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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

리스본 여행 에세이 #14. 파두

by 최동민




이름 모를 전망대의 미라도우를 가만히 지켜본다. 가장 먼 바다 뒤로 태양이 들어간다. 태양을 따라 들어간 이가 얼마나 많을까. 저 바다는 얼마나 많은 리스본의 그리움을 집어삼켰을까. 이를 세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래한다. 바다에 닿지 못한, 혹은 바다로 떠나가 버린 이들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반쯤 먹힌 해가 마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황금의 시간은 높은 곳에서 낙하하는 빗방울처럼 순식간에 바다에 떨어졌다. 동시에 내 고개도 아래로 떨어진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낮에 알파마 초입의 가게에서 받아둔 명함을 꺼내 들었다. 저녁에만 파두 공연을 하는 식당이었다. 그들이 해가 진 후에만 파두를 부르는 이유. 그것은 미라도우에 있다. 황금이 절정에서 빛나는 시간에 운명이나 그리움 따위를 노래할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리스본 사람들은 낮에는 미라도우를, 밤에는 그것이 삼킨 황금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운명을 노래한다. 그것이 바로 파두다.


포르투갈어로 '운명'을 뜻하는 말 파두. 대서양으로 배가 떠나고 또 들면서 시작된 음악이다.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불렀다. 운명은 그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몰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두는 이내 거리에서 거리로 전해져 높은 자리의 식탁에 도착했다. 바다의 나라에 태어난 운명은 높은 이들이라도 피할 수 없었다.



알파마에는 파두를 공연하는 식당이 많다. 대개 몇 가지 음식과 와인을 파는 식당인데 그곳을 '타스카'라 부른다. 공연이라고 하지만 입장 시간을 엄격히 지킬 필요는 없다. 그저 알파마를 지나다 생각이 나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된다. 그리움이 찾아오는 방식처럼 말이다.


타스카의 문을 열었다. 나를 안내해준 것은 긴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여인이다. 다행이 아직 공연은 시작되지 않았다. 여인이 준 메뉴판을 보며 괜찮아 보이는 와인을 주문한다. 오래지 않아 와인을 도착한다.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시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가게는 지하에 있어 뒤를 돌아보면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몇 명의 손님이 더 찾아오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식당의 불이 꺼진다. 그리고 잔잔한 빛이 무대(라고 해봐야 테이블 바로 앞의 빈 공간이다)를 비춘다.


나이든 남자 둘이 파두 비올라와 포르투갈 기타를 들고 들어온다. 튜닝인지 전조인지 모를 연주를 시작한 두 사람 뒤로 검은 드레스의 여인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앞치마를 하지 않은 모습이다. 타스카에서는 파두 가수가 점원을 겸하는 일이 많기에 놀랄 필요는 없다.

그녀의 목소리로 파두는 시작 된다. 바다로 떠나간 이를 그리워는 운명. 그 운명의 목소리는 매우 길었고, 불규칙하게 떨렸다.


"사우다드. 이 느낌을 아는 사람은 포르투갈 사람뿐이다.

그들만이 진정한 뜻을 알고 부르는 유일한 민족이다."


페소아의 말 그대로였다. 그리움이 담은 비애와 슬픔의 감정을 뜻하는 단어 '사우다드.'

그것을 아는 이는 포르투갈인뿐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끝이라 믿었던 바다를 시작점으로 항해를 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무수한 항해에 나선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인도, 중국, 브라질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우다드를 느꼈다. 버리지 못한 그 감정을 그들은 배에 실어 보냈다.

그렇게 테주강과 알파마의 항구에 각지에서 붙여진 사우다드가 도착했다.


누군가는 직접 그것을 가져왔다. 다행이었다.

다른 누군가는 바다에 먹힌 채, 사우다드만 담아 보냈다. 파두였다.

기다린 이의 손이 아닌, 찬바람의 봉투에 담겨 온 사우다드.

오래된 항구에서 그것을 받아든 이들의 심정은 검은 드레스 여인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여인의 떨림이 멈춘다.

잔잔한 박수 소리가 무대 앞으로 모인다.

천천히 무대의 조명이 어두워진다.

흡사 미라도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글 | 최동민

제작 | Studio 1.9.8.4

메일 | groscalin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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