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기획서를 하나 쓰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기획서를 쓰려면 2030 여성들의 언어를 알아야 하는데 나로서는 세대로도, 성별로도 접점이 없다 보니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40대 남성들의 감각이냐 하면, 그도 아니지만 말이다. 활동가들 중에는 2030 여성들이 있고 그들과 친하지만 사적으로 몇몇과 친한 것과 대중적인 기획을 해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니.
백지우사는 내란범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여한 여성 청년들의 이야기를 모은 인터뷰집이다. 최나현, 양소영, 김세희, 이렇게 세 명의 페미니스트들이 기획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부산대 페미니스트 졸업생 단톡방에서 남태령 대첩 지후 최나현이 말을 꺼냈고 양소영과 김세희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책을 내게 되었다고 책 말미에 담긴 저자들의 집담회에서 이야기한다.
광장의 목소리였지만 엘리트 현실정치에서 지워지는 여성 청년의 목소리를 담자는 기획 자체는 참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소수자, 술집 여자, 지방러, 고졸 비정규직 노동자, 지역 활동가, 기간제 교사, 정신질환 당사자로 이어지는 인터뷰이의 구성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저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인터뷰이 구성을 부러 이렇게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최종적으로 선정하게 된 인터뷰이들 중에는 서울 거주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인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지역이야 저희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다양하게 배치하려 했지만, 학력과 관련된 부분은 정말 초고가 완성되고 나서야 알았어요, 일종의 레이더가 작동해서 저희 같은 사람들을 찾아낸 게 아닐까 싶어요."(299쪽)
이 사회에서 누가 차별받고, 소외되고, 지워지고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알아차린 게 아닐까. 저자들이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여성이고 청년이기 때문에 가능한 구성이다.
이 책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세 가지 단어로 정리해 보면 만남, 취약성, 돌봄이다. 인터뷰이들이 탄핵집회 참여 경험 속에서 만남의 순간을 떠올린 것이 흥미로웠다. 평소 섞이기 어려웠던 어르신들과 만나고, 만날 기회조차 없던 농민들과 만나고,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이들과 만난다.
"시위 나오기 전에는, 어르신들이 '요즘 MZ들은 개인주의가 너무 심하고 자기 생각만 한다' 이러셨을 것 같고, 또 저희들은 어르신들 보면서 '대화도 안 통하고 대하기 어렵다' 이런 생각을 했을 거 같아요. 제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 공간 안에서는 그런 편견이 다 허물어지고 진짜 다 평등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되게 감동이었어요."(99쪽)
결국 폭력으로까지 번지는 갈등은 타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고, 두려움은 무지에 기인한다. 다들 알지만 선뜻 만나기란 쉽지 않다. 무작정 만난다고 될 일은 아니고, 정치적 감각이 열리기 되고 서로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져 있는 광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만남이 좋은 경험으로 기억되는 것은 만남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저는 광장이 커뮤니티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갈 수밖에 없는 장소라고 생각하는데요, 트랜스젠더가 지금 탄핵 광장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해요."195쪽)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언문을 읽었는데, 그분들이 한마음으로 저희의 말을 경청해 주시고,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게 느껴져서 정말 기뻤어요. 사실 청소년의 목소리가 사회에서 주목받는 경우가 많지 않잖아요. 그러데 그 순간만큼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어요."(129쪽)
백날 지워짐을 당했던 이들에게는 자신을 드러내며 집회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대화였을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때로는 발언을 하고, 사람들이 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때로는 의아해하거나 어쩔 때는 갈등도 일었을 것이다. 대화라는 게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 이들도 다른 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무엇이 이런 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을까를 계속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취약성' 덕분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사회가 취약한 것으로 인식하는 자신의 모습-우울증 당사자, 술집 여자, 성소수자, 고졸, 비정규직 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솔직하게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낸 존재들끼리는 대화가 된다. 양복 빼입고 쩌렁쩌렁한 목청으로 논리적이면서도 웅변적인 발언을 하는 정치인의 말을 들으면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나와 비슷하게 시시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안도감이 마음에 걸린 대화의 빗장을 열 수 있게 해 준 것이 아닐까. 강자의 취약성은 가리고 싶은 약점이 되지만 약자의 취약성은 정치적 자원이 된다.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연대할 수 있었고, 연대가 투쟁이 될 수 있었다.
