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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an 31. 2020

활동가에 대한 글을 누가 읽을까?

<직업으로서의 활동가>를 시작하며

작년 초 김목인 님이 쓴 책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김목인 님이 음악가의 일과 일상을 일 년의 시간 동안 기록한 에세이였는데요,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은 대체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듣는 그 앨범이 만들어지기까지 음악가들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어요. 딱딱하게 음악가의 일을 정보처럼 전달하지 않고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이어서 음악가의 작업 틈틈이 음악가의 일상과 삶도 엿볼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시와 님도 잠깐 등장해서 더더욱 좋았습니다. 음악가라는 직업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관찰카메라 같았다고나 할까요.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표지입니다. 음악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인들이 자신의 일과 삶을 이렇게 담담하게 들려주는 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셍긱했어요.

생각해보니 영화나 소설 등에서 다양한 직업의 삶을 다룹니다. 노희경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고 방송국 제작진들의 일과 삶을 짐작해볼 수 있었고, '라이브'를 보면서는 지구대 경찰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죠.


그런데 과연 사회 운동을 하는 다양한 활동가들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은 없는 걸까요? 혹은 활동가들의 일과 삶을 소개해주는 책은 없는 걸까요?


물론 영화 <1987>이나  <런던 프라이드>를 보면 활동가들의 삶이나 일을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는 있지만, 그 영화들의 핵심 메시지는 활동가의 삶과 일이 아니라 각각 87년 민주화운동과 대처 시절 LGBT 활동가들과 광산 노동자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고. 활동가들의 일과 삶은 그 과정에서 살짝씩 엿볼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픽션이라서 그런지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는데, 이를테면 나는 강동원이나 여진구처럼 생긴 운동권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다룬 영화 <선택>에서처럼 너무 고고하고 범접하기 힘든 이들로 그려지거나, 아니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픽션의 재미를 위한 의도적인 왜곡도 있을 테고, 그 왜곡 속에 당연하게도 활동가(운동권)의 한 단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의 한 페이지. 낄낄 웃으며 봤지만 뒷 맛이 씁쓸했습니다. 운동권들이 이런 이미지로 비치는구나 싶어서요.

그래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활동가들의 일과 삶을 보여주는 책, <직업으로서의 음악가>의 활동가 버전을 내가 써보면 어떨까?


그러곤 바로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과연 누가 활동가들의 일과 삶을 관심이나 가질까? 얼마 전 친구에게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구체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쓰라고 해놓고, 저는 독자를 생각하지도 않고 글부터 생각했으니, 그 친구가 보면 '뭐야 겁나 잘난 척하더니 지는 바담풍 하면서 나한테만 바람풍 하라고 했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활동가들의 일과 삶을 보여주는 글을 쓴다면 누가 독자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그 독자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내용과 형식으로 글을 써야 할 테니까요.



첫 번째 독자, 나 자신

사실 제가 쓰는 대부분의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바로 저 자신입니다. 이때 두 가지 욕망이 충돌하는데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욕망과 독자로서의 욕망입니다. 활동가의 일과 삶에 대한 글의 경우,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제가 좋아하는 제 일-평화활동가에 대해서 정리해보고 싶은 욕구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며 이 일은 내 삶과 어떻게 만나는지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1 독자로서는 재밌는 글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활동가의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좋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없으면 다른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저조차도 안 읽을 테니 무조건 재밌는 글이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재밌기 위해 과장과 왜곡을 마구 사용하면 안 되겠지요.



두 번째 독자, 동료 평화활동가들

평화운동 단체들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의 일이 같지는 않답니다. 단체의 규모에 따라, 단체의 성격에 따라,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일의 내용과 형식도 많이 다를 거예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들은 세상 모든 평화 이슈에 대응해야 하지만 전쟁없는세상이나 다크투어처럼 작은 단체 활동가들이 하는 일들, 연말정산 처리하고 활동가들 4대보험 가입하고 보험금을 내는 일은 안 하겠죠. 교육을 주로 하는 단체와 직접행동이 중심이 된 단체 활동가들의 일이 다를 테고, 서울에 있는 단체와 제주에 있는 단체 활동가들의 일도 다를 거예요. 보도자료나 성명서를 많이 쓰는 활동가도 있고 연구보고서를 주로 쓰는 활동가도 있고 에세이를 많이 써야 하는 활동가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 평화활동가들의 일과 삶이 궁금해요. 다른 활동가들도 그러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담아 두 번째 독자로 동료 평화활동가들을 생각합니다.

정말 한 줌 밖에 안 되는 한국의 평화활동가들. 이들 중 몇 명에게 꼭 읽어달라고 요청할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사람들 간단한 인터뷰도 해보고 싶네요.


세 번째 독자, 사회운동이 궁금한 사람들

가장 막막하고 뚜렷하지 않은 독자들인데요, 사실 이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모든 사회운동은 자신의 정치적 주장에 동조하거나 동의하는 사람, 혹은 귀를 솔깃해하는 사람들을 늘려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이 무엇인지, 근거는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활동을 어떻게 왜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 사회운동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해요. 물론 잘하지 못하거나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요. 평화활동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소개하면서 평화운동에 초대하고 싶어요. 꼭 평화운동 활동가의 일로 한정하려는 건 아니지만, 제가 평화활동가니 아무래도 평화운동을 중심으로 글을 쓰겠죠. 걱정도 있어요. 과장과 왜곡 없이 우리의 일을 소개하면 과연 사람들이 '우와 저거 되게 힙해 보인다. 나도 저거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할까...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이죠. 하지만 일단 저 스스로 지금 일을 재밌게 만족하며 하고 있고, 그건 평화운동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매력을 활동가의 일과 삶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자신은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얼마나 꾸준히, 얼마나 자주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될진 모르겠어요. 아마 중요한 일들에 밀려서 맨날 미뤄두기만 할 수도 있겠죠. 그냥 부담 없이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적어도 첫 번째 독자는 있고! 두 번째 독자는 몇몇 사람들에게 강제로 읽힐 거고! 그러다 보면 세 번째 독자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며. 그래서 평화활동가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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