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으로 가는 길에는 커다란 제방 둑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긴 하천은 내성천으로 예전에는 고운 모래밭으로 유명했었다.
지금은 영주 댐이 생기는 바람에 상류인 이곳은 모래밭보다는 거의 풀밭으로 뒤덮여 있다.
올해처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날에 이곳의 많은 지형들은 바뀌었다.
근처 둘째 삼촌네 하천 옆 참깨 밭은 지난번 폭우로 밭 전체가 휩쓸려 가버려서 지금 그곳은 물길이 휘두르고 지나가는 하천이 되었다.
내 어린 시절 이곳은 소풍을 자주 오던 곳으로도 유명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둑길에다 이팝나무를 조경 삼아 심어 놓지 않았고, 그저 키 큰 미루나무가 서너 그루 있었다.
그 아래 모래밭은 매우 곱고 반짝거려서 말 그대로 금모래, 은모래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건너 마을에 가기 위해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어느 날은 징검다리로 바뀌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나무다리가 오래되다 보니 위험하기도 하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떠내려 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 딸내미 농사짓는 건 저 징검다리 하고 똑같네.
생전 아버지가 했던 말이다.
징검다리, 좋은 말인가.
좋긴, 하루 쉬고 하루 일한다는 말이지.
농부가 그래서 되겠어. 매일매일 들여다봐야지.
엄마가 대신 나서서 해석을 해준다.
매일 같이 일하면 병 나. 엄마 봐, 그렇게 일하니까 허리도 못쓰고.
난 대충 일해서 대충 먹고살 거니까.
뭐, 니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 봐.
어느 날 제방 길을 걷다 보니 징검다리가 보이질 않는다.
다 어디로 간 거지.
지난번 폭우에 다 떠밀려 내려갔다고 했다.
그 단단한 돌덩이들을 밀치고 간 것은 센 물살뿐만 아니었다.
그곳에는 내 무모한 시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일 하지 뭐,
농사일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온 아버지에게 밭에 참깨 좀 베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더니 오늘은 더워서 못 하겠고 낼은 비가 온다고 하니 안 되겠고 모레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못하겠다고 했다.
더워서 못하고 추워서 못하는 게 아니다. 그냥 하기 싫었던 것이다.
가끔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매우 부지런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추 모종을 하우스에 정식해 놓고도 할 일은 태산이다.
우선 골마다 부직포를 깔아서 흙에서 옮겨오는 해충들을 막고 고추 모종 사이로 지주대를 박는다.
금세 자라는(하우스 꼭대기까지 자랄 때도 있다) 고추들이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지주대에다가 줄을 매는 작업도 해야 한다.
하우스 고추 같은 경우는 초반 줄 작업을 할 때는 손으로 엮은 줄 타래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도 직접 긴 막대기에다 실을 지그재그로 감아야 하는 수작업이 만만치 않다.
나는 주로 배달 음식을 시킬 때 남겨 두었던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는데 삼촌은 나뭇가지를 이용한다.
역시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을 또 배워둔다.
손 자체가 작다 보니 줄 타래를 만드는 것도 버겁다. 그리고 사이즈도 작아 고추줄을 맬 때는 주머니가 많은 조끼를 입고 그 안에다 여러 개의 줄 타래를 넣고 할 수밖에 없다.
고추는 초반 작업이 생각보다 많아서 한 번 미루게 되면 일이 겹쳐져 나중에는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골 사이로 까는 부직포를 하우스 옆쪽만 깔 생각으로 중앙은 비워 뒀었다.
하우스 안이라 한 여름이 되면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할 정도로 마르다 보니 중앙 쪽은 거의 마른 상태였었다.
하지만 올해의 자연재해로 물이 차는 바람에 다른 해보다 습기기 마르지 않아 풀이란 풀은 나 좋아라 하고 기세등등 자라기를 멈추지 않았다.
물론 고춧대를 뒤덮을 만큼 빽빽하게 숲을 이룰 정도로 풀들은 강했다.
"휴식은 게으름과는 다르다. 여름날 나무 그늘 밑 풀밭 위에 누워 속삭이는 물소리를 듣거나 파란 하늘에 유유히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존 러벅-성찰-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풀밭 위에 그냥 누우면 큰일 나는 현실이다. 살인진드기는 매년 사상자를 낼 만큼 위험한 존재다. 진드기를 걱정할 만큼 풀밭 위에 누워보는 여유로움은 가지지 못했지만 생각지 못한 휴식을 가질 때는 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이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날, 아니면 한낮 태양아래 일 할 수 없을 때 등등.
젊은 시절 아버지의 깨 베는 시간을 놓고 할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지만 그것도 아버지의 방식이었고, 지금의 징검다리 농법을 고집하는 것도 나만의 방식이다.
"느림의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며, 어떤 행동이든 단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급하게 해치워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가 있다.
피에르 쌍소-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브런치 글에서 잠깐 게으름의 미학에 대해서 누군가가 쓴 글을 본 적이 있었고, 존 러벅과 피에르 쌍소의 글을 인용해 보니 느리고 게으른 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기질처럼 여겨진다.
본시 느리고 게으른 자가 있고 어떠한 철저한 계산 속에 느리고 게으른 자, 그것은 또 다른 차이점이다.
삼촌들의 하루는 늘 새벽 3시경에 시작된다.
한 여름날에는 한 시간 정도 더 이른 기상을 하고 아침 농사는 8시가 되기 전 끝난다.
한때는 이 방식에 쫓아 가 보고자 몇 번 시도를 했었는데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잠을 설치게 되고 새벽 노동은 달려드는 벌레떼와 연신 해대는 하품으로 포기해야만 했었다.
새벽 농사는 아무나 못하는구나.
그렇다고 이른 아침에 시작한다 해도 몇 시간 채 하지도 못하고 해가 뜨니, 비닐하우스 안의 열기는 등짝을 있는 대로 익히고 있었다. 아무튼 몇 십 년 내내 익힌 삼촌들의 농사 방식은 감히 따라 할 것이 못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