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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에이스 Jul 19. 2022

빨간 신호등, 건널 준비 하시라!

-빨간 신호등 다음엔 파란 신호등이 켜짐-  

 -2020년 여름 어느날-
 어라 이거 좀 힘든 시기인가 보다. 멀리 나를 밀어내려는 물줄기를 거슬러서 죽어라 팔을 젓는 것만 같은 때이다. 입에서 나는 건 단내이고 나오는 것 한숨 뿐이지만 그래도 성공적이라고 말해본다. 때가 되면 배도 고프고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음식도 생각나는 정도이면 나름대로 살아가는 중이 아닐까 싶다. 나만 힘든 것 같아서 그래서 세상 사람 모두가 부러운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린 다 알고 있다. 대지의 기운과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서 손을 대는 것마다 또는 내딛는 걸음마다 절로 이루어지는 인생이 있을까? 없다. 그래서 덜 힘들고 한번 다시 딛고 일어나보려고 한다. 

 인생에 있어서 몇번의 변곡점이 있고 그걸 나열해본다면 나름 굴곡이 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큰 문제가 없이 지내왔던 것 같다. 대학 졸업 1년을 앞두고 취업을 하고 해외에서 근무도 해보고 또 첫 직장을 퇴사한 이후에는 실컷 여행도 해봤다. 감사하게도 1년의 외유를 마치고 귀국한 이후에는 공백기 없이 희망했던 회사에 취업도 했다. 그런데 하하 참 의도치 않게 갑작스럽게 16년의 근무 이후 그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애정하는 회사와의 헤어짐으로 인한 열병 그리고 계획에 없던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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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뉴요오옼, 소호 근처 어딘가

 2006년 봄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추웠던 뉴욕을 잠시 여행했었다. 공항 근처의 호텔을 하나 잡아두고, 낯선 곳에 대한 겁도 없이 센트럴파크에서 달리면서 뉴요커처럼 지내보겠다고 떠난 여행이었다. 처음 가는 미국 여행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 큰 맘먹고 D80이라는 입문용 카메라를 구매해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다녔다. 

 옆의 사진은 내 기억에 소호가 끝나는 어느 지점에서 막막한 심정으로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중에 신호동과 거리의 풍경에 반해 갑자기 찍었던 사진이다.  잠도 안 오는 이 밤에 문득 이 사진을 보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마찬가지로 갈 곳을 몰라 헤매고 있었는데, 어떤 여유로 이 사진을 찍고 즐거워했던 것일까?

 내 기억에 흥분과 불안감이 교차했던 뉴욕 여행이었다. 말로만 듣던 뉴욕인데 제대로 된 지도도 없었고, 나침반은 커녕 발신, 수신 기능밖에 되지 않는 휴대폰만 들고 있었다. 혹시 지인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라. 내 주변에는 모조리 시골 사나이뿐이라, 저 당시까지 미국 땅을 밟아본 것도 나뿐이었으니,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기분이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GPS가 인도하는 손 안의 세계 지도가 있지만, 저 때의 나에겐 객기와 약간의 돈 뿐이었다.

 당장 어디서 밥을 먹을지, 내가 있던 공항 근처 호텔로 가는 마지막 지하철 시간이 몇 시인지도 모르는 막막함 등으로 인한 두려움을 마음 한편에 갖고 있던 여행이었지만, 결국 지나고 보니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더라. 그 날의 일과는 -아마 뉴욕의 첫날이었는데- 센트럴 파크에서 핫도그를 먹으며 시작해서 소호를 구경하고 그리고 저녁 무렵 맨해튼 중심가의 한식당을 어찌어찌 찾아가 한국에서도 안 해 본 혼삼겹 굽기로 마무리하였다. 뿐만 아니라 늦은 밤 뉴욕에서 뉴어크(Newark)의 호텔로 가는 마지막 기차까지 잘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왔을뿐더러, 심지어 뉴어크의 기차역에서는 갑작스러운 자신감으로 호텔의 셔틀을 호출에서 복귀하는 것으로 어마어마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내가 줄기차게 달려온 길에는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고 주변에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어쩌면 잘못될지도 모르는 그런 갈림길들이 널려있다. 겁도 나고 무섭지. 그래도, 그래도 비록 내가 그런 갈림길과 빨간 신호등 앞에 서있다고 해도, 2006년 뉴욕에서의 나처럼 무사히 밥도 먹고 또다시 행복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가는 길 위의 빨간 신호등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가라는 신호이다. 그 뿐이지 이곳에서 영영 멈추라는 것은 아니다. 사진의 빨간 신호등도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자 잠깐 기다렸다가 내가 파란불로 바뀌면 다시 힘차게 걸어오렴."
 두려움과 걱정에 빠진 사람들 다 주먹을 꼭 쥐고 힘내서 걸어갈 준비를 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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