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라 Nov 12. 2023

낭만 물류 센터 : 9. 몸과 마음의 고민들

9. 사실, 좋지만은 않은 순간들 : 몸과 마음의 고민들

"아니, 어디서 일하길래 이렇게 아파요?"

"아...  저 물류센터에서 일해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아픈 곳을 표시하라는 종이에 나는 목, 어깨, 팔, 팔꿈치, 손목, 손, 허리, 무릎을 표시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된 이상, 몸의 아픔을 피할 수 없다. 몸으로 일하다 보니 다들 아프다. 나만 아픈 게 아니다. 다들 어딘가 한 군데 고통을 안고 일상인양 씹으며 일을 한다. 매일 아침마다 물류센터 단체 카톡방에는 어디가 아파서 병가를 낸다, 어디가 안 좋아서 결근을 한다는 카톡이 뜬다. 다들, 어딘가 하나씩 아프다. 사실 만근을 하는 사원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내가 다니는 센터도, 관리자들도 알고 있다. 그렇게 보면 결근을 안 하는 ps사원들이나 관리자들의 정신력과 체력은 대단한 것 같다. 친한 사원들끼리는 용하다는 물리치료 병원, 한의원 정보를 공유한다. 어디가 좋다더라, 어디서 침을 맞으면 괜찮다더라. 애초에 일을 해서 아픈 것이므로 사실 어떤 용한 치료를 받아도 일을 쉬지 않으면 온전히 낫지 않는다. 일을 쉬면 낫고, 일을 다니면 아프다. 물류센터를 다니는 한, 그저 이런 단순한 공식을 몸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아... 언니ㅋㅋㅋ 너무 지겨워요"

"나도ㅋㅋㅋ 이거 진짜 너무 지루하다"

친한 동생과 포장을 하다가 허탈하게 웃는다. 빼빼로 데이가 다가오면서 나와 그 동생, 이 센터의 모든 포장 사원들은 7시간째 빼빼로만 포장하고 있다. 평소에는 그나마 포장 상품들이 다양하지만 추석 설날에는 선물세트가 밀려오는 등 시즌 상품이 유행할 때는 같은 상품만 몇 시간이고 포장하기도 한다. 정말 지겹다. 안 지겹다고 말할 수가 없다. 어떤 업무이든 반복 작업이므로 다들 이런 지루함을 참고 일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단점은 있고 참아야 하는 지점은 있으니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뇌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겹다.


"너 왜 울어?!"

"언니.... 흐흐흑....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왜?"

"내 또래 20대 친구들은 사무실에서 멋지게 일하는데...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요... 나는 미래가 없는 것 같아요. 내 인생은 막막해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런 생각 말아..."

함께 일하던 동생이 울었다. 열심히 마음을 달래고 위로했다. 그건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와도 같았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이 일에 의미가 있는 걸까?', '내 앞에서 10초도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감정 없는 물건을 난 사랑할 수 없어. 내가 여기에 매진해서 남는 게 나중에 있을까?', '이 일에 미래가 있는 걸까?' 하는 나 자신에게 드는 의문들은 반복 작업을 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도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물론 다른 일들도 그럴 수 있지만, 이런 단순 반복 일을 하다 보면 자주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매번 나도 이 생각을 씹어 넘기며 일한다. 30대인 나도 그런데, 20대의 꽃 같은 이 동생에게는 이 물음이 잔인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사람들마다 다르고 다양할 것이다. 그건 모두 각자의 몫이다. 일단 나는 내가 일하는 곳의 사람들이 무척 좋아서, 그 사람들 속에서 일하는다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니까 나는 나의 해답을 믿고 전진하고 있다.


여름엔 덥다. 정말 살인적으로 덥다.

나는 이 물류센터 일을 좋아하지만 물류센터의 여름은 정말 나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거의 매달 만근을 하는 나도 여름엔 결근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여름의 물류센터는 정말 도저히 커버를 쳐줄 여지가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 일주일에 한 명씩 픽픽 쓰러져 나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EHS(물류센터 내 양호실 같은 곳)으로 감정 없이 이송할 수밖에 없는 관리자님들, 그 모습을 보고도 외면하고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사원들의 광경은 정말 사실 용납하기 힘든 장면이다. 사실 이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쓰러진 사람은 더웠을 뿐이고, 관리자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게 한계이며, 사원들도 딱히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이 문제만은 감히 운영자들, 물류 업체의 수뇌부들의 도덕성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냉방시설 설치는 관리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관리자들도 똑같이 땀을 줄줄 흘리며 찜통을 뛰어다니며 일하는 건 마찬가지다.

초등학교에 에어컨 설치를 안 한다면 그건 교사나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다. 에어컨 설치를 결정하고 돈을 쓰고 결재를 내리지 않는 교장의 책임이다. 나는 물류센터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언론에서 지적하듯 나는 물류업체 CEO들의 도덕성과 인간성에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 자신이, 그들의 가족이 단 하루라도 여기서 한여름에 일해봤다면, 이 수만 명의 물류센터 종사자들을 이렇게 하찮게 취급할 리가 없다. 이건 정말 그들이 도덕적으로 각성해야 한다고 본다. 이 문제는 실제로 일의 효율성을 굉장히 떨어트린다. 보통 여름에 날이 더워지면 사람들이 집에서 온라인 쇼핑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물량이 폭증한다. 그러나 이런 미친듯한 더위 때문에, 아무리 추가수당과 인센티브를 뿌려도 단기 사원들과 안정적인 기술을 가진 계약직 사원들이 말 그대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여름이면 심지어 관리자들도 못 버티고 퇴사해 버리곤 해서, 여름엔 관리자들도 엄청나게 뽑는다. 물량은 터지는데 일할 사람은 없으니 작업 난이도도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

 오래가는 대기업, 중소기업 공장을 가도 경력 5년, 10년의 기술직들이 흔하다. 이들이 사실 그 기업을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기여하는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이다. 하지만 물류센터의 사원들에 대한 취급은 왜 물류센터에 장기간 근속하는 사원들이 적은 지를 보여준다. 청소부도 20년 근속자는 신입과 다른 내공이 있다. 일에는 귀천이 없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안전과 생존을 보장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그 기업의 장기적인 역량과 도덕성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물류센터의 냉난방은 정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큰 숙제다.

작가의 이전글 낭만 물류 센터 : 8. 마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