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의 다리

Children Of Disabled Adult

by 김로사

아빠의 다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를 닮아 아주 작은 몸집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우리가 말하는 다리는 단순한 인체의 물리적 이동수단이 아니다. 세상의 보편적인 일상 앞에 닿을 수 있도록 언제든 어렵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는 다리를 말하는 거다.


얼마 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코다>를 봤다. 작품의 제목인 '코다(coda)'는 농인 부모에게서 자라온 청인 자녀를 의미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플롯 자체는 특별할 것 없었으나 농인 부모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아름다웠다. 장애인이 아닌 그 자녀의 삶에 집중했다는 것과 농인 배우들의 아름다운 언어로 <코다>는 좋은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감히 평가할 위치는 되지 못하다만, 과거에 비해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성장함을 느낀다. 유튜브만 찾아봐도 장애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영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중에는 간혹 '장애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과 같은 주제의 영상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런 영상들은 인식 개선을 위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한 달 전 즈음, 아버지의 예순넷 생신을 위해 온 가족이 모였다. 나는 그를 위한 짧은 글을 한 장 적어갔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낭독했다. '아빠는 저에게 있어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울음으로 목구멍이 막히는 바람에 얇고 괴상한 소리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멋없는 목소리에 괜스레 가족들을 향해 호쾌한 척 웃음을 보였다. 나라는 한 사람이 웃음을 보이자 자연스럽게 모두가 소리 내어 행복하게 웃었다. 모두가 잔뜩 붉어진 눈으로.


아빠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다. 한 번도 변한 적 없던, 너무나도 익숙한 사실 한 문장을 적는데 눈물이 난다. 새삼 이 눈물은 누구를 위한 눈물일까 싶다. 아빠를 포함한 장애인에 대한 연민일까, 아빠가 장애인이었던 내 그간의 설움일까.


나는 아빠에게 집착하는 버릇이 있다. 유학을 가보라는 엄마의 권유에 '아빠가 걱정돼서 떠나지 못한다'라고 대답했고,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이유를 물으면 '아빠를 위한 영화를 찍기 위해'라고 대답한다. 그를 핑계 삼는 태도가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렸다. 20대 초반, 우울증에 시달렸을 때는 '아빠를 보필하느라 내 삶이 없었기에'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심지어 지금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풀리지 않는 이야기의 해답을 아빠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기에 그저 고민하며 더 효율적인 다리가 되고자 했다. 아빠에 대해 더 알게 되었으니 괜찮은 방법이었지만 정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대 중반이 된 지금도 내가 쥐고 있는 이 축축한 실타래가 언제쯤 전부 풀릴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영영 풀다가 지쳐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정답을 찾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나는 끈적한 보풀이 일은 실타래의 끝을 잡고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풀고 푸는 방법이 남았기에.



이전 09화2. 나쁘지 않은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