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밤
평소 차분한 나지만 가끔 폭발하는 장난기를 주체 못 할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 퍼뜩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행할 수 없을 땐 혼자 몇 번이고 상상하면서 몰래 웃는다. 예를 들어, 조용한 도서관에서 갑자기 큰 목소리로 행상인 놀이를 한다던가 홀로 버스킹을 하고 있는 댄서의 옆에 묘한 춤을 추며 다가가 파트너가 되는 상상을 하는 거다.
우리 집 마당에는 아빠의 작업실 겸 작은 별채가 되는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었다. 이 또한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인데, 내가 하교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빠는 항상 작업실에 계셨다. 그는 그 안에서 도장을 파고 도자기를 빚고 가구를 만들었다. 나는 어디서 못된 장난을 배워와서 반년에 한 번 정도는 기절을 하는 장난을 쳤다. 컨테이너 입구까지 거의 다 와서 철푸덕 쓰러지는 거다. 아빠는 깜짝 놀라 꺼둔 전동휠체어의 시동 버튼을 누르고 황급히 바퀴를 돌린다. 기긱- 긱-. 그리고 기어코 아빠가 내 쪽으로 왔을 때는 "아우 잘 잤다." 하면서 몸을 일으킨다.
"야! 깜짝 놀랐잖아-."
아빠는 매번 놀랐고, 매번 몸을 일으키는 내 모습에 뒤늦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몸이 불편한 아빠한테 과한 장난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는데, 몸이 불편하지 않은 아빠였으면 떠오르지도 않았을 장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장난기는 전부 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는 종종 웃긴 표정을 지어 나를 웃겼다. 고개와 눈알을 위로 젖히고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어 우스꽝스러운 표정이다.
우리 세 남매가 모두 초등학생이었을 때 아빠는 술을 많이 마셨다. 아빠가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동생과는 달리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만 아빠의 입에서 나는 술냄새는 좀 지겨웠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 집 화장실에는 10cm 정도 되는 문턱이 있었다. 일반 가정이라면 별 일 아니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이 턱이 조금의 문제가 됐었다. 바로 아빠가 화장실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변기에 앉기 위해서는 휠체어 앞바퀴를 10cm 이상 들어서 턱에 고정시켜야 했다. 그럼,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에 문턱이 끼인 꼴이 되어 아슬아슬하지만 아빠가 혼자 변기로 몸을 옮길 수 있었다. 팔힘이 좋았던 아빠는 보통 혼자 문틀을 잡고 본인이 앉아있는 휠체어의 앞바퀴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날은 아빠가 술을 마셨고, 덕분에 기분도 좋으니 딸에게 애교를 떨고 싶었나 보다. 거실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있던 나를 불렀다.
"로사야. 아빠 딸아. 아빠 좀 화장실에 넣어줘~."
나는 술에 취한 아빠가 귀찮아서 구시렁거리며 일어났다. 휠체어 후면에 달려 있는 손잡이를 잡고 30도 정도, 기울인다.
"아빠 딸~"
아빠는 꿍해 있는 내 얼굴을 보곤 괜히 장난을 치겠다고 몸을 뒤로 재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날따라 아빠의 술냄새가 싫었나 보다.
"아, 하지 마."
대충 아빠를 끼워 넣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어...."
몇 초 지나지 않아 맥없는 비명소리와 함께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휠체어가 넘어가 있고, 아빠는 그로부터 1미터 정도 튕겨져 나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빠는 정자세로 누워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눈알이 전부 돌아가 마치 자신의 뇌를 보려고 용을 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하. 아빠?"
나는 잔뜩 굳은 상태에서 아빠를 향해 웃어 보였다. 웃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