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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과프로세코 Apr 05. 2020

새로 생긴 세 번째 빵집

완연한 봄날 주말, 엄마와 걷고 걸으며 보낸

오늘도 역시나 불안을 안은 채로 잠에서 깼다. 어젯밤늦게 잠들었는데도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잠에서 깼지만 몸이 일어나지 지는 않는다.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서 하는 아침 명상을 하고 조금 더 꾸벅꾸벅 졸다가 일어난다. 동생이 일어나 일터로 떠나고 나는 15일째 하고 있는 요가 챌린지를 끝냈다. Reset이라는 주제였는데 한 달의 여정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 남은 절반을 다시 재 시작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주제 같았다.


요가와 아침 명상까지 마치고 밖으로 운동을 하러 가자고 엄마를 재촉했다. 오늘은 논 길에서 러닝을 하는 날이다. 엄마는 과체중 때문에 몸이 이곳저곳이 아픈 상태이다. 직장에서 육체노동을 해서 고통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나는 러닝을 하고 엄마는 걷기 운동을 한다. 혼자 걸어 지루할 엄마를 위해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몇 개 다운로드하였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도 이런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느낌과는 다르게 1 km를 뛰는 시간은 점점 단축되어가고 있다. 나의 느낌과 현실이 따로 노는 것 같다. 그래도 기분 좋은 경과이다. 오늘은 주말을 맞이해서인지 닭장에 닭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그렇게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자유롭게 흙바닥에서 뒹구는 닭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 이 와중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지 한 마리는 등에 털이 뭉텅 빠져있었다.


5 km 반을 뛰었다. 엄마와 책임 없는 농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봄이 되고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부터 논 길에서 러닝을 시작한 나는 농부들의 행동을 조금씩 봐왔다. 지난해 썼던 거대 비닐을 다 거두어 하천의 둑에다 던져버리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 자연에 빚져 벌어먹고사는 사람들의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엄마에게 한 번 큰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나와 휴지를 주워야겠다고 했다. 엄마는 이걸 네가 어떻게 감당하냐고 했지만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동감하고 느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새로운 빵집이 생겼다. 같은 자리에 생기는 세 번째 새 빵집이다. 바로 옆에는 파리바게트가 있다. 새로 문을 연 그 빵집은 오랜만에 생긴 독립 빵집이라 반가웠다. 맛있어 보이는 빵이 많다. 엄마랑 연유 쌀 바게트, 크랜베리 스콘, 치즈 먹물빵 이것저것 골라보니 금세 쟁반이 꽉 찼다. 오픈 기념이라고 만원 이상 구매 시 계란을 12개 주셨다. 요새 계란을 하루에 2개 이상을 먹는 나에게 고마운 사은품이다.


파리바게트의 아메리카노 맛을 좋아하는 나는 옆 집에서 빵을 계산하고 바로 옆 파리바케트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엄마는 당이 떨어졌는지 흑당 라테를 원했다.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달기로 유명한 흑당 음료라 걱정이 되어 당도를 절반으로 줄여달라고 했다. 엄마는 타피오카 펄이 쫀득하지 않다고 했다. 버블티 전문점이 아닌 곳에서는 끓이지 않고 얼은 펄을 뜨거운 물에 해동시켜 음료를 만들기 때문에 맛있기가... 어렵다.


새 빵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체인 라이벌인 뚜레쥬르가 있었다. 두 빅 체인이 내세우는 빵의 종류는 물론 다르지만 빅 브랜드의 체인점 빵이라 비슷한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 생긴 새 빵집은 독립 상점이고 옆 집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빵의 종류와는 전체적으로 차이가 있어 서로 공생을 해도 괜찮다 생각이 들었다. 아, 처음 이 자리에 있었던 빵집은 빵굼터라고 독립 빵집이었다. 체인점이 들어왔다가 다시 독립 빵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에게는 반가운 변화이다.


러닝을 하고 난 땀이 점점 식어가자 그늘에 서 있으면 바람이 불어 추웠다. 엄마 조끼를 뺏어 입었다. 아파트 뒤의 언덕길에 벚꽃 가로수가 있다. 며칠 전부터 만개해 있는데 어제도, 오늘도 엄마랑 꽃길을 걸었다.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아름다운 봄의 풍경과 분위기를 누릴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분홍빛이 도는 흰색의 꽃무리와 하늘색의 하늘의 색 조합이 좋다. 분명 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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