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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Jan 23. 2024

낭만 물류 센터 11. 셔틀 에피소드

11. 셔틀 버스 에피소드 : 새벽녘 그의 광란의 질주

내가 타는 셔틀 기사님은 잘 생겼다.

진짜다. 거짓말 아니다. 새벽녘 졸린 눈꺼풀을 안간힘을 쓰며 들어 올리며 버스를 기다린다. 그러다 버스가 저 멀리서 미친 듯이 달려온다. 문이 열리고, 셔틀 어플을 찍은 뒤 기사님을 보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든다. 정말 매일 아침 몇 번을 봐도 정말 잘 생긴 기사님이다.


그는 날씬하고 키가 크다. 잘생긴 얼굴에 단정한 셔츠에 버스 기사님들이 입는 조끼를 입고 늘 잘 닦인 구두에 정장 바지를 입고 온다. 다른 셔틀 기사님들은 말 그대로 '오늘내일하는' 나이 든 기사님들이 대부분인데 그는 정말 세련되고 멋지다. 게다가 우리 셔틀 기사님은 친절하기까지 하다. 버스 좌석은 언제나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고 버스 안에는 블랙체리향 디퓨저 향기가 난다. 졸리고 피곤한 새벽녘, 잔잔한 음악을 틀어준다. 사람들이 모두 정거장에서 타고나면 방송으로 '안전벨트 꼭 착용해 주세요'라는 안내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편히 자면서 갈 수 있도록 조명을 꺼준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후 운전대를 잡은 그는 미친 듯이 돌변한다. 그는 마치 오토바이 폭주족처럼 45인승 대형 버스를 운전한다. 말 그대로 난폭운전의 표본 수준이다. 우리가 자는 동안 그는 고속도로에서 분노의 질주를 찍는다. 그런데도 사고 한번 안 나는 게 정말 신기할 지경이다. 다른 지역 셔틀 기사님들은 그리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종종 접촉사고 같은 것들이 난다는 소식들이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원님들을 통해 전해지곤 한다. 나랑 친한 3층 막내가 하루는 나와 같은 셔틀 맨 앞자리를 타더니 하는 말, '언니~! 이거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어! 진짜 스릴 넘쳐! 정말 재미있어!' 나는 앞자리를 타면 무섭고 멀미가 나는데 이 아이는 놀이기구를 즐기나 보다. 우리 셔틀 기사님은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도로의 무법자가 되어 미친듯한 커브와 무시무시한 속도로 운전을 한다. 우리보다 가까운 지역도 1시간은 늘 넘게 걸리는 길을 길이 안 막히는 날이면 우리 셔틀 기사님은 무려 40분 만에 주파한다. 다른 사원들에게도 우리 셔틀이 유난히 빠른 걸로 유명해져서, 심지어 우리 지역 근처 사람들이 급한 일이 있으면 우리 차를 타고 퇴근하기까지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는 길이 막히지만 않으면 언제나 거의 1등으로 센터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는 도착할 때가 되면 지금까지의 광란의 질주를 한 사람답지 않게 은은한 음악을 틀며 잠든 사람들을 깨운다. 그리고 조명을 서서히 켜서 사람들을 깨우고 내리는 사람들 하나하나와 인사를 나눈다. 그는 운전할 때는 사나울지 몰라도, 정말 친절한 기사님이다.  


퇴근 시간, 그는 평소처럼 안전벨트를 매라고 한다. 어느 날은 이런 멘트를 한 적도 있었다. 

"오늘 길이 안 막힌다고 해서 제가 좀 밟을 거예요. 안전벨트 꼭 매세요"

그날 정말 뒷자리에 탔는데도 커브를 도는데 이러다가 버스가 옆으로 넘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버스를 타고 있는데 원심력이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정말 역대급 질주였다. 그는 평소에는 1시간, 막히면 2시간 반도 걸리는 거리를 그날 무려 30분 만에 주파했다. 친절한 그는 속도광이다. 하지만 사원들은 셔틀을 타고 오가는 시간이 길어 지루하다 보니 우리 기사님을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 퇴근할 때면 그는 "밖에 비가 많이 오네요. 길이 미끄러우니 내리실 때, 귀가하실 때 조심하세요"라는 스위트한 멘트도 날린다. 


우리 셔틀 기사님의 운전 방식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농담을 잘하는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그 기사님 집에 가면 딱지가 이~만큼~(팔을 양쪽으로 벌리며) 쌓여있는 거 아니야? 월급 받은 거 벌금 내느라 남는 게 있을까?"

그 친구의 농담에 다들 폭소하곤 한다. 


하루는 아주 더운 여름날, 버스 기사님들이 사비로 자기 셔틀을 타는 사원님들에게 퇴근 때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리기도 했다. 수고했다며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주는 버스 기사님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내가 다니는 물류센터는 버스 기사님들도 인간적이고 따듯하다. 나랑 친한 동생은 늘 버스에 목도리나 지갑, 사원증 같은 걸 놓고 내리곤 했는데 친절한 기사님이 매번 찾아주고, 내릴 정거장이 되었는데도 자고 있으면 깨워주시기까지 한다고 한다. 어떤 사원님은 내릴 때 폭우가 내리자 기사님이 자기는 차로 가면 된다며 자기 우산을 빌려주시기도 했다고 한다. 정말 좋은 셔틀 기사님들이다. 


가끔 약속이 있거나 해서 다른 셔틀도 타보았는데 우리 셔틀에 익숙하던 나는 정말 너무 오래 걸려서 지겨웠다. 이러다 집까지 언제 가나 싶었다. 보통 금요일 퇴근 때가 가장 막히는데, 정말 자다가 깨도 고속도로고, 자다가 깨도 여전히 고속도로였다. 친한 아저씨가 농담 삼아 길이 막혀 셔틀이 오래 걸릴 때, '버스에 앉아있는데 진심 욕창 생기는 줄 알았다. 유리창 비상망치로 깨고 걸어가고 싶었다'라고 하곤 했는데 정말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셔틀 기사님들은 친절한 아저씨들이고 언제나 성실하며 좋은 기사님들이다. 


가끔 셔틀 기사님이 아프거나, 무슨 일이 있거나, 버스가 고장 나는 등 이상이 생기면 버스 회사에서 대신 일일로 택시를 보내준다. 택시비도 버스회사가 내주고 한 번에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택시보다는 버스가 편하다. 어떤 사람들은 택시가 더 편하기도 하다는데 나는 그래도 버스가 더 편안한 것 같다.


퇴근은 누구에게나 신나는 일이다. 특히 하루종일 서서 몸을 써서 일하는 물류센터에서는 퇴근 한 시간 전이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이제 한 시간만 참자. 셔틀 가서 자야지.'

퇴근을 하면 다들 신나게 셔틀로 달려가서는 그대로 기절한다. 퇴근할 때면 '아 오늘 너무 힘들었다. 내일 연차 쓰고 쉴까....'싶다가 도 셔틀에서 달콤한 꿀잠을 한 시간쯤 자고 내릴 때면 '내일도 또 가서 돈 벌어야지~'하며 내리게 된다. 나는 셔틀에서의 꿀잠이 정말 너무 달콤하고 편했다. 교통비도 전혀 안 들고(나는 이전 직장에서 매달 거의 교통비를 십만 원 가까이 쓰곤 했다) 출퇴근 시간에 만원 전철이나 버스에서 사람에 치여 서서 가거나 갈아타지 않아도 되어서 나는 물류 센터 셔틀이 마음에 든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늘 앉아서 가고, 출근 전, 퇴근 후 온전히 푹 쉬는 기분이라 나는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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