 힘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계산과 안전함, 알고리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논리와 지성으로 닿을 수 없는 어떤 경지의 영역이 있다는 걸 알 것이다. 박정민 배우님의 말대로 그냥 AI 배우는 탄생할 수 있겠지만 탁월한, 장인 AI 배우는 어렵지 않을까?

AI배우도 진짜가 될 수 있을까?


만일 AI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순간과 우연의 힘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면, 그땐 이미 사람 고유의 영역을 지닌 존재가 된 것이고, 굳이 배우가 아니라  전 영역에서 우린 더 이상 AI와 인간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배우 OOO이 아닌 사람 OOO으로서 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함께 이야기하고 관계를 쌓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편견과 책임을 벗어던지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들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싶었다. 마치 박정민 배우의 게임크루 '배도라지'처럼, 그 순간만큼은 무거운 짐이나 방어기제, 눈치 같은 건 벗어두고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서 아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한 편으로 상대적으로 유명세나 힘을 지니지 않은 평범한 누군가의 이야기 또한 똑같이 들어줄 것이다. 우리의 상호작용은 지금 여기에서 유효한 소중한 기회이니까. 진심을 다해 그 사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무엇이든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그렇게 한 발짝 더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싶다.


언젠가 그런 아카이브를 기록한 전시를 하고 싶다.





르동일 의자방 이야기 기록, 어렵지만 재밌었다 :D





나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하고 있는 모든 존재 힘내세요.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린 함께라고요. 


멋진 전시를 열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잊지 못할, 창조의 샘을 잔뜩 채운 대체불가한 전시였어요. 




전시는 이번주 일요일(2월 18일)까지 베이직 스튜디오에서 관람할 수 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니셰린의 밴시'가 찾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