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운동의 '후퇴'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인 논란에 대해 내 주변의 많은 활동가들은 넘치는 생각과 감정에 비해 말을 극도로 아꼈다. 이 참담한 악다구니에 끼어들 틈도 없고, 틈을 만들 여력도 없고, 보고 있는 것만도 버거우니까. 그러다 보니 던져야 할 질문들, 정말 필요한 비판과 논쟁은 더더욱 숨어버렸다. 진영논리에 입각한 왜곡과 음모만 판을 친다.
그 와중에도 묵묵히 해야 할 말을 쌓아가는 이들도 있다.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래군의 글과 평화학자 정희진의 글을 읽고선 지긋지긋하고 짜증스러운 상황에 지지 말고 나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두 글 모두 사회운동에 중요한 지점을 다루는데, 나는 박래군의 글은 활동가와 당사자의 관계를 성찰한 글로, 정희진의 글은 사회운동이 보편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마주하는 글로 읽었다.
활동가와 당사자의 관계에 대해 먼저 글을 썼다. 브런치 만든 후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글을 읽어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한다. 한마디 한마디가 더 신중해야겠다.
이번 글은 정희진의 글을 읽고 든 생각이다. 정의연이 걸었던 길에서 전쟁없는세상의 길을 살펴보고, 전쟁없는세상의 경험이 다른 사회운동에 전승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 다른 사회운동이 보편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에서 앞선 운동들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싶다.
사회운동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방기한 혹은 사회가 외면한 사람들의 권리와 목소리,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일이다. 사회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개의 경우 처음에는 목소리를 드러내고, 그로부터 권리를 확장하고, 마침내 보편성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보편성을 획득 방법은 다를 수 있는데 크게 보면 두 가지다. 기존의 보편 질서를 해체하지 않은 채 그 질서에 편입되는 방식일 때도 있고, 기존의 질서를 허물어버려 소외와 차별을 제거하는 방식일 때도 있다. 아무튼 성공한 사회운동은 외면당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가치와 권리가 사회의 보편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함께해나간다.
사회운동 초창기에는 캠페인을 위한 자원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돈이 없거나, 활동할 사람이 없는 것. 아직 사회에서 외면받는 이슈일 때 이런 문제는 생각보다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다. 그러다가 활동가들의 노력과 뛰어난 실력과 운이 더해져 운동이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될 때에는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돈과 사람이 없어서 문제였던 시기를 지나 돈과 사람이 모이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경향신문에 기고한 정희진의 글에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문제’가 ‘남성이 다루어야 할 큰 정치’로 이동하면 돈과 사람, 자원이 모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이전에는 여성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각 분야의 남성 연구자들이 몰려들었고 ‘자리’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운동으로서 군 위안부 운동의 변질은 이 지면에서는 생략하겠다.
나는 정희진이 생략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다. 물론 위안부 운동의 변질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고, 돈과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뒤, 다시 말해 사회운동이 보편성을 획득한 뒤에 발생하는 운동의 변질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병역거부 운동 이야기로 보편성 획득과 운동의 변질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 변질이라고 하니까 뭔가 되게 잘못한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회운동이 일정 정도 성취를 거둔 뒤에는 여러 상황과 조건이 변하는 게 당연하다. 변화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
사회운동이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말했듯이 모든 운동은 보편에서 탈락한 존재, 가치, 관념을 보편의 지위에 올려놓는 정치행위다. 다만 아웃사이더에서 보편이 되는 순간을 지나고 나면, 혹은 보편성을 획득하지는 못했더라도 유의미한 성취를 거두고 나면 운동을 둘러싼 여러 조건과 상황이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러면서 사회운동의 전략이나 운동이 가져야할 책임감 같은 것들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경우 많은 활동가들은 당장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느라 성취를 거두고 난 이후를 미리 준비하기 쉽지 않다.
병역거부 운동의 경우를 보자면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이 그 변곡점의 순간일 수 있겠다. 그전까지는 병역거부는 법을 어기는 범죄행위였다. 병역거부자들 스스로는 아무리 떳떳하고 당당해도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은 전과자일 뿐이었다. 병역거부 운동은 사법부에는 무죄 선고를, 입법부에는 대체복무 입법을, 행정부에는 의지를 갖고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가끔씩 부분적으로 협력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우리는 문제제기하고 국가는 답변(우리가 보기에는 핑계)을 하는 관계였고, 우리는 국가 시스템 바깥에서 시스템을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헌재의 결정으로 병역거부가 어느 정도 보편성을 획득한 이후 상황은 확 바뀌었다. 우리는 국회의원을 만나고, 국방부를 만나고, 병무청을 만나서 대체복무 법에 대해, 시행령에 대해, 제도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전히 날 선 비판을 하지만 헌재 결정 이전보다 협력하는 비율이 확 늘어났다.
