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부분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물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집에 돌아와 둘이 와인을 마시는 중이었다. 이런 질문은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다. 언제나 더 나아지려고 하는 정성.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는 데 게을러지지 않으려는 태도 같은 것들. 그와 명절과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결혼식 생각이 났다. DIY 스몰웨딩. 처음부터 끝까지 거저 결정한 게 없다. 우리가 결혼생활에서 지키려고 했던 신념을 결혼식에 다 담았다. 그러니까 이건 결혼한 지 약 2년 만에 스몰웨딩 후기를 쓰기 멋쩍어서 적는 서론이다.
1. 신부와 신랑이 함께 하객을 맞이한다
내 결혼식에 헌법이 있다면 1조 1항은 이거다. 그 어떤 결혼식을 한다 해도(누구와 결혼한다 해도...!) 지키고 싶은 철칙이었다. 하객들은 신랑 혹은 신부를 보러 온다. 그런데 신랑은 입구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하객을 맞이하고 악수하고 포옹하는데, 신부는 대기실 의자에, 드레스에 파묻혀 하객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나만 이 풍경이 이상한가? 다행히 내 헌법에 동의하는 남자를 만나 함께 우리의 나라를 건설하기로 했다.
결혼식장 입구에서 신랑, 신부, 그리고 양가 부모님이 함께 손님을 맞았다. 반가운 친구가 오면 한 걸음에 달려가 안아주기 위해 웨딩드레스는 땅에 끌리지 않는 길이로 골랐다. 자연스럽게 면사포도 날개뼈 정도까지 오는 가벼운 걸로 택했다.
흔히 신부 대기실로 쓴다는 공간은 하객들을 위한 포토존으로 꾸몄다. 의자와 꽃을 가져다 뒀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하객들에게 선물로 줬다.
2. 신부는 혼자 입장한다
Why not? 내가 선택한 내 사람에게 성큼성큼 걸어가고 싶었다. 아버지가 남편에게 나를 건네주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서운해하시지 않아?" 내 계획을 들은 친구들이 오히려 걱정했다. 일단 내가 둘째라 언니 결혼식에서 신부와의 입장을 한 번 해본 아빠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써놓고 보니 좀 분하네.) 첫째라 개혼인 남편쪽이 마음에 걸린다면 걸렸는데, 신부 입장에 앞서 양가 부모님을 입장시키는 방법으로 부모님들도 이 식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양가 어머니들께는 부케도 만들어드렸다. "엄마들을 놀리네!" 하며 쑥쓰러워하시는 듯 했는데 결혼식 내내 쥐고 다니는 거 내가 다 봤다. 결혼식 뒤에도 고히 집에 갖고 가셔서 꽃병에 꽂아두셨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남편과 나의 입장곡 취향이 너무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잠시만.. 그렇게 사수한 나의 입장곡은 'She'. 영화 노팅힐 OST 말고 잔나비의 노래. "무지개가 떨어진 곳을 알아 / 내일은 꼭 함께 가자는 그녀 / 내 손을 감싸 쥐는 / 용감한 여전사여" "she 어떤 밤에는 그대와 나는 / 길을 잃고 헤매겠지 / she 걸음 맞춰서 걷다가 보면 / all of my life is you" 이런 가사는 어떤 노래와도 타협 불가다.
추가로 '버진로드'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대본에는 물론 결혼 준비 과정에서 입장로를 지칭할 때도. 그냥 입장로 또는 행진로라고 했다. 순결타령은 촌스러운 데다가 찾아보니 버진로드라는 말 자체가 영어권에서는 쓰지 않는 일본식 표현이라고 한다.
3. 청첩장 이름 순서는 '가나다' 순으로 한다
말 나온 김에 보자기카드에 한 마디 해야겠다. 2020년 당시만 해도 보자기카드에서 청첩장을 주문하면 자동으로 신랑 이름이 먼저 나오게 설정이 됐다. 시안 수정 요청을 해야 겨우 바꿔줬다. 그나마도 모바일 청첩장은 바꿀 길이 없었다. 고객의 소리에 순서 선택 가능하게 해달라고 건의도 남겼는데 이제는 바뀌었을는지.
아무튼 우리는 가나다 순으로 했고 그 결과 내 이름이 먼저, 위에 놓였다. 예비 시집에서 내심 언짢아하시진 않을까 좀 쫄았는데(인쇄 다 해놓고 쫄려서 더 쫄렸다) 놀랍도록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4. 결혼식은 가족의 탄생식이다
결혼식은 사실 암껏도 아니다. 결혼은 가족이 태어나는 일이다. 중요한 건 결혼식 이후다. 그래서 하객들을 대상으로 가훈 공모전을 열었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는지, 어떤 가치관을 강조하고 싶은지 조언을 구했다. 입장할 때 가훈공모전 부스(말이 거창하지 테이블 위에 종이와 펜, 가훈공모전을 한다는 안내문을 둔 게 전부다)를 안내한 뒤 2부 순서에서 추첨을 해 샴페인을 선물했다.
추첨한 가훈들 중 우리가 택한 건 '사과는 빠르게'. 미혼인 친구가 쓴 가훈이었는데, 걘 이게 결혼생활의 진리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신기한 일이다. '연애는 탱탱볼처럼, 결혼은 럭비공처럼' '곧고 밝게' 같은 명언들이 쏟아졌다. '양말은 세탁기에' 역시 가슴에 새길 문구라고 생각한다.
5. 성혼 선언문은 다 함께
우리가 결혼한 2020년 4월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이 나날이 세를 불리던 때였다. 물론 그때는 이렇게 하루에 2만명 넘게 확진자가 나와도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고 술을 마실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무튼 결혼식을 미루거나 아예 안 하는 것도 고민했는데, 나와 남편은 '세레모니는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다이어트 시작한다고 동네방네 소문 내놔야 주변의 협조와 감시에 힘입어 성공하듯이. 음, 비유가 너무 유치한가. 아무튼 가족과 친구들 앞에 잘 살겠노라 큰 소리 쳐놔야 잘 살 것 같았다.
세레모니 중 세레모니는 성혼 선언문.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각자에게 하고픈 말을 한 마디씩 한 다음, 성혼 선언문은 하객 모두와 함께 읽기로 했다. 이때는 우리가 부부가 될 수 있도록 소개해주신 은인을 무대로 모셔서 사회자로 삼았다. 자리마다 "OOO와 OOO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하는 문구를 뒀고, 축복과 다짐을 담아 소리내 읽었다. 이 장면을 친구가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줬는데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자기가 만든 영화를 보면서 자기가 우는 감독처럼.
이렇게 써놓고 보니 우리가 어떤 부부가 되기를 꿈꿨는지 새삼 잘 보인다. 평등하고, 유쾌하고, 다정하게 살기로 했지.
그리고 결혼 준비 과정은 '부부 간 갈등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살면서 이처럼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돈을 써볼 일이 있겠는가... 신부와 신랑이 결정할 게 수천 가지고 매뉴얼이 없는 스몰웨딩이니 판단이 더 어려웠다. 신랑과 상의 없이 축가자를 섭외한 뒤 준엄한 경고를 받았고, 이후로 상의와 조율 방법을 익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