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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Nov 05. 2023

낭만 물류 센터

2. 출고에서 경험한 나의 일들 : 출고 집품 개요

 내가 일하는 출고는 크게 집품(피킹), 포장(패킹)으로 나뉘어 있다. 상품 주문이 들어오면 집품 사원의 PDA에 어느 구역 어디로 가라고 뜬다. 예를 들어, 3.1층 D구역 45번으로 가라고 뜨는 식이다. 그곳으로 오토백이나 레일 집품 사원은 작은 카트와 토트라고 불리는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라지(싱귤) 집품 사원은 큰 카트와 토트를 갖고 간다. 그곳에서 구역 바코드를 PDA로 찍으면 화면이 상품과 개수로 바뀐다. 그러면 안내한 대로 그 장소에 있는 상품 그대로, 혹은 포장을 뜯어서 내용물을 개수에 맞춰서 바코드를 PDA로 찍고 토트에 담으면 된다. 여기서 센스를 좀 발휘한다면, 되도록 물건은 너무 많지 않게 담는 것이 좋다. 토트의 빨간 선 아래(아침 오후 교육 때마다 관리자님들이 빨간 선 아래로 담으라고 목청 터지게 매번 이야기한다.), 무게는 10KG 이하로, 개수는 10개가 안 넘어가도록 중간에 끊어서 토트 마감을 해주는 게 좋다. 많이 담으면 토트 드는 집품사원 본인 어깨도 아프고, 그걸 드는 간접사원(워터)분들 허리도 끊어지고, 포장하는 포장사원들도 너무 힘들다. 나는 전에 껌 150개가 든 토트를 받아 포장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너무 지겹고(안 그래도 원래 반복작업이라 지겨운데 더더욱 지겹다) 팔과 어깨도 너무 아프다. 150개를 30개씩 끊어 5개 토트로 나누면 5명의 포장사원이 각자 30개씩만 포장하면 되니 훨씬 수월해진다. 그러니 여러 사람 고생시키고 눈치를 받지 않으려면 (특히 관리자님들에게 전체방송으로 불려 가서 지적받고 싶지 않으면) 적게 담고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게 좋다. 라지(싱귤) 카트는 크다. 그래서 카트 자체도 좀 무겁고(여자들 기준, 내 주변 남자 사원님들은 오히려 더 편하다는 분들도 있었다.) 보통 적은 종류의 상품들이 많이 담긴다. 라지 카트는 보통 빈 토트는 아래에 두고 위에만 상품을 담는 게 센스다. 밑까지 채워 넣으면 사실 넣는 집품사원 본인 무릎도 아작 나고 그걸 올려주는 간접사원님들 허리도 아작 나고, 포장 사원님들 어깨도 다 나간다. 또한 라지도 적당히 개수를 토트 마감을 해서 끊어줘야 한다. 라지카트에 포장하기 까다로운 유리병 100개가 (특히 마감 시간에!) 담겨 다가오면 포장대에 선 나는 압박감이 장난 아니다. 나는 이제 100개의 유리병을 10분 안에 포장해 내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5개 카트에 20개씩 나눠 담아주면 5명의 포장 사원들이 힘을 합쳐 10분 만에 포장 100개를 다 끝낼 수 있다.

집품은 출고의 시작이다. 그래서 집품이 엉키면 말 그대로 막장 대파티가 벌어진다. 보통 관리자님들과 PS 님들이 골머리를 앓는 일은 집품에서 많이 터진다. 레일에 태울 것을 오토백에 갖다 놓는다던 가(이건 그나마 괜찮다. 늦게라도 태우거나 여기서 포장하면 되니까) 오토백에 갖다 놓을 것을 레일에 태운다던가 하면 마감이 미스가 난다. 그 토트는 레일을 타고 어딘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관리자님들은 토트를 찾아다녀야 한다. 주로 내가 일하는 3층에서는 처음 온 단기 사원님들이 집품을 많이 한다. 집품은 첫날 와도 잠깐만 배우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나는 처음에 집품이 재미있어서, 여기서는 내가 맘 편히 오래 일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집품은 마음만 편히 먹고 열심히 성실히 할 마음과 체력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적성이 다르듯 체감도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하루만 하고 도망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집품이 좋아서 집품만 몇 년씩 하기도 한다. 하지만 출고에서 '집품이 할만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웬만하면 출고에서 일을 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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