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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석 Feb 12. 2020

우리는 병역브로커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상담일



현역 말고 보충역 판정받고 싶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하아... 병역거부 상담 메일을 받고 한숨이 나왔다. 군대 가기 싫어하는 마음이야 백번도 더 이해하고, 안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안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전쟁없는세상은 사람들 군대 빼주거나 보충역 판정받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단체가 아닌데... 그런 방법은 알지도 못할뿐더러 우리의 관심도 아니고, 우리의 지향도 아닌데... 홈페이지에 있는 설명만 읽어도 우리를 단순히 병역브로커쯤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텐데...



가끔씩 이런 류의 병역거부 상담이 들어오곤 한다. 한 번은 병역거부로 난민 신청을 할 거라면서 이미 외국 공항에 도착했다고 난민 신청에 도울 될 자료를 다 보내달라는 메일을 받은 적도 있다. 아니 우리가 무슨 서비스센터인가, 맡겨둔 짐 찾듯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자료 보내달라고 하면 그냥 다 보내주는 건가. 우리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른다고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말 한 번 섞은 적 없는데 말이다.


이런 적도 있다. 자기가 병역거부 난민을 신청하려고 한다면서, 근데 비행기 표를 살 수가 없다고 우리 더러 티켓을 구매해줄 수 있냐고... 이 사람아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 다들 최저임금 받고 활동하는데, 그것도 단체에 돈이 없어서 최저임금도 주 5일을 다 못줘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데, 뭐 비행기 티켓을 사달라고?


화가 나는 상담도 있다. 한 번은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분이 자기 아버지를 설득해달라면서 나를 전화로 연결시켜준 적이 있다. 뭐 이런 상담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니. 대부분의 부모님은 최대한 예의 바르게 우리를 대하고, 더러는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라도 나중에 자식이 진짜로 병역거부를 하고 나면 우리에게 화를 냈던 것을 진심으로 미안해하시고 잘해주신다. 그래서 방심했었다. 그 아버지는 시종일관 우리를 무시하는 내용으로 말씀하셨다. 말투는 진중했지만, 감옥 갔다 오면 너네들처럼 전과자로 고생하며 사는 거 아니냐는 말을 예의라는 포장지에 싸서 했을 뿐이다. 참고 듣다 결국 못 참겠어서 나는, 올바르지 못한 대답을 했다.


"요즘엔 세상엔 다들 취직 안 되고요, 전과 있어도 취직 잘하는 애들은 다들 잘합니다. 병역거부자 중에도 변호사, 의사, 치과의사 다 있어요. 취직 못하는 병역거부자들도 전과 때문이 아니라 스펙 때문입니다." (지울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대답이다ㅠㅠ)


돌려 말했지만 당신 아들이 잘났으면 병역거부 해도 좋은 직업 가질 거고, 못났으면 전과와 상관없이 취직 어려울 거라는 말을 한 거다. 아무리 감정이 상했기로서니, 옳지 못한 말을 했고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어이없거나 화가 나는 경우지만 사실 힘든 상담은 아니다. 답이 정해져 있으니까. 정말 힘든 상담은 따로 있다.




일반적인 경우 상담은 내가 가장 자신 없어하는 일이고,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불행하게도 상담은 활동가들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다.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상담을 한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나 노무사들은 부당해고나 임금체불, 산업재해 같은 노동법 관련 상담을 하고, 여성단체들은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이나 성폭력 관련 상담을 한다. <성폭력상담소>처럼 아예 단체 이름에 '상담'이 들어간 곳, <사람마음>처럼 아예 상담이 주요 활동인 단체도 있다. 인권단체들은 국가권력이나 거대한 구조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당사자들을 주로 상담하는데, 인권단체에 상담 오는 분들 가운데는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어요"라는 말을 하는 분처럼 과대망상에 빠진 분들도 있다. 이 분들은 단체의 도움보다는 의료 지원이 더 절실한데, 단체 차원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더 마음 아프기도 하다.


상담의 내용도 제각각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일러주는 상담도 있고, 마음의 안정이나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목적인 상담도 있다. 어떤 상담은 피해자가 저항자로 거듭나는 것을 돕고 함께 싸우기 위한 상담도 있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일러주는 상담은 법률 상담처럼 변호사나 노무사가 중심인 단체 활동가들이 많이 하는 편이고, 인권단체들은 다양한 상담자의 포지션을 두루 해내야 하는 편이다.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전쟁없는세상도 상담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내야 한다. 병역거부자들에게 병역거부의 법률 절차를 알려주고, 병역거부자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해주며, 그들이 징병제와 군사주의에 맞선 저항자가 되도록 독려하며 함께 싸운다.


