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시즌2 리뷰
*스포일러 주의
먹방은 안 보는데, 쿡방은 즐겨본다. 맛난 음식 먹는 거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방송을 보면서 내가 따라 해 볼 수 있는 것들 따라 해보기도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식이란 게 그냥 식량이 아니라 그 안에 문화와 역사와 사회가 담긴 것이라 생각하는데 요리 프로를 통해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서 좋다. '한식대첩' 시리즈, '냉장고를 부탁해'를 재밌게 봤고 '흑백요리사' 시즌1도 무척 재밌게 봤다. 이런 맥락에서 '흑백요리사' 시즌2도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마지막 편을 보고 나니 이번 시즌이 주는 즐거움은 좀 색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과 요리 이야기가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에 대한 이야기, 다시 말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보람과 행복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편집의 방향도, 시청자들의 반응도 그렇다. 괴물 같은 요리실력을 보여준 요리괴물보다는 경지에 오른 이들의 철학과 태도가 돋보이는 순간들이 많았다. 57년 경력에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아 재밌다는 후덕죽 셰프라든지, 후배가 자신을 딛고 올라서기를 바란다면서 떨어질 때도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을 남긴 박효남 셰프, 자기와 대결하는 상대방을 위해 기도한다는 선재 스님,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자면서도 팀전에서는 가장 허드렛일을 자처했고 리더십을 보여야 할 때는 당황스러워하는 건 자기 역할이 아니고 솔루션을 찾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 손종원 셰프, 시청자들의 반응도 이런 셰프들에게 더욱 뜨거웠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편은, 쿡방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요리 과정만 보자면 개인적으로는 이번 시즌에서 가장 재미없는 에피소드였다. 대신 최강록 셰프가 두 심사위원과 나눈 대화, 우승을 확정한 뒤 나온 인터뷰 내용들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어쩌다 경연 대회에서 조림 요리로 우승한 뒤 조림을 잘하는 척을 해왔는데 자신을 위한 요리에서는 척을 하지 말자고 했다는 말이나, 자신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요리사가 아니며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주방에서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평소 어눌하면서도 독특한 화법에 약간은 주눅 들어 보이지만 요리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 최강록 셰프였기에 유난 떠는 겸손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말로 들렸다. 모든 업이 대체로 빛나지 않는 지루한 반복작업이 있다. 좋아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그 과정을 거쳐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니까 인생이지.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지루한 반복과정을 참고 견딜 수 있다.
최강록의 인터뷰를 필두로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한 마디씩 이어진다. 요리사로서 요리를 배우고,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감동들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졌다. 이들의 말에, 그 말을 하는 입꼬리에, 입꼬리에 담긴 감정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긴의 일에 대해 말할 때의 그 즐거운 표정과 감정이 너무나 강력하게 느껴져서.
그러다 문득 내가 해온 일들,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 과하게 출판노동에 의미 부여하고 마치 책 만드는 노동이 다른 여타의 노동과는 구분되는 대단한 일인 것처럼 말하는 업계 일부 동료들을 보면서 재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출판노동자들은 누구보다도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책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모여서 회사 흉을 보고 사장 욕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출판노동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출판계가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겪는다고 하면서도 망하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대표적인 고학력 저임금 업종이니, 편집자 영업자 디자이너로 성공한다고 큰돈 버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니, 정말로 책이 좋지 않다면 책 만드는 일을 오래 하기는 힘들 것이다.
출판업계만큼이나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다. 출판사가 아무리 박봉이라 해도 영리 기업, 시민단체 활동가들 중에서는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이들도 많다. 오죽하면 "인권단체에 인권이 없고, 복지단체에 복지가 없고, 노동단체엔 노동만 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퍼질까. 예전 운동권들은 잘 나가는 사람들이 직업 정치인이 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루트도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금전적인 보상도, 사회적 명성도 얻기 힘든 곳. 이 일을 좋아해도 버티기 힘들지만, 좋아하지 않는다면 시작조차 힘들다. 활동가의 삶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경제적으로 열악하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좋은 점도 많고, 무엇보다도 각 직업군의 열악함을 비교하는 방식으로는 세상이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게 활동가들의 일인데 열악한 점만 강조하는 건 자신이 하려는 일의 방법과 메시지가 충돌하는 거라 생각한다.
이야기가 샜는데 다시 돌아와서, 아무튼 활동가들은 거의 대체로 세상을 바꾸는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 세부적으로 직장(단체)에서 맡은 업무에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 변화를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의제를 개발하고, 정책을 제안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일을 좋아한다. 요리사들만큼이나, 출판노동자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더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나는 내 동료들의 표정에서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요리사들이 요리하며 행복하는 표정을, 자신의 요리에 만족하며 떨어져도 후회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때 자연스럽게 발산되는 기백을 본 적이 있는가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사람들은 그 업계에서 이미 성공하고 최고에 오른 사람들이니, 활동가 전반과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측면만 보자면 나는 우리 활동가들이 저 요리사들과 비교해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저렇게 즐겁지 못할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못할까? 왜 나는 내 동료들의 힘든 표정만 기억나고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은 좀처럼 떠올리기 어려울까?
여러 이유가 있을 거고, 그 이유에는 구조적인 문제부터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유들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데 노력하지 않는 문제들과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밝히고 해결방안을 찾는 일은 무척 중요하지만 흑백요리사 본 소감에서 논할 일은 아니고, 활동가로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흑백요리사 시즌2 감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뿜어내는 행복감과 만족감,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특유의 표정과 태도는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덩달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고 때때로 감동을 준다. 직업을 막론하고 그렇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운동이 성공하려면, 다시 말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감동받거나 즐겁거나 행복해지려면, 활동가들이 먼저 일하면서 행복해야겠구나 일하면서 행복할 수 있어야겠구나.
그렇다면 과연 무엇으로 활동가들의 행복을 만들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