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브레스'

숨, 품.

by 김로사

핏기 없는 하얀 발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나는 그 맥없고 가벼운 이동을 지켜보다가 은근히 그 발을 만진다.


아빠는 외출하기 전 얇은 다리 위에 알루미늄 보조기를 씌웠다. 소아마비로 인해 발은 조그맣고 다리는 소년처럼 얇다. 한 손으로도 들기 충분한 그 가벼운 다리를 알루미늄 스틱 사이에 대충 끼워둔다. 작고 하얀 발을 발판 위로 올리고 발등에 위치한 남색 레자 벨크로를 잘 붙여준다. 이어서 정강이와 허벅지에 캐러멜 색상 가죽 벨트를 매어 다리를 고정한다. 이렇게 보조기 착용을 완료하면 마지막으로 바지를 입는 일이 남았다. 허벅지까지 바지를 올린 다음 엉덩이 위로 바지춤을 추켜올린다. 아빠는 바지춤을 올릴 때 종종 내게 도움을 청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힘껏 그의 바지춤을 당겼다.


그가 가장 애를 먹는 구간은 휠체어로 오를 때였다. 먼저 휠체어 발판에 엉덩이를 올린다. 여기까진 쉽다. 그다음은 좌석으로 가야 한다. 순간적으로 엉덩이를 옮겨야 하는 이동 범위가 넓어진다. 이때도 누군가 그의 바지춤을 잡아 좌석 위로 올려야 한다. 그의 몸무게는 상체에 몰려 있다. 엉덩이를 들어 올리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질 위험성이 있다는 말이다. 몸집이 유독 작은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아빠의 바지춤을 잡아당기며 제발 내 손이 미끄러지지 않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아빠는 한때 목발을 이용해서 더딘 걸음을 하기도 했다. 목발을 짚을 때나 휠체어를 탈 때나 보조기는 잊지 않았다. 그 보조기에서는 약간의 녹 냄새와 누룽지 사탕 냄새가 났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에는 보조기도 목발도 없다. 지금 신체 컨디션으로는 목발 이용이 불가능하단 걸 알지만, 도대체 언제를 기점으로 사라졌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새삼 그 물건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아빠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여쭤봤다.


"야 그걸 뭐 하러 찾냐. 망치로 다 부숴 버린지 오래지."

"왜 부셔?"

"아이, 흉물스럽잖아."


아빠는 날카로운 철 소리를 내는 그 보조기를 싫어하셨나 보다. 알지 못했다. 매일같이 착용했던 그 보조기가 어느 날 문득 흉물스러워 보였을까. 더 이상 목발을 짚을 힘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을 미루고 미루다가 목발과 함께 부셔서 집 밖으로 내버렸을까.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이미지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아빠한테 그 보조기의 명칭을 여쭤봤다. '브레스'라고 불린다는 그 보조기는 인터넷상에서도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 '브레스'는 정식 명칭이 맞을까. '브레스'는 '숨'을 뜻할까. 나는 기어코 눈을 감고 '브레스'를 떠올리며 콧속을 감도는 꼬릿한 누룽지 사탕 냄새를 굴린다. 냄새가 옅어져 없어지면 눈을 뜨고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그 차갑고 딱딱하고 흉물스러운 물건을, 나는 이제 와서 왜 찾는 걸까.'

생각 끝에 옅은 웃음이 나온다. 나는 초등학생 때까지 휠체어에 타고 있는 그의 무릎에 앉아 있길 좋아했다. 딱딱하고 차갑고 불편했던 그 품에 그렇게 앉아 있고 싶었다. '브레스'는 나에겐 아빠의 품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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