"수다 떨기는 연대의 방법일 뿐 아니라 연대의 토대다. 각자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개인의 경험을 공공의 경험으로 발전시킬 수 있어서다."(272쪽)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즐겁다고 이야기한 신경림 시인의 말속에서는 못난 놈들은 서로 돌본다는 말이 숨어 있다. 이렇게 광장에서 만나고 대화한 이들은 자신의 곁을 쉽게 내어주고, 그 곁에 들어온 이들을 돌본다. 서로 돌봄을 경험한 이들은 관계가 정치가 되고 투쟁이 되는 것을 이해하기 마련이다. 취약성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은 결국 계급, 젠더 같은 사회적 모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는 일이고, 이러한 이들의 서로 돌봄은 상대의 취약성을 공격하는 사회 구조에 저항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내가 부족한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뭇 남성들이 그러하듯 혹은 오래 활동한 활동가들이 그러하듯 내 취약성을 진솔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내 취약성이 어쩌면 나의 약점처럼 느껴지고(나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면에서는 권력을 가지게 되었겠지. 우선 한국 사회는 나이가 권력이니) 내 취약성을 드러내는 게 전쟁없는세상이나 평화운동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공적인 자리에서는 나는 늘 취약성을 감추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는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할 수 없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2030 여성들이 평화운동에 많아지면 좋겠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나는 그들이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고, 알고 나니 그 방법이 살짝 두려워 자신이 없다. 자신 없다고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솔직하게 내 취약성을 드러내는 말하기, 취약성을 나의 정치적 자원으로 삼는 말하기를 노력해야겠다.
원래는 기획서 쓰려고 읽은 책인데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활동가 모드가 발동했다. 직업활동가들에게 대규모 광장 시위는 분명 사회 변화를 위한 거대한 에너지가 분출되는 장인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이 사회운동에 유입되는 중요한 기회다. 나야 뭐 이번 탄핵 집회에서 비상행동에 결합한 것도 아니고, 그냥 시민의 한 명으로서 열심히(그러면서도 체력과 몸을 아끼면서) 나간 것이 전부고, 전쟁없는세상 또한 성명도 내고 여러 행사도 기획하고는 했지만 비상행동에 활동가를 파견하는 등 아주 집중적으로 탄핵 광장에 결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광장의 에너지에 고무되었고, 특히 2008년이나 2017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매우 들뜨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광장 이후, 탄핵 이후, 이 책을 읽은 이후에, 사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들불처럼 일어난 다수의 힘과 에너지는 또 그만큼 급속히 꺼질 수도 있고, 기대했던 만큼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역풍이 불기도 한다. 2008년 촛불집회의 거울쌍으로 일베가 등장했다는 분석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모인, 특히나 정치적으로 각성한 2030 여성들이 사회운동을 떠나지 않도록 어떻게 조직해야 할까? 이들이 사회변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이 서평 쓰기 유난히 힘들었다. 어떤 책은 할 말이 없어서 서평 쓰기 힘든데, 이 책은 할 말은 많은데 그 말을 쏟아낼 내 언어가 없었다. 2030 여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언어는 생각의 그릇이자 개인의 정치적인 정체성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배우는 일은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러니 책을 읽고 머리로는 이해를 했어도 막상 글을 쓰려니 잘 되지 않는 것이다. 내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뭐 별 수 있나. 계속 읽어나가고 계속 배우려 노력해야지. 그러면서 기획서도 써봐야지.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를 위한 읽기가 가장 효과적인 공부니까. 몇 안 되는 나의 장점, 바로 존버하는 거 아닌가. 될 때까지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