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자정무렵 여행하기>의 최픽션 입니다.
오늘 우리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들이 찾았고, 지금도 찾고있는 한 서점으로 여행을 가보려 하는데요.
걷기 좋은 신발과 넉넉한 에코백을 들고 출발해보도록 하죠.
파리에 도착한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이곳 센강을 거닙니다. 센강은 좁은 폭 덕분에 강변 양쪽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죠. 이것은 행운지아 불행일텐데요. 목적지가 분명한 여행자에게는 불행에 가까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탄사에 더뎌진 걸음이 도착을 방해할 테니 말이죠.
물론 이 아름다운 강을 거니는 이들의 걸음이 예외없이 빨라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강변 사이로 ‘시테 섬’이 등장한. 그 순간입니다.
센 강의 중심에는 두 개의 자연섬이 있습니다. 그 중 ‘시테섬’은 이방인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하는 명소인데요. 이곳이 파리가 시작한 땅이라는 역사적 사실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섬에 서있는 노트르담 성당. 이것만으로도 시테섬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니까 말이죠. 이 웅장하고 역사적인 성당이 강너머로 보이는 순간이면 어떤 침착한 이라도 걸음을 재촉하게 됩니다. 지금 당신의 걸음처럼 말이죠.
물론 몇몇 예외적인 이들이 있긴 합니다. 예를 들면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같은… 1900년대 초, 예술의 도시 파리를 찾았던 작가들 말이죠. 이들은 웅장한 성당 대신 어떤 장소에 시선을 빼앗겨 다리를 건너기 전, 그곳으로 향했는데요. 맞습니다. 당신이 오늘 여행할 바로 그곳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낮은 물가와 집세를 찾아 파리에 도착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두고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잃어버린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헤밍웨이 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특파원 자격으로 파리에 도착한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수많은 동시대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그는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파티에 참석해 동시대 예술가들과 교류를 했죠. 그리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한 서점을 찾았는데요. 그곳이 바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입니다.
미국인 실비아 비치는 미국에 자신이 좋아하는 유럽 문학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문학만을 파는 서점을 미국에 차리려 했죠. 하지만 미국의 높은 집세는 실비아 비치의 꿈을 좌절케 했고 그녀는 미국에서 서점을 내는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신 그녀는 다른 예술가들처럼 파리로 시선을 돌리는데요. 장소가 바뀌다보니 계획도 완전히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미국 문학을 유럽에 소개하는 서점을 내는 것이었죠. 사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원래 위치한 곳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서점은 더욱 집값이 싼 파리의 뒷골목에 처음 세워졌는데 외진 곳이었기에 마찬가지로 가난했던 젋은 예술가들이 되려 편하게 이곳을 찾을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는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앙드레 지드 등 분야를 불문하고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일종의 살롱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문제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주요 고객이다보니 경영에 어려움이 닥쳤고, 결정적으로는 실비아 비치가 나치 장교에게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팔지 않겠다고 했던 사건이 발단이 되어서 나치에 의해 폐업하게 됩니다. 그렇게 거장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간판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죠.
하지만 다행히 그녀의 뜻을 이어간 이들의 노력 끝에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 시테섬에 다시 간판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같은 이방인들에게는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센강과 시테섬,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고, 서점의 옆으로는 동명의 카페가 생겨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센강을 거닌 피로도 풀 수 있기 때문이죠.
말 나온 김에 여기서 조금만 쉬고 갈까요?
이제 서점 안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죠. 이곳은 최초에는 회원제 도서 대여점 개념으로 운영이 되었습니다. 책을 살 돈이 부족했던 가난한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마음껏 책을 대여해 볼 수 있었는데요.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대부분 연체 회원이었다고 하고, 특히 제임스 조이스의 연체는 기록적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모여든 이들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서점의 평가도 높아졌습니다. 이렇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서점을 다녀간 예술가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누구나 이곳의 회원이 되어 헤밍웨이와 같은 회원증을 발급받고 싶어지죠. 그리고 운이 좋다면 헤밍웨이가 대여해간 책 대여증 뒤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기도 할거예요.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일반 서점처럼 도서를 판매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 회원 가입은 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치 그 시대의 이방인 예술가가 된 것처럼 서점 진열대를 둘러보도록 하죠.
미국 문학을 전하고자 했던 실비아 비치의 바람처럼 현재도 영어로 쓰인 문학이 다수 진열되어 있고, 소수이긴 하지만 타 대륙의 문학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곳까지 여행을 왔으니 책 한 권 사가고 싶다면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처럼 파리에서 활동한 잃어버린 세대의 작가들이 쓴 책을 사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리고 그보다 더 추천하는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사는 것인데요.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책이자, 엄청난 두께와 무게감을 자랑하는 책입니다. 이제 오늘 여행을 떠나기 전, 커다란 에코백을 준비해달라고 말씀드린 이유를 아시겠죠?
그런데 왜 꼭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율리시스>를 사는 게 좋을까? 궁금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잠깐 해드릴까 해요.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이 책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고향 아일랜드에서도 마찬가지였죠. 게다가 당시에는 금서로 지정된 책을 인쇄해주면 인쇄업자까지 벌을 받았기 때문에 조이스는 작품을 완성하고도 출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좌절의 순간에서 조이스를 구해준 이가 바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실비아 비치였습니다. 조이스의 팬이었던 실비아 비치는 스스로 출판사 역할을 맡아 <율리시스>출판의 모든 일을 해주었고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간할 수 있었죠. 그렇게 만들어진 책의 첫 판매처가 바로 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이기 때문에 이곳을 여행하고 기념할만한 책을 산다면 당연히 <율리시스>를 추천드리고 싶어요.
이 책이 어디있나 찾는것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서점 직원들도 자랑스러워하는지 <율리시스>는 가장 잘 보이는 진열대에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죠.
잠들기 10분 전, 침대맡에서 떠나는 게으른 여행 이야기.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들이 찾았고, 지금도 찾고있는 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떠나는
자정의 가이드는 여기까지 입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더 깊은 이야기는 다음 여행에서 이곳을 둘러보며 만나보도록 해요.
그럼 다음 자정 여행때 다시 만나도록 하죠.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