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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Jan 09. 2022

남자 답지 못한 남자들

《병역거부의 질문들》《남성성의 각본들》북토크 후기 


《병역거부의 질문들》을 처음 실물로 영접한 날, 책을 받으러 간 오월의봄 출판사 사무실에서 편집자 선생님께 《병역거부의 질문들》과 《남성성의 질문들》을 함께 북토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드렸다. 땡땡책 협동조합 길잡이 독서회에서 허윤 선생님을 처음 뵈었고 그 뒤에는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글을 하나 청탁드린 적이 있었는데 1950년대 한국 소설에 드러난 병역기피와 훼손된 남성성을 포착하는 글을 통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드러내는 글을 써주셨다. 활동가와 연구자의 콜라보라는 면에서 그림이 괜찮다고 생각했고, 한국의 남성성의 기원을 추척하고 분석하는 일은 병역거부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두 책이 일주일 간격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으니 재밌는 이벤트가 될 거라 생각했다. 사회는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을 쓴 오혜진 선생님이 사회를 맡아주시기로 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허윤, 오혜진 두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의 명성을 빌어 《병역거부의 질문들》과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홍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기대감


어느 저자가 자기 책 북토크에 기대가 안 되겠냐마는, 이번 북토크는 유난히 나를 기대감에 부풀게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허윤, 오혜진 선생님과 함께 한다는 것. 나는 병역거부 운동이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남들은 어떻게 볼지, 특히 한국에서 가장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에게 병역거부 운동이 어떻게 비쳤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책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 첫 번째가 주는 강렬함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소재가 구체적이어서 그런지 《병역거부의 질문들》을 내고 난 뒤 주변인들의 반응은 첫 책《평화는 처음이라》보다 훨씬 접하기 어려웠다. 첫 책은 내가 부탁 안 해도 다들 SNS에 올려주고 내게 축하한다고 연락해오고 그래서 인상이 강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에 대한 피드백도 확실히 첫 책에 비해 줄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읽히는지 너무 궁금했다. 반응이 목말랐다. 재미없어서 안 읽는다면 그런 피드백이라도 받고 싶었다. 북토크를 하면 자연스럽게 참가자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니 그에 대한 기대감도 꽤나 컸다. 



명불허전


스물다섯 명 가까이 신청했고, 스무 명 넘게 참여하신 것 같았다. 북토크는 기대감을 충족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오혜진 선생님을 사회자로 섭외하고, 허윤 선생님과 함께 북토크를 한 것은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냈지만 칭찬을 백만 번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선택이었다. 


오혜진 선생님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도 되나 싶을 만큼 철저하게 북토크를 준비하셨다. 단순 사회자가 아니라 마치 기획자처럼 열성적으로 상세 프로그램까지 기획을 했다. 나는 그냥 오혜진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준비만 하면 될 뿐이었다. 매끄러운 진행은 말할 것도 없고, 중간중간 던진 질문은 핵심을 찔렀다. 특히 기억나는 질문은 병역거부 운동에서 페미니즘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이해한 질문의 요지는 대략 이랬다. "병역거부운동에서 페미니즘의 역할이 '여성 활동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에 그치지 않고, 군사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이 반군사주의 운동으로서 병역거부운동이 페미니즘과 만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 질문을 듣고 생각해보니 과연 그러했다. 우선 내가 군사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을 병역거부운동과 엮어서 상세하게 다루지 않은 까닭은 자신이 없어서다. 오혜진 선생님의 통찰은 매우 타당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걸 책으로 쓰자니 아직 내 언어가 부족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할 만큼 내 언어로 소화하지 못한 탓이다. 또 하나 오혜진 선생님의 지적(?)으로 깨달을 것이 있다. 나는 《병역거부의 질문들》에서 여러 차례 오리와 여옥의 큰 역할을 강조했는데, 물론 이 둘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만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내 친구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리고 그들이 응당 받았어야 하는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걸 나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둘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모를까 책에는 좀 더 건조하게 감정을 덜고 써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해도 둘에 대한 찬사는 충분히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거였다. 


허윤 선생님과 대담 또한 흥미로웠다. 허윤 선생님이 나에게, 내가 허윤 선생님에게 각각 질문을 뽑았고, 시간 상의 이유로 질문을 다 대답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허윤 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질문 하나 빼곤 다 답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허윤 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질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은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여군, 혹은 트랜스젠더군인 등의 복잡한 결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었다. 거칠게 나누자면 군대를 가기 싫다고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과 군대를 가고 싶다고 군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 개인의 권리로만 접근하자면 둘 다 지지할 수 있지만 안보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있는 이들. 나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예전에 변희수 하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페이스북에 쓴 문장 하나를 다시 기록해 갔다. "모두가 군대에 가야 하는 나라에서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이들과 아무나 군대 갈 수 없다는 사회에 대고 군인이 되겠다는 이, ‘모두’의 바깥을 꿈꾸는 우리와 ‘아무’의 경계를 허무는  변희수 하사." 분명 어느 순간에는 우리와 변희수 하사님의 다른 면이 부각되는 때가 올 거라 생각했지만, 현재의 군사주의 아래에서는 만나는 지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지금은 함께 할 때이고, 나중에 차이가 중요해질 때는 그때 가서 서로 비판하고 논쟁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질문에 답했다. 

내 질문에 대한 허윤 선생님의 답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병역거부운동과 '위안부' 운동이 가시화된 방식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허윤 선생님은 '위안부' 운동이 국민국가의 성원으로서 정상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시화된 반면 병역거부운동은 반대로 국민국가의 성원이라는 정상성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가시화되었고 이는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 말은 내게 묘한 위로를 주었는데, 병역거부운동은 늘 대중적인 인기나 지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가 해온 활동의 의미를 인정받는 것이 큰 힘이 되곤 한다. 



아쉬움


아쉬움은 전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탓이었다. 예정된 종료 시간인 9시를 넘어서 끝났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짙게 남았다. 


병역거부운동과 '위안부' 운동의 가시화에 대한 허윤 선생님의 대답을 좀 더 파고들어 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위안부'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은 데는 분명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기댄 측면이 있지만 이후 활동가들은 이 문제를 여성 인권과 전쟁에 대한 저항으로 위치시키려고 애썼다고 알고 있다. 병역거부운동의 경우 국가주의, 군사주의, 전통적인 남성성과 불화하며 등장했지만 강인화 선생님이 지적한 것처럼 캠페인 과정에서는 남성연대를 활용한 측면도 있었다. 이런 복잡한 운동의 맥락을 서로 비교해보고 싶었다. 

허윤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신 마지막 질문, 정체성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굉장히 맥락적인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북토크에서 다루기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활동가로서, 페미니스트 연구자인 허윤 오혜진 선생님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꼭 나눠보고 싶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봐야겠다. 

오혜진 선생님께서 시간 때문에 삼킨 질문이 무엇이었을지도 무척 궁금하다. 페미니스트 연구자의 시선으로 내 책을 봤을 때 어떤 의문점, 어떤 논쟁점이 포착되었을지. 물론 병역거부운동에서 페미니즘의 역할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주셨지만 그 질문만이 아니었을 거라는 기대가 짧은 시간으로 충분히 해소되지 못했다. 


북토크 참가자들 가운데서는 이런 기획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주신 분이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오혜진 허윤 선생님도, 한의영 임세현 편집자 선생님도 같은 생각이셨을 거라 믿는다. 우린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잘 기다리고 있다가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겠다. 어떤 형식으로든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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