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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Aug 25. 2023

<병역거부의 질문들> 일본어판 서문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 2019년 가을 나는 일본 지바를 방문했다. 마쿠하리 멧세에서 열리는 무기박람회 DSEI 반대운동을 조직한 지바현의 시민단체와 연결되어 무기박람회 반대 집회에 참석하고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무기박람회 저항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나서 바로 코로나가 시작되는 바람에 만남을 본격적으로 이어가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나는 일본에서 무기박람회가 개최된다는 사실에 퍽 놀랐다. 일본이 평화헌법 9조를 갖고 있고, 공식적으로는 군대를 갖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로서 군수산업을 육성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육군, 해군, 공군에 경찰까지 각자 주도하는 무기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그중 공군이 주도하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박람회(일명 ‘서울 ADEX’)는 동아시아 지역 최대 규모의 무기박람회다. 내가 속한 전쟁없는세상은 격년으로 열리는 서울 ADEX에 반대하는 액션을 2013년부터 해오고 있다. 평화활동가들은 무기 산업이 죽음을 거래하는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산업이라고 지적하지만 한국 정부는 무기 산업 육성이 안보를 튼튼하게 하고 무기 수출을 통해 국익이 증가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무기박람회 반대 집회는 무척 흥미로웠다. 무기박람회 반대 집회가 처음인데도 400명이나 모였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바현에 사는 시민들이었다. 한국의 경우 무기박람회 반대 행동이 일본보다 오래되었지만 400명이나 모이지는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군대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 시민들은 한국 시민들보다 무기박람회에 더 민감한 건가? 아니면 반대운동을 조직한 지바현의 시민단체의 역량 덕분인가? 집회에 오지 않은 보통의 일본사람들은 무기박람회가 열리고, 일본 군수산업체들이 무기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에 대해 대체로 어떤 반응일까? 


한국과 일본은 이웃한 나라인 만큼 비슷한 면이 참 많지만, 서로 감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다른 면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군대, 징병제의 유무에서 발생하는 차이다. 내가 살고 있는 파주는 북한과 접경지역 도시인데, 길에서 총을 든 군인을 보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일본에서 길을 가다가 군복을 입고 총을 든 군인을 만나게 되면 대다수의 시민들은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한국은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모두가 군대에 가야 하는 사회다.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도, 스포츠 스타도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 18개월 동안 군복무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모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성소수자는 군대에 갈 자격이 없다. 트랜스젠더 군인이었던 변희수 하사는 성전환수술을 마치고도 자랑스러운 한국 군인으로 남고 싶었지만 국방부는 끝내 그녀를 군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군대는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군대 갈 자격을 사람들을 구분한다.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은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군대 갈 자격이 없는 2등 시민이다. 


반면 양심에 따라 군대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기를 쓰고 군대로 끌고 가거나 처벌해 온 것이 한국의 군대였다. 1945년 이후 2만 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전쟁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 2020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지만 징벌적인 성격이 강하다.


모두가 억지로 가야 하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군대, 한국의 징병제는 군사 안보적인 효용보다 어쩌면 군사주의를 훈육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강한 군대만이 안보를 지킬 수 있고, 강한 자(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등등)가 약한 자(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등)를 지켜주는 것이 평화고, 그래서 지켜주는 이들은 1등 시민이 되고 지킴 받는 이는 2등 시민이 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병역거부운동은 병역거부자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운동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징병제와 징병제가 만들어온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확장해오고 있다. 무기박람회에 반대하는 운동 또한 그중 하나다. 강한 무기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오래된 거짓말에 맞서 “강한 무기는 오히려 평화를 파괴하고 무기 산업이 번창할수록 군수산업체만 돈을 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한국과 일본은 가장 가까이에 있고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도 활발히 교류하는 나라다. 하지만 과거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배, 그 시기에 벌어졌던 인권침해와 전쟁 범죄 때문에 군사적 교류나 군사 공조가 활발하지는 않다. 나는 평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군사적 협력을 늘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비군사적이면서 평화적인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전망이 밝은 편은 아닌 거 같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 전 세계는 약속이나 한 듯 군사비를 늘리고 전쟁 준비에 몰두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발표에 따르면 2022전 한국은 464억 달러의 군사비를 지출해 전 세계 9위였고, 일본은 전년 대비 5.9%가 증가한 460억 달러로 전 세계 군사비 지출 10위에 올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중국과 대만 국경에서 갈등을 더 군사화되고 첨예화되고 있다. 이를 틈타 일본과 한국의 안보팔이 정치인들과 무기상인들은 전쟁을 통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나는 전쟁이 일어나는 데에는 보통사람들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전쟁을 막거나 중단시키거나 일어나지 않게 하는 힘도 보통사람들에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이 평화를 위한 교류와 연대를 넓혀가는 것이 동아시아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어렵지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평화를 위해 비폭력을 택하는 정의로운 양국의 시민들이 연결되는 데 조그만 역할이라도 하기를 바란다.  


일본어판 표지





1950년대 후반 한국군의 탈영병을 연구하는 모리타 가즈키 선생님께서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 주셔서 그래도 바다 건너 일본에서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모리타 가즈키 선생님이 정하를 통해서 연락을 하고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 찾아왔던 것이 기억난다. <병역거부의 질문들>을 번역하고 싶다고. 그 후 일본 출판사도 직접 연락하고 섭외했다. 


나야 뭐 내 책이 일본에 번역되어 출판되면 좋은 일이지만 과연 일본 사람들이 내 책을 읽을지 자신이 없었다. 모리타 가즈키 선생님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 군대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말씀해 주셨다. K팝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군대에 가야 해서 한국군대에 관심이 많다 하였다. '진짜사나이' 같은 예능이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었는데 드라마 'DP'를 보고선 한국 군대의 실상이 이런 거냐고 다들 충격받았다고도 했다. 한편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갈수록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가 결국은 평화헌법을 무력화하고 종국에는 일본도 군대를 가지는 나라가 될 거라는 걱정을 하는데, 그래서 병역거부운동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이유야 뭐든 좋으니 일본 독자들이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 


일본어판 서문을 써서 보냈다. 난 사실 일본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책 내면서 내 책이 외국에서 출판될 거라 생각해보질 않았으니 외국어판 서문을 어떻게 써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어찌어찌 일본어판 서문을 써서 보냈다. 일본과 한국이 가장 가까운 나라고 그만큼 활발히 교류하지만 과거사 이슈 때문에 군사교류는 하지 않는다고 썼는데.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한미일 정상이 함께 발표한 캠프 데이비드 선언으로 한국과 일본은 군사동맹을 가는 발판을 놓았다. 그래도 결론이 달라질 것은 없다. 평화를 위해서는 "비군사적이면서 평화적인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물론 서문에 쓴 것처럼 밝지 않은 전망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그래도 내 책이 일본에서 나온다니 기분은 좋다. 다른 나라 언어로 책 내고 그 나라판 서문 쓰고 그런 건 잘 팔리는 작가나 대단한 작가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한국에서는 <평화는 처음이라>보다 <병역거부의 질문들>이 정말 심각하게 안 팔리는데, 첫 책이 아니라 두 번째 책이 일본에서 출판되는 것도 신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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