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서 입주를 거절당했다.
엄마는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집주인과 계속 말씨름을 이어나갔다. 어느새 해가 져서 가로등 불빛에 엄마의 표정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결국 집주인 딸이라는 수미가 등장했다.
"장애인이 있다고 저희한테 미리 말을 했어요?"
수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안 된다면 안 된다는 거죠!"
아빠는 가만 운전석에 앉아 계셨다. 엄마가 눈물을 참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우리는 보탬이 되고 싶어서 차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들 주변을 서성이며 "우리가 청소도 다 해놨는데!", "나쁜 어른!" 등 소심하게 외쳤다.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고, 등을 돌렸다.
엄마는 우리에게 차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거짓말쟁이!" 우리는 끝까지 작고 소심한 외침을 하고 차 안으로 순순히 들어간다. 다시 차창으로 바라보는 그들은 조금 지쳐 있는 듯했다. 누구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때 아빠가 차 문을 열었다. 운전석 바닥에 놓여 있는 목발을 꺼내 들어 작은 몸집을 일으킨다.
그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천천히 다가간다. 무덤덤한 표정이다.
우리 남매는 침을 꼴딱 삼키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지만, 아빠의 목소리가 워낙 낮고 조용해서 들리지 않는다. 얼마 있지 않아 아빠는 가만히 서 있는 그들을 뒤로하고 몸을 돌려 차로 돌아온다. 엄마도 한숨을 쉬더니 아빠를 따라 돌아온다. 아빠는 말없이 시동을 걸어 마을을 나선다.
어느 정도 크고 나서 알게 된 이야기인데, 우리 집이 아파트에서 작은 주택으로 옮겨야 했던 건 집이 압류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차를 타고 마을을 나서는 길에 아빠와 엄마가 느꼈을 감정은 그 어떤 때보다 처참했을 것이다.
긍정적인 뒷이야기를 알려주자면, 우리는 더욱 멋진 집을 찾아 이사를 했다. 우리는 새로 입주한 집에 '하이(hi) 집'이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재밌는 건 수미 마을의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주택이었다는 거다.
수미 이야기는 우리 세 남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이다. 장애인 가족이라서 차별을 받았던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었다. 17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 사람의 이름이 생생하다. 수미. 그 사람은 왜 꼭 그런 결정을 내려야 했을까. 도대체 얼마나 멋진 마을을 계획하길래 장애인이 살면 안 되는 걸까. 장애인이 살면 마을의 질이 떨어진다는 질 떨어지는 생각은 도대체 언제쯤부터 하고 있었을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빠한테만큼은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아빠는 그날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무슨 말을 전했을까. 그가 오래 고민했던 말들이 한 자도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됐기만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