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여행 에세이 #12. Duque Restaurante
리스본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잦게 걸음을 멈추곤 한다. 길을 돌아 나온 전차를 마주할 때 그렇고, 아름다운 수공예품 가게를 지날 때 그렇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온갖 요리를 하는 식당의 부엌 창문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호시우 광장 뒤로 펼쳐진 가파른 언덕. 그 계단 옆으로 작은 식당들이 가득하다. 아직 저녁이라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계단 옆 테이블에는 식사하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계단을 따라 오른다. 그것의 가파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식당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가 걸음을 더디게 한다. 겨우 계단 끝에 오르면 또다시 오르막이다. 길 양옆으로 작은 상점이 보인다. 아무 골목이나 들어선다. 그러면 만나게 된다. 그 옛날, 공작들이 앉은 테이블을.
간판에 ‘Doque’ 다섯 글자가 적혀있다. 포르투갈어로 공작이라는 뜻이다. 귀족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공작. 그곳에는 리스본의 젊은 요리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동선이 꼬일 법도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옆으로 돌아서고, 프라이팬을 머리 위로 치켜들면서 그들은 한 번의 부딪힘 없이 요리를 완성한다. 그때 가게 문을 열고 한 여인이 나온다. 머리를 질끈 묶고 긴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문 옆에 놓인 칠판에 오늘의 메뉴인 것으로 보이는 글을 적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메뉴를 다 쓴 여인과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식당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듯 가게 문을 활짝 열고는 우리를 맞는다.
식당은 이제 막 오늘의 영업을 시작해서인지 빈 테이블만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중 가장 안쪽의 자리로 안내를 받는다. 자리에 앉아 식당을 둘러본다. 리스본 골목길처럼 좁은 홀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동선은 옆으로 서야 겨우 두 사람이 지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공간이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주 앉은 일행보다, 옆에 앉은 타인과의 거리가 더 가까울 테이블 배치임에도 전혀 번잡하지 않았다. 마치 작은 무늬들로 빼곡히 장식한 예쁜 그릇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그릇에는 무엇을 담든 맛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괜한 모험으로 한 끼의 식사를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메뉴를 가져온 젊은 남자는 자신감이 넘쳤다. 간단한 추천과 설명을 부탁하자 다 맛있어서 무엇을 권해야 할지 어렵다는 듯 곤란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는 메뉴판을 열고 설명을 시작한다.. 가게는 기본적인 포르투갈 가정식 메뉴와 고기 요리로는 스테이크가 준비되어 있다. 해산물의 경우에는 더 까다로웠는데 종류도 종류이지만 요리법도 다양해 쉽게 고를 수가 없을 정도다. 메뉴를 하나씩 설명해주는 점원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나의 표정도 그와 같아질 수밖에 없다.
“다 맛있을 거 같은데 무엇을 먹어야 하죠?”
바다를 마주한 나라. 그곳의 요리사들은 언제나 자신이 넘친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바다에서는 매일 같이 신선한 재료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리스본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겐 어느 바다든 나아갈 수 있는 긴 해안선이 있고, 갓 잡은 해산물을 받을 수 있는 드넓은 테주강이 있다. 이런 조건은 더 먼 바다의 것들도 쉽게 리스본에 닿게 했다. 그중 하나가 향신료다. 그 옛날, 인도에 닿은 포르투갈인들은 그곳의 수많은 향신료를 배에 담아 테주강으로 들어왔다. 이 소식을 가장 반긴 사람은 누구였을까? 리스본의 요리사들이었을까? 아니다. 향신료 상자는 테주강에 도착하고 열리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상자 그대로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의 다른 나라로 향했다. 왜냐하면, 리스본의 요리사들은 향신료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들어오는 신선한 해산물. 그 탄력 넘치는 살집은 향신료를 필요치 않았다. 신선함을 두른 이의 무기를 구태여 감출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향신료 상자를 되팔아 돈을 벌었다. 그리고 요리사들은 대항해시대 이전처럼 그것을 요리했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이다.
설명을 다 듣고도 쉽게 결정을 못 하고 메뉴판을 바라보자 점원은 여러 요리가 조금씩 코스로 제공되는 메뉴를 추천했다. 그것이면 리스본을 대표하는 식재료를 맛볼 수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리스본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한정된 이방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메뉴였다. 그것을 주문하자 이번엔 술이었다. 그것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첫 잔은 ‘Small Beer’ 요리가 시작되면 상큼한 그린 와인 한 병.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주문을 마쳤다.
얇게 썬 소고기와 방울토마토를 곁들인 요리가 시작이었다. 어느새 테이블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여덟 명가량 되는 단체 손님도 있었다. 그들은 이곳이 익숙하다는 듯 금세 주문을 마치고는 흥겹게 와인을 나눠 마셨다. 손님이 가득 차자 언뜻 보이는 부엌의 열기가 순식간에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그곳에는 홀의 점원들처럼 젊은 요리사들이 가득했다. 비슷한 나이의 젊은 친구들이 모여 만든 식당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들 사이에는 어떤 경계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요리가 완성되면 웃었고, 실수로 그릇을 깨뜨리면 더 크게 웃었다. 홀이 붐비면 요리사가 거침없이 앞치마를 벗어 던지며 홀로 나왔고, 부엌이 바빠지면 홀의 누구라도 주저앉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들은 그렇게 작은 식당의 동선을 춤추듯 무너뜨렸고, 그 모습을 보는 내내 그린 와인병은 반 정도 줄어들었다.
대구살을 으깨 만든 튀김, 테이블에 놓자마자 올리브와 바다향이 넘쳐 올라온 조개찜, 대구살을 찢어 만든 샐러드, 콩과 채소가 곁들여진 요리, 튀긴 바게트와 함께 나온 진한 소스의 창자 요리, 거대한 새우와 해산물이 담긴 해물 밥, 그리고 꼬치 소고기구이까지… 코스는 끝없이 이어졌다. 배가 불러 이제는 끝인가 싶을 때도 아직 나올 요리가 남아 있었다. 같은 코스를 주문한 다른 테이블의 부부와 눈이 마주치자 그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배부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결국, 마지막 꼬치구이는 다 먹지 못하고 포장을 한 채 가게를 나섰다.
‘Doque’ 가게의 이름처럼 이곳에는 그 옛날 공작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공작의 식사를 책임지던 리스본의 젊은 요리사 역시 이곳에 있었다.
글 |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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