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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고양이 있어

네가 빼앗은 건 카드지갑뿐이야

by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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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앱을 열고 스크롤을 내리면 얼마 가지 않아 끝에 닿습니다. 그만큼 인간관계가 협소한 편입니다. 물론 핑계를 대자면 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인간관계라고 말을 하곤 하지만 주변에서 보기에는 네트워크가 빈약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아이이 도착을 기다리던 열 달의 시간 동안, 우리는 아이를 두고 많은 질문을 하고 상상을 하고 또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이가 자신의 어떤 모습을 닮지 않았으면 하는가?”였습니다. 이 질문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죠. “나 정도면 꽤 괜찮잖아?”라고 말할 만큼 자아가 강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수십 가지 롱리스트에서 최종 후보를 정해 숏리스트에 올렸습니다. 하나같이 쟁쟁한 후보들이더군요. 그래서 조금 더 고심을 한 끝에 선택한 것은 “내성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을 아주 싫어하는 것은 아니나 아무래도 살면서 불편한 점이 꽤 있었습니다. 대부분 사소한 불편함이지만 아이는 그런 것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또한 그것만으로도 해결되는 많은 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죠.


우리가 아는 유명한 소설가들. 그들 중 상당수는 저처럼 내성적인 인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유명한 작가가 될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인간관계가 좁은 이들이 많았죠. 내성적이지 않은 소설가 중에는 또 다른 그룹이 있는데 그것은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들입니다. 대부분 자아가 너무 높거나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죠. 그들 역시 인간관계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소설가 중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내성적이거나 괴팍한 사람도 일정한 온기는 필요했던 것이겠죠) 소설가 로맹 가리도 그랬습니다. 프랑스 사교계와 할리우드의 유력한 인사였던 그는 겉보기엔 넓은 인맥과 사회성을 갖춘 인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괘나 깊은 속내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두 번의 결혼을 통해 만난 레슬리와 진 시버그, 그리고 갈리마르 출판사의 대표 정도였죠.

그 역시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한 번은 고양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죠.

“비행 아동이라는 것은 개도, 고양이도 없는 아이들이야.”

그는 사람에게 있어 일정한 온기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그의 과거로 돌아가 보면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는 추운 땅에서 고생을 하며 결국 따뜻한 프랑스 남부 니스로 이주해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고양이의 털이 아닌, 고슴도치의 가시였습니다.

아니, 스스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말년에 가까워서는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니스의 따뜻한 햇볕이 그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겠죠. 그래서 그는 성장한 이후로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발길을 옮긴 곳이나 함께한 가족 역시 일정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요소들이었죠. 말하자면 추운 나라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온기를 찾아다녔다는 것입니다.


제가 절대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으로 “내성적 성격”을 고른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내성적인 이들은 필연적으로 온도가 낮게 살아갑니다. 물론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온도죠. 하지만 되도록이면 1, 2도 정도 높은 온기를 아이가 안고 살길 바랐습니다. 당신과 만나 살다 보니 그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유전이란 법칙은 멘델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나 정확해 아이가 그 성격을 피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는 일정한 온기보다 1, 2도 낮은 온도를 자신에게 적정한 온도라고 생각하고 지낼 것입니다. 1도 높은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그럴 때 아이의 첫 친구가 될 고양이 에밀과 로맹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햇볕을 찾아다니는 에밀과 로맹. 그들의 털에 잔뜩 쌓인 볕과 몸의 온기를 아이가 가까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익숙해지면 자연히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일정한 온기”라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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