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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기획 이야기

짧은 리뷰

by 이용석

나무연필 출판사에서 <동아기획 이야기>가 나온 걸 보자마자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대중음악사를 좋아한다. 감옥에 있을 때 <한국팝의 고고학> 1960년대 편과 1970년대 편을 재밌게 읽었고 출소하고 나서도 관련 기사를 보면 찾아 읽었다.


게다가 동아기획 아닌가. 김현식, 조동진, 들국화, 시인과 촌장, 봄여름가을겨울, 빛과소금, 김현철, 장필순, 이소라. 동아기획에서 앨범을 낸 뮤지션들은 그 자체로도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이름들인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기도 하다. 두 명, 조동진과 장필순은 하나음악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전에 동아기획에서 앨범을 낸 걸, 동아기획에서도 하나음악에서처럼 일종의 창작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조동진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알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동아기획 뮤지션들의 가사를 분석한 '4장 노랫말을 통해 살펴본 세계관'을 가장 관심 갖고 재밌게 읽었을 것이다. 대중가요를 들을 때 멜로디도 멜로디고, 보컬의 음색도 중요하지만 나는 가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들으니까. 노랫말이 아름다운 가사들, 혹은 이야기의 완결성이 높은 곡들, 창작자의 깊은 고뇌가 잘 드러나는 사색적인 노래들,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에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내용의 가사를 담은 음악을 좋아하니까.


그렇지만 이 책 읽으면서 4장보다 더 눈이 간 것은 '2장 동아기획의 역사'와 '3장 동아기획의 정체성'이었다. 당대 음반 산업계의 일반적인 생산, 제작, 홍보 방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간 지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요약하자면 80년대 초반까지도 실물 앨범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시설을 갖춘 음반사들만이 앨범을 낼 수 있었고, 기획사들은 음반사로부터 선수금알 받아 음반제작한 뒤 마치 저자가 책 인세 받는 것처럼 판매 수익에서 일정 비율을 나눠가졌다고 한다. 창작에 있어서도 음반사나 기획사에 전속으로 소속된 작곡가와 작사가가 통째로 곡을 만들고 마찬가지로 소속된 악단이 악기를 연주하고 가수는 노래만 불렀다고 한다. 새 음반이 나오면 TV 출연으로 홍보를 하고 이후 밤무대에서 공연해서 돈을 버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동아기획은 이러한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음반사를 통해 앨범을 만들긴 했지만 독립적으로 음반을 제작했고 유통과 홍보 및 배급까지도 직접 챙겼다. 그래서 TV 홍보보다는 초반에는 음악다방과 음반가게를 공략하다 나중에는 공연장 중심으로 홍보를 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동아기획의 음악 창작은 뮤지션들이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전속 작곡가, 작사가, 연주자들이 아니라 뮤지션들이 스스로 작곡하고, 가사를 짓고, 서로서로 앨범의 프로듀싱을 해주고, 세션으로 참여해 연주해 주는 등 창작 전반을 뮤지션들이 챙기면서 창작자로서 주도권을 가져갔고, 그러면서 기존의 틀에 박힌 대중가요가 아니라 창작자들의 참신한 고민이 담긴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직접 연주까지 했으니 공연에 강점도 있었고.


음악 업계 사람도 아닌데도 이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 까닭은 동아기획의 홍보 전략이 소수파의 전략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이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충성심 높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팬들과 함께 뮤지션과 기획사가 성장해 가고, 관성을 따르기보다는 혁신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다. 왜냐하면 평화운동 또한 모두를 설득할 수 없고 소수의 열성적인 지지자와 참여자로 힘을 내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이라는 상품을 파는 영리 기업의 전략을 비영리 단체인 평화운동단체들이 그대로 따라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자신만의 강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결속력 높은 지지기반을 형성해 나가는 전략은 분명 평화운동이나 소수자 운동과도 닮은 점이 있다.


그렇다면 TV(관성)가 아니라 음반가게와 공연장(혁신)을 공략하는 전략에 해당하는 평화운동의 전략은 무엇일까? 아주 폭넓게 국민 모두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회운동(혹은 정치적 의제)과는 다른 우리에게 혁신은 어떤 모습이고, 우리의 열성지지자들을 어떻게 조직하고 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내고 참여하게 하려면 우리는 그분들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영리가 아닌 비영리가 사람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며 제공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실질적인 삶의 변화? 아니면 정의로운 일을 함께 한다는 만족감과 자부심?


물론 동아기획의 성공은 단순히 홍보 전략만의 덕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음악적 역량이 뛰어난 뮤지션들을 모을 수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퀄리티 높은 음악을 창작해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뮤지션들의 음악적 역량에 해당하는 것이 활동가들에게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조직하고 실행하는 역량이겠지. 하지만 동아기획의 경우 공연이 가장 큰 홍보수단이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음악적 역량과 홍보의 전략은 서로 상호적인 요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실력이 출중하니 공연도 할 수 있고 공연을 거듭할수록 사람들이 욕구를 직접 체험하며 알게 되기도 하고 실력도 늘고.


이런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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