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만들고 딸이 써주는 책 2편
첫 번째, 미역국
1. 재료(5인분 기준)
- 미역 (돌미역이 좋음) 두 주먹!(50~60g 정도)
* 엄마는 계량을 안 하신다.
- 소고기(양지고기가 좋음) 300g
* 고기는 야무지게 소량 배분을 잘하신다.
- 양념: 간장, 소금, 다진 마늘, 참기름
* 양념은 늘 밥 수저로 떠 담는다.
2. 만드는 방법
1) 미역을 두 주먹 웅큼 충분히 물에 불린 후에 먹기 좋게 썰어 준다.
* 물이 따뜻하면 미역이 더 잘 불고 보통 20~30분 정도 불려야 한다.
2) 냄비에 소고기 300g을 넣고 강불에 갈색빛이 돌 때까지 달달 볶는다.
3) 고기가 언뜻 익은 것처럼 보이면 자른 미역과 참기름 2스푼을 넣고 미역 색이 조금 달라질 정도로 계속 강불에 달달 볶다가 물을 1.5L 정도 부어준다.
4) 간장 2스푼, 다진 마늘 1스푼을 넣고 강불에 끓기 시작하면 중불에선 5분, 이후엔 약불로 줄여 여유 있는 시간 내내 푹 끓여준다.
5) 기호에 따라서 소금으로 모자란 간을 하고 충분히 끓여준다.
3. 엄마만의 노하우
- 간을 간장으로 맞추면 감칠맛이 좋다. 다만, 간장으로만 간을 하면 국물이 까매지니 적당히 소금으로 보충이
필요하다.
- 사골을 고듯 한 시간 이상 푹 끓이면 끓일 수록 국물색이 뽀얗고 좋다.
- 양지고기, 돌미역은 오래 끓일수록 감칠맛이 더 좋다.
- 사람마다 기호가 있고 정량이란 없다! 국물을 좋아하면 물을 더 넣고 고기가 더 좋으면 고길 더 넣고 미역이 더 좋다면 미역을 더 넣으면 된다. 음식에는 정답이 없고 정성만 있다.
나한테도 미역국 해주는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미역국은 참 아리송하다. 재료도 간단하고 요리 과정에서 섬세한 칼질이나 똑 떨어지는 계량도 없는 생각 외로 손쉬운 음식인데, 생각만큼의 맛은 절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엄마는 툭하면 별 거 없다는 목소리로 “그냥 다 때려 넣고 달달 볶다가 푹 끓이면 끝이야.”라고 한다. ‘달달 볶는다.’는 엄마만의 표현 방법은 종종 내 머릿속을 달달 헤집는다. 하루 종일이다시피 끓여댄 곰국 같은 미역국을 그 짧은 한 마디로 축약하다니. 요약 능력이 우수하신 건 알겠지만 나에겐 고역이다. 조금만 집었다고 생각한 미역은 산더미처럼 싱크대를 가득 채워 불어 터지기도 하고, 충분히 끓였다고 생각해도 먹어보면 2%가 아니라 200% 밍밍하고 부족하다. 엄마가 제발 “별 거 없어.”의 의미를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이야기하면 좋겠다. [주부 9단]이란 말이 그냥 나왔을 리 없지 않은가? 인생을 나보다 20년 더 사셨는데 자꾸 “별 거 아니야.”라고 하시면 늦게 태어난 걸 탓할 수도 없고 몹시 억울하다.
근데 그런 엄마도 엄마를 찾고 있다니? 생소하다. 가끔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나에게 당연한 사실이라면 상대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야 하는데, 말만 쉽다. 미역국에서 몇 시간째 손을 놓지 않고 부엌을 바지런히 돌아다니던 엄마의 어깨너머로 작게 들려오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순간적으로 등을 돌려 딴청을 부렸다. 그때 내가 받은 느낌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어떻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당황, 민망, 어색, 걱정, 의구심 등등 해일같이 쏟아져 덮친 복합적인 감정들 중 콕 짚어 정답은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지금의 나는 여태까지의 엄마를 크게 안아줄 자신도, 충분하게 위로해 준 경험도 없다는 것. 나에게는 “난 어리고 경험이 없잖아!”라고 합리화할 사유가 충분하지만 엄마에게도 “나도 매 순간 엄마가 처음이잖아!”라는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 ‘부모님’과 ‘자녀’ 간의 균형은 평생에 걸치는 평행선일 수밖에 없는 걸까? 누구 하나 이기지도, 지지도 못하는 감정의 대치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하게 더뎌지는 것만이 답인 걸까. 너무 오랜 시간 정답과 오답의 이분법적 사고만 배워온 나로서는 ‘정답은 없다.’는 말이 너무 어려웠다. 괜한 생각들이 부글부글 뒤섞이는 미역보다 더 빠르게 미끄러지고 더 많이 불려질 때 엄마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부엌을 뒤적대다가 얼른 간이나 보라며 수저를 건넸다. 놀랍게도, 그 재료를 다 넣고 볶고 한참을 끓이는 동안 단 한 번도 간을 보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 생이 있다면 꼭 내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원통함, 분함을 꼭 되갚아주고 싶다는 엉뚱한 다짐을 했다.
- 너희 아빠 생각하면 간을 더 해야 하고, 널 생각하면 이 정도로 해야 하고. 아휴, 까탈스러워.
그럼 나한테 맞춰줘. 너무 짜게 먹는 거 안 좋잖아.
- 얘! 내 남편이야! 아빠한테 맞출 거야.
여자도 때론 여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이 많다. 도대체 그럼 간을 왜 나보고 보라고 한 거지? 황망하게 웃다 보니 문득 엄마는 정답이 없는 순간순간마다 정답을 아빠에게서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몇 십 년을 지겹게 투닥거리고 힘들다고 울면서도 결국 아빠는 엄마 음식을 찾고 엄마는 아빠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한다.
어쩌면 모든 가족이 다 평행선은 아닐지도 모른다. 바이오 리듬처럼 주기적으로 부모님의 선이 우리에게 휘어져 내려오고 있다. 여태 살아온 시간들 내내 안 맞다가도 맞는 것이 마치 미역국 간 맞추기처럼 우리 입맛에 따라 허리 휘듯 휘어지셨었음을 알아간다.
담엔 두부찌개를 꼭 하고 싶은데 엄마 의견이 어떨지 모르겠다. 왜냐면 아빠는 두부찌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자고 제안한 것은 치매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4월 말쯤이었고 엄마에게 컨셉을 설명한 이후 한 달 넘게 긴 장고 끝에 엄마의 바둑돌이 출발했다. 바둑을 잘할 줄은 몰라도, 처음부터 ‘악수(惡手)’ 혹은 ‘호수(好手)’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엄마는 요리 고수니까 ‘고심한 수(苦手)’를 두기 시작할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헛되지 않게 나만 잘하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