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서 입주를 거절당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가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자고 제안했다. 평소처럼 밝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이사라는 것을 처음 경험해보기 때문에 매우 신이 난 상태였고, 동생과 언니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당시 우리는 아파트 20층에 살고 있었는데 거실로 나 있는 통유리창으로는 아직 개발이 덜 된 낮은 마을이 보였다. 그곳에는 오래된 시골집 몇 채와 간간이 크고 작은 음식점들이 있었고, 대부분은 논과 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엄마는 우리 셋을 품에 안고 창가로 가서 "우리가 살 집을 찾아보자."라고 말씀하셨다. 새집에 대한 설렘이 가득한 대화를 한참 나눴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우리는 다 같이 그 마을을 찾았다. 낡은 벽돌집 밖에 없는 마을인 줄 알았는데, 나름 전원주택 마을이라고, 하얀 집들이 10채 정도 모여 있는 마을 속 마을이 있었다. 그중에 입주를 마친 가정은 몇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신설된 마을이었다. 그런 형태의 거주지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눈은 반짝이며 이곳저곳을 굴렀다. 그중에 우리는 한 채를 결정했다. 똑같이 생긴 열 채의 집 중에 중간에 위치한 집이었다.
서서히 이사를 준비했다.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맨발로 생활할 공간이니 깨끗하게 청소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는 쓸고 닦고 닦았다. 엄마가 비누 물을 만들어주셨다. 각자 손에 들린 걸레에 비누 물을 잔뜩 묻힌 후, 각자의 구역을 정해 네 발로 기며 바닥을 닦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우리는 다 같이 중국집 음식을 시켜 먹었다. 마당으로 나오면 저 멀리 아파트가 보였다. 차를 타고 가면 5분도 안 되는 거리이지만, 우리는 굳이 굳이 아무것도 없는 새 집에서 잠을 자곤 했다. 엄마가 비닐과 담요들로 포근한 이부자리를 깔아주셨고, 아빠는 뒤이어 휠체어에서 내려오셨다. 제대로 된 베개도 없이 서로 팔 배게를 해주며 단잠을 청했다.
그날 역시, 우리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엄마도 무릎을 꿇고 청소를 하다가 전화 벨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네! 여보세요?"
우리 엄마가 가진 목소리의 힘은 상당하다. 풍채가 좋기도 하시지만 그토록 당당하고 힘 있는 목소리는 평상시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마인드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안다. 그러던 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라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토끼 같은 우리 남매는 모여서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엄마가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동생이 들고 있던 걸레에서 물이 똑, 똑 떨어진다.
내 다음 기억은 집 안이 아닌 주택 마을 입구다. 아빠의 은색 소나타도 집 마당이 아닌 마을 입구에 애매하게 걸쳐 있다. 아빠는 운전석에, 우리 세 남매는 뒷좌석에 무릎을 부딪치며 앉아 있다. 차창 너머 엄마가 집주인과 서 있다. 엄마의 표정이 그 어떤 때보다 일그러져 있었다. 우리는 차창을 내리고 몸을 창밖으로 기울여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요. 장애인이 있으면 입주가 안 된다니요."
"우리가 지금 입주자를 막 받고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하세요."
"계약할 때 이야기를 하셨어야지, 이제 와서, 청소도 다 해놨더니 왜 그러시는데요."
"글쎄 우리 딸 수미가 장애인이 있으면 안 된다고 그러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린 집주인과 계약을 마치고 입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집주인의 딸내미가 부모님을 뵐 겸 마을을 찾아온 사이 우리 가족을 발견한 거다. 그리고 한 명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그래서 입주를 거절한다.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