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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 되는 법

짧은 리뷰

by 이용석

'서평가'에 대한 책인 줄 알고 읽었는데 속았다! 서평 잘 쓰고 싶어서, 서평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읽은 건 아니었다. 나는 대체로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책을 찾아 읽진 않는다. 뭐 내가 다 알아서, 오만한 생각에 그런 건 아니고 좋은 글을 쓰는 건 결국 기술의 문제보다는 좋은 삶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까닭은 나 또한 언젠가부터 서평을 꾸준히 써오고 있기 때문이다. 막 각 잡고 쓰는 서평은 아니다. 가끔씩 의뢰 받아서 쓰는 서평은 그렇게 쓰지만 내가 쓰는 대부분의 서평은 글의 완결성이나 논리적 구성 이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서평의 독자는 일차적으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내가 보려고 서평을 쓴다. 책에 대한 진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독후감이다. 예전과 다르게 갈수록 떨어지는 기억력 때문에 이제 나는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해 기록을 해야 한다. 읽고 난 뒤의 생각, 감정, 인상 깊었던 구절, 재밌다고 생각한 문장이나 정보, 이런 것들을 기록하지 않으면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책 읽고 나면 가능한 기록을 남기려 애쓴다. 잘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내가 나중에 찾아볼 용도로 정리하는 글들이니까. 지금 이 글도 마찬가지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 쓰는 게 어렵지도 않다.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쓰면 되니까. 남들은 어떤 서평을 어떻게 쓰나 궁금해서 읽었는데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이건 배신감이 아니라 의외의 발견 같은 기분 좋은 속아 넘어 감이다.



나는 이 책을 '서평가'에 대한 책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구체화시켜 추진하는 혁신가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서평은 그저 일종의 도구일 뿐, 저자 김성신이 해온 일은 새로운 길을 내는 혁신가의 일이라고 여겨졌다. 저자는 새로운 서평가를 발굴하고 키워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서평을 기획한다. 카톡 대화 형식의 서평이라니. 서평전문지들에 실린, 인문사회 책들의 묵직한 서평과는 너무나 다른 형식이 기발하다 느껴졌다. 그리고 저자는 아이디어만 뿜어내는 게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며 이런 새로운 형식의 서평을 연재할 서평가를 발굴하고, 그들이 서평을 연재할 수 있는 지면을 확보한다. 이런 추진력은 책상머리에서 글자만 읽는 지식인들에게는 볼 수 없는 것들. 새로운 생각을 즐기면서 그걸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추진해 내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발굴한 코미디언 서평가, 요리사 서평가, 탈북 소설가 서평가 같은 다양한 서평가들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도 서평을 매개로 저자가 해온 일들이, 그 일을 만들어 갈 수 있었던 혁신적인 사고가 더 흥미로웠다. 나라면, 내가 활동하는 분야에서 이런 새로운 생각들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 것을 구체화해서 시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며 읽게 되었다.


그래도 어쨌든 서평에 대한 책, 혹은 서평가에 대한 책. 내가 활동하는 분야에서도 서평과 접목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먼저, 브랜딩 전략으로 서평을 주목한 점.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마도 그 분야의 책을 집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책 한 권을 쓰는 데는 꽤 많은 시간과 공력이 든다. 이때 서평은 집필 이전의 단계에서 전문가로서의 브랜딩 전략을 펼치는 데 매우 유용한 형식이다.(19쪽)“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이거다!'하고 무릎을 쳤다. 저자는 브랜딩 전략으로 이야기했지만 사실 서평 쓰기는 브랜딩 전략인 동시에 좋은 공부 방식이다.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쓰기. 책 내용을 정리하는 서평이든, 자신의 궁금증을 밀어붙여 보는 서평이든 어쨌든 읽고 쓰기의 반복은 공부가 된다. 평화활동가들에게 서평을 강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화운동과 관련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공부도 되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평화운동에 대한 전문성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브랜딩도 될 테니까. 그리고 그 서평을 전없세 블로그에 연재한다면 금상첨화.


또 하나의 아이디어는 비평연대다. 젊은 서평가들을 발굴하고 조직하고 성장시키는 일종의 프로그램을 저자와 저자의 동료들이 해온 이야기가 책에 실려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지는 않고 가능하다면 중간지원조직 같은 데 제안해서 젊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비평연대를 구성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가들 중에서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활동가라는 직업이 알게 모르게 각종 글쓰기를 많이 해야 한다. 보고서, 기획서, 제안서, 성명서, 에세이, 르포 등등 독자가 다르고 목적이 다른 다양한 글을 써야 하는데 이걸 굉장히 포멀 하게 글쓰기 수업 방식으로 활동가 글쓰기 역량을 키울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비평연대와 같은 방식으로 선배 활동가들이 멘토 같은 게 되고 저연차 활동가들이 서로의 글을 같이 읽고 서로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 "우리 비평연대에는 단 하나의 강령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경쟁하지 않고, 한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뒤에는 언제나 날 전적으로 지지해 주는 '한편'이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든든한 마음으로 비겁이 없는 삶, 정의롭거나 용감해도 쉽게 다치거나 죽지 않는 삶, 젊은 지성들이 바로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122쪽)" 이런 류의 활동가 비평연대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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