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주하는 남성성

짧지는 않은 리뷰

by 이용석

고백하자면 나는 이대남이라고 부르는 젊은 남성들(혹은 남성성들)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고, 세상에 관심 가져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그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내 일상생활에 이대남들이 없으니 더더욱 관심은 멀어졌다.


개인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일하는 전쟁없는세상 또한 남성성에는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대남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남성성'은 병역거부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때문에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는 남성성을 탐구하는 글들이 여러 편 있다.(대표적으로 손희정 선생님이 쓴 ‘역사적 남성성’에 도전하면서 시민권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을까? – 여성 영웅과 군사주의와 뭉치가 번역한 전쟁, 해로운 남성성의 정점이 있다)


전쟁없는세상뿐만 아니라 병역거부자들도 자신의 남성성을 중요한 화두로 삼는다. 병역거부자 현민은 <남성성/들>을 번역했고, 직접 쓴 <감옥의 몽상>에서는 신영복 선생님의 비롯한 진보 남성의 감옥살이를 남성성이라는 키워드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날맹이 쓴 석사 논문은 한국어로 번역된 건 없지만 핀란드 병역거부 운동의 남성성 연구다. 전쟁없는세상 블로그 기획 연재 [페미니즘과 나]에서 조은(나를 살피게 하는 힘, 페미니즘)과 타랑(어느 병역거부자 바리스타의 남성성/들)은 자신의 병역거부를 남성성에 대한 고민으로 풀어낸다.


그렇지만 이 관심이 이대남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단체의 행사나 캠페인, 하다못해 모금을 할 때조차 20대 남성은 우리의 타깃이 아니었다. 자원과 에너지가 부족하니 우리 입장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평화운동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은 젊은 여성들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병역거부 캠페인의 경우 입영대상자인 20대 남성이 주요한 행위자지만, 병역거부를 하는 남성들은 남성 동성 사회에 포함되지 않는 혹은 포함되지 못하는 존재들이니 이 경우에도 우리의 홍보는 20대 일반적인 남성을 향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주변에 병역거부자를 빼면 20대 남성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젊은 남성들에 대한 관심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서부지법 폭동을 보고선 화들짝 놀랐다. 정말이지 나는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보다 어떤 면에서는 서부지법 폭동이 더 놀라웠다. 그때 치앙마이에 머물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지난밤의 영상을 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무서웠다. 집회에서나 직접행동을 할 때 경찰과 여러 차례 대치하거나 몸싸움을 했지만 그때는 이런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 적어도 경찰은 법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할 텐데, 법이라는 게 가진 자들의 권리만을 지켜주는 불공평한 면도 있지만 아무튼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권력이라는 폭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 같은 거라도 있는데, 그런 것조차 없는 치들의 원초적인 물리력에 대한 공포였다. 서부지법 폭동을 보면서 느낀 두려움은 마치 철거촌에서 용역깡패를 처음 봤을 때 느낀 공포와 비슷했다.


서부지법 폭동을 보고 나니 이제는 이 해로운 남성성에 대해 나와는 조금 먼 일이라고 치부하거나 다른 바쁜 일들이 있으나 나중에 알아봐야겠다고 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기획한 책 <폭주하는 남성성>이 출간되어 기쁘게 읽었다.



1장 폭력의 연속선과 남성성'들'은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지도를 젠더화된 폭력-즉 남성성이라는 키워드로 그려준다. 이를 바탕으로 2장부터 5장까지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살펴보는데 2장 가장 일상적인 폭력,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을 제외한다면 3장 어떤 남자들과 딥페이크 성폭력, 4장 사이버레커와 여성폭력 사건들, 5장 '벗방' 시장의 탄생의 경우 모두 여성에 대한 폭력이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돈벌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고 동시에 참담했다.


