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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Nov 10. 2023

낭만 물류 센터 : 5. 집품 빌런

5. 사실, 좋지만은 않은 순간들 : 집품 빌런


"아~ 이거 또 이렇게 집품 해오셨네~"

"아유~ 이거 또 웬 집품 빌런이에요~"

우리끼리 집품을 잘못해오는 사람들을 집품 빌런이라고 불렀다. 작게는 같은 상품인데 색깔만 다른 것부터(이런 건 나도 이해한다. 나라도 실수할 수 있을 것 같다. 똑같은 마스크인데 색만 회색, 검정이라던가.) 크게는 물품 하나만 가져오면 되는데 박스채 갖고 오는 힘자랑 형까지 오집(잘못 집품), 미집(덜 집품. 10개인데 8개만 집품한다던가. 우리끼리는 왜 숫자를 못 세나 싶다), 과집(10개인데 30개를 가져와서 20개 남는 경우 등. 푸짐한 인심이다) 등 집품 빌런들은 항상 존재한다.


오토백 간접사원님들 중 고정으로 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우리끼리 그분 이름을 몰라 '장승 아저씨'라고 부르는 분이 있었다. 190은 넘어 보이는 키에 건장한 데다 무표정할 때의 표정이 매서워 보였다. 늘 절 앞에 있는 사천왕처럼 앞을 보고 말없이 서서 우리나 집품 사원님들을 지켜보다가 토트를 받아서 주시곤 해서 처음에는 정말 무서웠다. 그런데 일을 계속하다 보니 굉장히 친절하고 잘 챙겨주시고 일도 성실하게 하시는 좋은 분이었고 약간 귀엽기도 한? 재미있는 분이었다. 어쨌든 그분이 덩치와 힘이 엄청난 건 사실이었는데, 어느 날은 그 아저씨가 오류 토트를 평소처럼 들고 오지 않고 카트에 싣고 오시는 거였다. 생소한 모습이라 싱귤에서 포장을 하던 나는 그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아저씨 왈, '어휴, 이거 너무 무거워서 나도 못 들고 오겠어'.

으잉? 그 말에 놀라 고개를 돌려보았다. 저 덩치 큰 아저씨가 못 드는 물품이 있단 말이야?라는 생각에. 토트에는 뜯지도 않은 커다란 설탕 포대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상품은 포대를 뜯어 3kg짜리 설탕 하나만 가져오면 되는 거였는데, 집품하는 분이 잘못 이해하고 무려 3kg짜리 10개가 든 30kg짜리 포대 하나를 통째로 토트에 담아 온 거였다! 집품 상품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은 봤어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해온 사람은 나도 10개월 동안 처음 봤어서, 누구인지 궁금했다. 게다가 그렇게 잘못 집품해온 토트가 무려 4개가 더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굉장한 사람이다 싶었다. 무려 150kg를 잘못 집품해온 거였다. 쌓여있는 과집 토트들을 보며 관리자들은 한숨을 쉬었지만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친절하게 문제의 오류 토트 집품 빌런의 원바코드를 전체방송하며 불렀다. 잠시 후, 놀랍게도 별로 덩치가 크지도 않은 아주머니 한분이 나타났다.

'저 아줌마가 혼자 저걸 다 집품했다고?!'

정말 놀랠 노 자였다. 관리자들은 친절하게 아줌마에게 잘못 집품을 해왔고, 앞으로는 PDA를 주의 깊게 보시고 정확하게 집품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아줌마는 알겠다고 하고 다시 집품을 하러 갔다. 그때 나는 포장용 테이프를 한 아름 들고 내 팩 스테이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가다가 한 관리자님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어이없는 집품이라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는데 관리자님도 보시더니 왈,

"어휴...  힘도 좋아. 열받기도 지쳐요~"

나도 관리자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었다.


물류센터는 늘 사람이 부족하다. 일도 단순하고 크게 어렵지도 않고 해서, 거의 누구든지 다 받는다. 실제로 채용 과정에서 말 그대로 사람을 '걸러내는'시스템이 없다시피 한데, 때문에 종종 정말 너무나 업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야, 나문희 여사 떴다!"

우리끼리 일명 '공포의 나문희 여사'라고 부르는 할머니+아줌마가 있었다. 살이 아주 많이 빠진 연예인 나문희를 닮아서 우리가 그렇게 별명을 붙였는데, 정말 진심으로 일을 못 했다. 며칠을 일해도 집품 구역을 찾지를 못 했다. 저 아줌마는 도대체 셔틀은 어떻게 찾아서 타고 오는 건지, 점심때 식당을 찾기는 하시는 건지 의문이었다. 이런 사람은 본인도 힘들 테지만(힘들겠지? 아마도?) 주변 사람들도, 무엇보다 관리자님들의 골머리를 썩게 한다. 굉장한 능력을 발휘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화장실은 찾아갈 줄 알고, 화장실 간다며 1시간 동안 농땡이를 부리며 시급만 받아먹는 그런 짓을 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정말 모르겠다면 최소한 주변 사람들이나 관리자님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센터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내가 있는 센터는 ps사원님들도 관리자님들도 보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절하다. 저런 보살 같은 사람들을 열받게 만드는 굉장한 빌런들이 참으로 많다. 가끔 '저 사람은 일하러 올 게 아니라 나라에게 보살펴 주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싶은 사람들도 있다. 몸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거나 해 보이는 사람들이 일하는 걸 볼 때면 너무 안타깝다. 한 때 복지 쪽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몰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마음이 아픈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종종 내가 봐도 왜 저러나 싶은 양심에 털 난 사람들도 많다. 상품을 훔치거나 몰래 까먹는 사람부터 다른 사원님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싸우거나, 심지어 관리자를 폭행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오다 보니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이상하고 나쁜 사람들도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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