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만들고 딸이 써주는 책 1편
시작, 치매검사
나 방금 치매검사받았어.
점심 무렵 가족 단톡방에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엄마의 단출한 카톡이 툭, 던져졌다. 전부터 입버릇처럼 치매 걸렸나 봐, 자꾸 까먹어, 나 요즘 말이 잘 안 나와라는 등의 소릴 하긴 했었다. 그래서 어디 인터넷에 떠도는 무료 검사라도 받았나 싶어 어디서 받았냐고 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생각보다 본격적이었고 대뜸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자녀와의 상담도 필요하다는 취지로 몇 가지 질문들이 달려들었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아니꼽고 불쾌한 감정이 목구멍에 치받쳐 올랐다.
늘상 “나 치매인가 봐. “라고 하는 엄마에게 나는 “엄마는 성격이 급한 거야.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말해야지. 엄마 다른 거 기억 잘하는 거 많잖아!”라고 통상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전달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크게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 나는 외골수이며 사실을 중시하고 실용적인 현실주의자 ESTJ니까. 그래서 왜 이런 검사를 엄마가 가서 받아야 하며, 그걸 위해 내가 이런 답변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쨌거나 이미 검사는 엎질러진 물, 당장에 우리 엄마 치매 아니에요!라고 외쳐야만 할 것 같다가(보건소 직원이 무슨 죄라고) 꾹 참고 성실히 답변했다. 결과는 며칠 후 나온다는 형식적인 안내를 받고 전화는 끝났다. 이후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도 내 주장을 지속 관철했다. 엄만 치매가 아니야. 성격이 급한 거라니까. 약간의 우울이나 스트레스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어. 불안해할 필요 없어. 맛있는 거 먹고 운동도 하고 그러자. 이런 검사해봤자 기분만 안 좋잖아.라고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웃으며 전화통화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친한 직장 동료와 술을 한 잔하며 엄마의 치매검사에 대해 하소연을 하였다. 내 일관된 생각은 오직 엄마가 왜 그런 검사를 받아야만 했는가, 였다. 마치 내가 이미 잘 아는 의사라도 된 마냥 멋대로 진단을 내렸다. 그런 내게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시고 혼자서 검사를 하러 가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너무 속상하다.”
아주 논리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며칠 후,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같이 갔고, 엄마는 경도인지장애라고 했다. 말은 어렵지만 다소간의 스트레스, 우울, 불면으로 집중력 저하 현상이 보이며 이는 치매라기보다는 신경과나 정신과 또는 수면클리닉 등에서 관련 상담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보건소 직원은 친절하게도 현재의 상태가 아주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두어 번 강조해줬다. 그럼에도 엄마는 말수가 줄어들었고 나는 말소리가 커졌다. 시덥지않다며 왜 무거워졌는지 모를 공기를 어깨 너머로 툴툴 흘려버리곤 고생했으니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서로가 이미 느끼고 있었다. 사람의 몸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의학적으로 명명해주는 진단은 고통이나 불편의 원인을 쉽게 알게 하지만 그만큼 쉽게 두려움에 노출되게 한다는 것을. 질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질리는 무언가가 있을 수밖에. 그리고 우린 조금 주춤대고 있었다.
뭐 머리 싸매고 있어봤자 의미도 없고. 이제 앞으로가 중요하니 다음 스텝을 고민했다. 엄마의 우울증은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 성향대로 병원을 가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직장 동료의 말 한마디가 계속 마음에 남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요즘 뭔가를 도전해보고 싶어하는게 많아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근데 그런 일시적인 취미 말고, 엄마도, 나도 가장 잘하는 걸 한번 같이 해보면 어떨까. 직장 때문에 계속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다 보니 원격으로라도 활동을 같이 해나가면 어떨까. 그런 고민 끝에 오랜만에 키보드 앞에 앉았다. 엄마는 알까. 생각 이상으로 우리가(우리는 삼 남매다.) 꽤나 엄마 생각을 아주 많이 한다는 것을.
엄마는 요리를 정말 잘하신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직접 담가 만드시는데 얼마나 맛이 좋은지 주변에서 퍼가기 일쑤다. 다 죽어가는 화분도 우리 집에만 오면 살아 나가는 걸 보면 엄마의 최고의 장점은 ‘정성’이 아닐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엄마가 지어주는 밥 한 그릇이면 어떤 것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정성’은 십수 년 엄마의 노력과 노하우로 더 알차게 익어가고 있다. 그 ‘정성’을 십분 다 담진 못하더라도, 천천히 내 글에 녹아들게만 한다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여태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하며 보낼지를 구상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잔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 엄마는 레시피만 쓰게 하려는 얄팍한 잔머리도 한 스푼 있다. 뭐 일단, 차치하고, 처음 시작은 엄마의 곰국 같은 미역국으로 해볼까 한다. 아빠가 절대 밖에서 저녁을 드시지 않게 하는 엄마의 국 솜씨는 미역국부터 시작일 것 같다.
나는 작가가 아니고 어머니 또한 흑백요리사가 아니기에 이 글은 상당한 시간을 가지고 흘러갈 것이다. 엄마의 템포에 맞춰 조심스럽게. (더불어 종종 엄마의 변덕에 따라 음식 순서가 바뀔 수도 있고 나의 노파심으로 글의 속도가 달라질 수도 있는 4살짜리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실력은 빈약해도 애틋한 의지를 봐서라도 엄마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