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쁘지 않은 아빠

무분별한 연민은 장애인을 가해자로 만든다.

by 김로사

우리 가족은 꽤 주목을 받는 편이었다. 그 이유는 '장애인 가족'에 '기초생활수급자'라는 타이틀. 기분 좋게 '선한 가족'과 '엉뚱함' 정도, 더 넣어도 괜찮으려나.


3살 터울의 늘씬한 언니와 연년생의 말발 좋은 남동생, 그리고 야무진 성격의 나. 우리 삼 남매는 꽤 쾌활한 편이다. 동시에 셋 다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누구에게나 무해한 분위기를 풍기곤 한다. 또 남매끼리 우애도 좋으니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는 우리를 마냥 기특하게 여겼다.


"이런 가정에서 이렇게 착하게 자라줬으니 얼마나 기특해."


그런데 우리 셋, 사실 그다지 기특한 편은 아니었다.

언니는 통통 튀는 외모와 끼로 뮤지컬 배우를 하겠다며 공부는 뒷전, 예체능 학원을 전전하기에 바빴고, 동생은 마음의 갈피를 좀처럼 잡지 못해 이리저리 비행을 즐기러 다녔다. 그나마 내가 의자에 앉아있는 편이었는데 사실 공부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책을 읽거나 이런저런 공상을 하는 데 시간을 곧잘 날리곤 했다. 그래도 차분해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어째서인지 학교에서 나는 나름 모범생으로 꼽히고 있었고 반장 부반장 자리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나는 애매하게 공부에 손을 대서 전교 20~30등 정도를 지키고 있었는데 고삼이 되던 해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당시 언니의 영향을 받아 배우를 꿈꿨지만 몇 가지 현실적인 장애물에 버티지 못했고, 대안으로 영화 연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1년의 재수 끝, 적당한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담배를 배웠다. 담배는 나와 썩 맞았다. 보통 처음 피게 되었을 때 기침을 하거나 매캐한 연기에 인상을 찌푸릴 테지만 나는 속이 개운함을 느꼈다. 나는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데 작고 얇은 담배를 조금씩 피워 형태를 변화시키는 행위와, 내 숨의 아지랑이를 보는 것이 재밌기도 했다. 동생은 흡연 선배로서 내가 뒤늦게 흡연을 배웠다는 소식을 듣고 어른스러운 미소를 보여줬다. 동생은 기분이 좋은 나머지 나의 흡연 사실을 자기 친구들에게 알렸나 보다. 동생 친구들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고 했다.


"그래, 로사 언니 담배 필 만 하지. 오히려 오래 참은 거야."


그 당시 우리 아빠는 합병증으로 COPD라는 불치병을 판정받아 병원 살이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동생 친구들은 나를 '친구의 누나'정도로 알지, 내 개인적인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 그들이 말했던 '담배 필 만 한' 상황은 아빠의 불건강이 주도한 집안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아빠는 아픈 아빠를 넘어서 자녀의 손에 담배까지 쥐게 만든 나쁜 아픈 아빠가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고하건대, 내 성격이 쾌활한 건 전혀 기특한 일이 아니다. 아빠가 장애인이었든, 장애인이 아니었든 나는 쾌활한 성격이었을 거다. 또, 내가 담배를 피우게 된 이유는 그 개운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의 건강으로 인해 집안 상황이 힘들었던 것과는 아무래도 별개다.


장애인의 자녀라면 음울한 성격을 지녀야 하는 걸까. 장애인의 자녀가 담배를 피우는 건 비장애인의 자녀가 피는 경우보다 그럴싸한 걸까. 물론 내가 의문을 품었던 두 문장엔 우리를 위로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담겨있음을 잘 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나라도 예민하지 않으면 우리 아빠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쁜 아빠가 될 수밖에 없다.


무분별한 연민은 장애인을 가해자로 만든다. 장애인 인권에 나름 신경을 쓰는 수많은 사람들을 비꼬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함께 조금 더 생각해주길 바랄 뿐이다. 실은 나조차도 장애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애초에 그들 앞에서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생각부터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거겠지. 오랜 기간 고민했음에도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순간들을 공유하려고 한다. 아빠는 몸이 불편할 뿐이지 나쁘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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