6장 안티페미니즘 전략의 형성에서 음모론적 남성성의 등장까지7장 짤의 시대, 안티페미니즘으로 공모하는 루저 남성 정서와 정치 언어는 이러한 폭주하는 남성성이 어떻게 남성들 사이의 또래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지를 살펴본다. 유튜브를 주로 노래 들을 때만 쓰고, 커뮤니티는 엠팍의 한국야구 게시판(근데 여기도 제정신인 사람이 별로 없어서, 데이터 분석해 놓은 글만 본다. 혹자의 말로는 지구 최고의 야알못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데 일정 정도 동의한다)만 들어가는지라 나는 온라인 문법이나 문화에 약한 편인데, 온라인을 중심으로 안티페미니즘이 확산되는 과정에 대한 말끔한 정리되어 있어 좋았다. 특히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온라인 페미니즘의 투쟁 방식인 공론화와 소비자운동을 2021년의 온라인 안티페미니즘이 모방하고 '미러링'하면서 일회적인 '소비자운동'을 넘어선 지속적인 전략을 확립했다는 분석은 매우 흥미로웠다. 소비자운동의 파워와 한계에 대해서는 여러 고민을 갖고 있는데, 이걸 안티페미니즘이 차용했다는 생각을 못해봤기 때문이다.


마지막 8장 윤석열은 어떻게 극우 청년들의 우상이 되었나는 아마도 이 책의 기획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서부지법 폭동에 대한 이야기다.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부터 탄핵까지의 일련의 흐름을 각각의 젠더화된 실천의 역사성을 훑어보며 재구성한다. 모두를 놀라게 한 2030 여성들의 응원봉 시위의 역사적 계보를 멀게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촛불소녀와 '유모차'부대와 하이힐을 신은 '배운 여자'에서 시작해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의 '페미존'을 만들었던 페미니스트를 경유 하며, 또 한편으로는 2000년대 내내 케이팝을 틀고 행진했던 퀴어문화축제와 <다시 만난 세계>를 투쟁가로 자리매김했던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와 연결한다. 저항의 여성성의 반대편에는 2025년 1월부터 급부상한 '폭주하는 남성성'의 실천이 위치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우익 청년 운동의 핵심 요소로 기독교, 안티페미니즘, 유튜브와 커뮤니티 등 온라인 문화 세 가지를 호명하는데, 특히 우파 유튜버의 등장과 성장, 쇠퇴와 재발화를 윤석열의 등장과 당선, 추락과 계엄, 그리고 탄핵과 연결 지어 살펴본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극우'에 대한 진단이다. 저자 권김현영은 "2030 남성들 대다수가 '극우화'되었다기보다는 2023 남성 집단 내에서 '극우'의 의미와 영향력이 확장"(258쪽)된 것으로 보면서 "정치적 입장으로서 극우가 무엇인지를 정의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극우란 일관성 있는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타자를 적으로 취급하여 내집단의 동질성을 높이는 정치적 전략"(268쪽)이기 때문이다. 즉 "현대 정치에서 '극우'는 히틀러를 지지하는지 파시스트를 숭배하는지 트럼프를 지지하는지 윤석열을 지지하는지 여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배제하고 절멸하고 처단하고 수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진 자들의 세력화 과정을 통해 구성"(269쪽)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우 세력의 세계관은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힘을 군사적이고 절멸적인 방식으로 상상하는 데 기반하며, 힘에 의한 지배를 신념으로 삼는 군사주의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274쪽)


폭력을 통해 문제를, 사회 갈등을 해결하려는 욕망이 타자-특히 소수자에 대한 폭력으로 쉽게 번지는 사회에서 극우는 독버섯처럼 자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극우가 쉽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는 전쟁과도 아주 밀접한 사회다. 여성에 대한, 성소수자에 대한,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언제든 힘없는 이웃 나라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확장될 수 있다. 또한 군사적 수단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만큼 복잡하고 까다로운 대화보다는 전쟁을 통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욕구가 커질 테니까. 한국은 이미 무기산업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는 간접적으로 전쟁 침략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기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극우의 세력이 커진다면, 상상하기 싫은 미래가 펼쳐지겠지. 평화운동의 입장에서도 극우의 확장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를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동아기획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