이는 실은 운동의 성과이고 많은 사회 운동이 국가의 시스템에 날 선 비판을 하면서도 시스템 자체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회가 변화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스템에 들어가는 순간 운동의 가치는 심한 도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병역거부 운동도 마찬가지다. 전쟁없는세상은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다른 나라 사례를 적극 공부했다. 다른 나라를 보면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고 난 이후, 병역거부권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이후에 병역거부 운동이 목표로 했던 반군사주의운동은 오히려 쇠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오랫동안 병역거부 운동을 해오고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던 활동가 안드레아스 스펙은 독일의 대체복무 도입을 가리켜 "반군사주의 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완벽히 실패한 운동"이라고 말할 정도다. 독일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에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이후 병역거부는 '반군사주의'의 맥락이 약해졌다.
반군사주의의 맥락에서 병역거부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의 활동가들은 이 지점에 대해 토론하며 준비를 해왔다. 어떻게 하면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급진성과 운동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준비가 소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상황이 펼쳐졌고, 우리는 자주 갈등하는 순간에 놓였다.
헌재 결정 이전에 병역거부자들은 감옥에 갈지언정 그 양심의 진위를 의심받지 않았다. 병역거부를 싫어하고 대체복무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을 의심하거나 가짜 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헌재 결정 이후, 국가가 병역거부자를 심사하게 되면서 '가짜 양심'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병역거부자들은 전과자가 되지 않을 기회를 부여받는 대신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양심을 의심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병역거부 운동은 이때 어떤 입장과 전략을 가져야 할까? 그런 기준이 부당하다는 것을 계속 비판해야겠지만 당장 또다시 감옥행을 앞둔 병역거부자들에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운동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운동을 이끌어온 단체나 활동가들의 사회적 위상도 덩달아 높아진다. 전쟁없는세상을 처음 만든 2003년만 하더라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아무도 전쟁없는세상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방부의 공청회에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이 초대되고, 의원실에서는 중요한 내용을 전쟁없는세상과 논의한다. 병무청은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쟁없는세상에 조언을 구한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책임감도 커진다.
예전에는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옳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말 한마디가 수백 명 병역거부자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우리가 져야하는 책임도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들은 늘 갈등할 수밖에 없다. 운동의 가치를 지키는 일은 때로는 당사자들의 추가적인 희생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선택이든 내게 그러한 권한과 권리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반문하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군가는 비판을 할 것이다. 말로 비판하기는 쉽지만 실제 그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도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할 상황들이 늘어간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단협 타결을 눈앞에 둔 노동조합의 활동가들, 각종 인권 관련 법률 제정 운동을 해오며 입법의 마지막 고비만을 남기고 법안 통과라는 현실과 통과시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조항 사이에 놓여 있는 인권활동가들, 피해 보상을 주장하며 기업이나 국가와 오랜 기간 싸우다가 요구 조건의 상당 부분이 수용되지만 어떤 요구 조건들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당사자 운동 활동가들. 모두가 현실과 운동의 가치 사이에서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고민하고, 운동의 방향과 의미를 고민하고, 결정이 영향을 끼칠 당사자들의 삶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운동이, 혹은 활동가가 할 수 있는 것, 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의기억연대는 우리보다 먼저 이 상황을 지났고, 전쟁없는세상과 나는 지금 이 상황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우리보다 1년 뒤에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결정을 이끌어낸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조만간 이 상황에 놓이겠지.
갈등의 순간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는 사실 지나고 봐야 알 수 있다. 아니 어차피 선택하지 않은 길의 결과는 알 수 없기에 실은 지나고 나도 좋은 선택이었는지 온전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내 경험상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결국 결정과 판단, 그리고 그 책임을 운동에 참여하는 다양한 주체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결정해야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는 좀 더 많은 정보, 더 나은 판단력, 더 풍부한 경력을 갖춘 사람이 판단하는 게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좋은 판단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쁜 판단을 피하기 위해서다. 혼자서 내리는 결정은 그 사람의 오류를 교정하거나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다. 반면 여럿이 함께 내리는 결정은 서로가 서로의 오류를 잡아주기도 하고 서로의 한계를 보완해줄 수도 있다.
그리고 함께 판단하고 결정했을 때 자연스럽게 책임도 함께 나눌 수 있다. 책임을 나누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줄여 부담을 더는 효과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책임진다는 감각이 생기는 것이다. 이 감각은 어떤 결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지 혹은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지와 별개로 그 결정 이후에 다가올 또 다른 갈등과 결정의 순간을 대비하는 일이다. 당장은 미흡한 결정을 내리거나 변화까지 이르는데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갈등의 상황이 오더라도 나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기초 근육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