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에세이
“우리가 정말 우승했나봐.”
지난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마치고 처음 든 감정은 그것이었다. 기쁨보다는 얼떨떨함. 겨우 이건가? 라는 생각이 들다가갑작스레 끌어 오르는 감정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것은 아마도 어려웠던 지난 몇해의 기억을 안고 있어서일 것이다.
토레스가 떠나며 시작된 지하로의 여정.(실제 그는 헬기를 타고 첼시로 떠나버렸다는 점이 이 사건의 아이러니다) 그 여정을 돌이키자면 어느새 새 시즌의 반이 지나가버릴것만 같으니 생략해두자. 지금은 최고의 팀이 된 리버풀의 새로운 시즌을 바라볼 때다.
최고의 팀. 잔인한 축구의 세계는 이 영광스런 자리를 1년 이상 허용치 않는다. 더 섬세하게 말하자면 시즌이 보통 5월에 끝나고 새 시즌은 8월에 시작하니 3개월 정도의 시한부 왕좌를 허락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그 왕좌에 오른 팀은 다른 모든 팀과 아주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해야 한다. 최고의 팀을 ‘유지’하는 방법을 말이다.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 근래 보기 드물었던 규모의 도심 퍼레이드와 같은 축하 자리를 가졌고, 몇몇 선수는 국가대표 경기를 위해 나라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짧은 휴가와 이어지는 이적 시장. 새 시즌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어 줄 아주 중요한 스케줄이다. 작년 이적시장에서 리버풀은 반 다이크를 비롯해 케이타, 파비뉴 등의 주전급 선수를 모았고, 그 결과를 챔피언의 자리로 보답 받았다. 당시의 목적은 한 가지, “최고의 팀”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든 팀 리버풀은 최고의 팀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렇기에 이번 이적 시장에서는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목표를 가져야 했다. 이를 위해 팬들은 적당한 백업과 리버풀에 부족한 창의력을 높여줄 씽크빅 선생님을 모셔오길기대했다. 최고의 팀이 되었으니 그정도 투자는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대가 그렇듯 예상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다른 경쟁 팀들이 주전급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는데 비해 리버풀은 유망주라 불리는 10대 선수들을 몇 사면서 여유로운 이적 시장을 보냈다. 거기에 더해 스터리지와 모레노와 같은 선수는 계약을 마치고 팀과 이별을 고했다.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인내심 얕은 팬들의 성화가 이어졌다. 이들이 노한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는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팀들처럼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는 아직 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 큰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투자는 커녕 유망주 놀이나 하고 있으니 어쩌자는건가? 라는 팬들의 아우성은 이해할만한 외침이기도 했다.
물론 그럴려고 마음 먹었다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 위상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리버풀의 제안을 거절할 선수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대도시 사랑꾼들과 특정 팀의 DNA를 지닌 이들을 제외하고) 하지만 문제는 ‘유지’였다. 리버풀은 챔피언이 된 팀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니까 더 영입을 해야지!” 이렇게 말하고 싶겠지만 조금만 더 인내를 가져보자. 앞서 말했듯 리버풀은 이번 이적시장에서 다른 모든 팀들과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선행과제는 영광을 이루었던 이들에게 그럴싸한 전리품을 주는 것이었다.
옛 전쟁터의 장군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전쟁에서 이기면 비단이나 금화, 심지어는 땅을 선물로 받았다. 군주는 이러한 보상을 통해 유능한 장군의 충성심을 보다 단단히 끌어 안았다. 리버풀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이것이었다. 이를 위해 리버풀은 기존의 선수들에게 필요한 재계약을 해주었고 적당한 보상이 될 주급을 선물해주었다. 여기에 더해 리버풀은 그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으려 했다. 예를들어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사오는 것과 같은 일 말이다.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은 1분이라도 더 경기장에 서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꿈을 방해하는 것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노화나 부상 같은 것들. 그리고 또 한가지, 경쟁자의 등장이다. 스포츠에 있어서 경쟁은 더 높은 고지를 향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다만 경쟁은 때론 기존의 선수들을 흔들리게 하고 ‘팀’의 의미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그렇기에 선택을 해야 한다. 경쟁의 채찍질을 할 것인지 믿음의 당근을 줄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리스크의 크기는 같다. 우승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50%의 확률에 거는 도박인 셈이다. 그리고 이 도박에서 리버풀 클롭 감독은 믿음의 당근을 선택했다. 그의 선택덕에 기존의 선수들은 지난 시즌의 모습 그대로 항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도 갑판 아래로 내려갈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고, 갑판 아래에서 열심히 노를 젓던 선수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경쟁의 채찍을 맞으며 위를 향할 동력을 끌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안정된 팀웍, 더 높아진 호흡과 전술 이해도, 그리고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에 대한 공유. 이것이 이번 이적시장을 조용히 보낸 리버풀이 가진 무기이다. 이제 상대는 그 무기를 제압할 새로운 병력과 전술로 챔피언에게 도전을 하려 할 것이다. 이 싸움의 끝에 승리를 거두려면, 최고의 왕좌를 안은 안필드의 아성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선수들은 한번 더 보여주어야 한다. 여전히 휘황찬란한 전리품을 몸에 두를 자격이 있는지를 말이다.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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