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과 불투명

더픽션뷰로 | Vol. 순수 박물관 | First Bureau Page

by 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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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투명과 불투명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좋아하는 장면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프로도 일행이 반지 원정대에 합류하기 위해 고향 샤이어를 떠나는 순간의 장면입니다. 누구의 대사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워딩도 아닐 것입니다. ("좋아하는 장면이라며?" 라고 말씀하신다면... 좋아하는 것도 흐릿해질 때가 많지 않나요? 정도로 변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여기까지가 내가 가 본 가장 먼 곳이야."

그 말에 네 명의 호빗은 걸음을 멈춥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봅니다. 평온만이. 기껏 소란이 일어난다 해도 '말썽'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일이 전부인. 그런 곳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진다는 것. 그 엄밀한 사실이 주는 두려움과 떨림에 네 명의 호빗은 잠시 걸음을 주저합니다. 물론 그것도 잠시, 네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이것도 정확히 기억나진 않네요.) 지금껏 가장 먼 곳으로 떠납니다. 이후에 이어질 모든 걸음처럼 말입니다.


저는 어쩐지 이 장면이 좋았습니다. 이유는 아마도 '보편성'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절대 반지를 파괴하러 가는 원정길 어디에 보편성이 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의 삶의 궤적은 완만하든 가파르든 거대한 모험의 길과 닮아 있습니다. 세발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떼는 순간, 초등학교 1학년 첫날. 부모님의 손을 놓고 강당에서 교실로 향하던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마음만 앞섰던 고백의 날들과 그런 나를 닮은 아이를 품에 안던 날들까지. 우리는 매일, 가장 먼 곳을 향해 떠납니다.


이제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현재 스코어로 보자면 제가 지금껏 가장 멀리 떠난 곳은 포르투갈입니다. 그중에서도 호카곶이라 불리는 대서양의 초입을 간 것이 가장 먼 발걸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 여행은 J와 함께 갔기 때문에, 홀로 가장 멀리 간 곳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 그대로 혼자, 가장 멀리 간 곳은 어디였을까. 그곳은 아마도 이스탄불일 것입니다.


러시아를 경유해 도착한 이스탄불의 새벽. 생전 처음 맡아본 냄새들과 익숙하지 않은 언어의 조각들. 그것에 벌써 질려버린 채, 저는 홀로 아타튀르크 공항에 내렸습니다. 긴 비행의 탓과 애매한 새벽의 시간 때문인지 그날의 이스탄불은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집중해야 겨우 무언가 보일 둥 말 둥이었습니다. 어쩐지 아직 마셔보지도 못한, 가이드북에서 흘끗 본 튀르키예의 전통 술처럼 말입니다.


'라크'라는 이름의 그 술은 포도 증류주에 아니스 씨앗을 넣어 다시 한 번 증류한 증류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소주처럼 투명한 모습이죠. 모든 것이 흐렸던 새벽의 이스탄불. 차에 올라 그 거리를 지나며 그 투명한 라크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라크'라는 술의 기묘한 특징 때문입니다. 도수가 높은 라크는 보통 차가운 물을 섞어 마십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차가운 물을 넣으면 그 투명하던 라크가 순식간에 우유처럼 뿌옇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아니스에 포함된 기름 성분이 물과 반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라크는 투명하게 만들어졌지만 불투명한 상태로 마시는 술인 것입니다.


이런 라크의 특별한 성질을 보며 튀르키예 사람들은 '진실'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라크 식탁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라크는 진솔한 대화를 위한 존재로 여겨졌죠. 그건 아마도 하얗게 변하는 라크의 모습이 속마음을 드러내는 우리의 마음과 비슷해 보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 정도 도수의 술이라면 진실되지 않은 모습으로 버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홍상수 영화를 본 외국인들은 "저 초록병에 무슨 마법의 약이 담겨 있길래 다들 진실을 말하는 거지?"라며 소주에 흥미를 갖는다고 한다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투명과 불투명의 이미지입니다. 보통 진실됨을 표현하자면 아무리 하얗더라도 속이 보이지 않는 뿌연 하얀색보다는 물처럼 투명한 상태를 말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라크는 되려 투명에서 불투명으로 변하니까 진실보다는 거짓에 가까운 술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튀르키예 사람들이 반대로 라크를 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튀르키예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인간의 마음이란 애초에 투명한 적이 없었다고. 잘 봐줘야 뿌옇고 더 잘 봐줘야 하얀. 그 정도 모습일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갑니다. 라크 식탁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나온 연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날 새벽. 이스탄불에서 보았던 그 뿌연 거리도 그 도시가 품고 있는 가장 진실된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계단을 내려오던 J의 모습이 어쩐지 뿌옇게만 보인 이유도.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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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픽션 뷰로' Vol.1의 주제는 <순수 박물관>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제목이자, 이스탄불에 실존하는 박물관의 이름이기도 하죠. 최근에는 넷플릭스에 동명의 시리즈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이 주제로 쓰일 에세이와 리뷰. 픽션과 오디오 로그까지. 오래지 않게 준비해 편지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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