2015년 책방 만일과 함께 했던 진행한 찾아가는 병역거부 상담소. 병역거부 상담은 보통 이메일, 전화, 오프라인 상담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상담은 병역거부자들의 고통에 공감해주며 마음의 안정이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류의 상담이다. 법률 지식이나 정보는, 변호사들 만큼은 모르지만 병역거부 운동을 오래 하면서 기본은 알고 있고 모르는 건 그때그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병역거부자들이 자신의 병역거부를 시민불복종으로 해석하며 군사주의에 맞서고자 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은 나로서는 가장 재미있는 상담이다.


반면 평생을 한국 남자로 살아온 나는 확실히 감정노동이 서툴기 때문에 상담 오는 분들의 고통에 공감해주는 것을 잘 못한다. 친절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긴 하지만, 마음속 깊이 상담자들의 감정에 공감하는 편이 아니다.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라고 말하면서도 속마음에서는 '힘들지만 어쩔 수 없어. 너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야.'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고통에만 과하게 몰두하는 분들을 상담할 때는 '야, 너만 감옥 가니? 다른 병역거부자들도 다들 겪은 일인데 왜 그렇게 유난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혹시나 자기가 그런 사람 아닌가 오해하는 사람 없기를)


힘든 것과 별개로 어려운 상담도 있다. 병역거부를 하려는 분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그렇다. (정말 기막힌 사연의 당사자들이 있는데 그분들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이런 사례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조언이 현실적으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를 자각할 때, 무기력에 빠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우리가 무기력에 빠져버리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상담자는 더 심한 무력감에 빠질 테니까. 그렇다고 거짓 희망으로 상황을 눈가림 할 수도 없다. 그건 윤리적이지도 않고 전략적이지도 못한 현실도피다. 당사자는 늘 현실도피에 대한 유혹에 시달릴 텐데 우리가 그걸 부추기는 꼴이 될 테니. 결국 겪어야 할 고통을 함께 겪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상담은 굉장히 전문적인 기술이고 많은 경험이 필요한 일이다. 내 경우엔 병역거부 상담은 충분한 경험은 쌓았지만 상담에 대해 공부한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으니 당연하게도 전문성이 떨어진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활동가들이 상담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채로 상담을 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상담일은 활동가들을 소진시키기도 한다.


특히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을 상담하는 경우 그들의 고통이 상담을 해주는 활동가들에게 고스란히 축적되는 경우가 많다. 엄기호는 책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에서 고통의 곁을 지키는 활동가들의 고통에 주목하며, '곁의 곁'의 중요성을 역설하는데, 활동가로서 나는 이 부분을 정말 가슴 저리게 읽었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표지. 이 책이 활동가의 삶과 일을 조명하는 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활동가의 일과 삶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고통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상담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거리를 두는 편이다. 뭐, 원래 감정노동을 잘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기는 편이기도 하다. 이건 내 단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거리가 없다면 내 감정도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담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힘들 때면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떤다.


쓰고 보니 상담일을 너무 힘든 일로만 그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모든 활동가들이 나와 같지는 않을 거다. 어떤 사람들은 직접행동을 기획하는 일이나, 자료를 조사하고 찾는 일보다 상담일을 더 쉽게 느끼고 좋아할 수도 있다. 상담일을 힘들게 느끼는 사람들조차도 힘들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기도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어렵고 힘들면서도 재미와 보람이 있는 것처럼, 상담일도 그러하다.


내 경우엔 따뜻한 온기로 기억 남은 상담이 하나 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마쳐야겠다.


병역거부 상담은 주로 당사자가 요청해오거나, 아주 가끔 부모님이 상담을 요청해온다. 딱 한 번 병역거부자의 형이 전쟁없는세상에 전화를 해온 적이 있다.



제 동생이 내일 입영날에 병역거부를 하는데요, 여쭤볼 것이 있어요.



차분한 목소리는 예의가 넘쳤고, 신중했다. 그는 병역거부 절차와 병역거부자들의 수감생활, 출소 이후의 삶에 대해 차근차근 물어봤다. 전쟁없는세상에 상담 요청하는 사람들 중에는 인터넷에서 간단한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정보나 우리가 홈페이지에 정리해서 올려둔 정보를 하나도 보지 않고 거의 숟가락으로 떠먹야 달라는 식으로 질문세례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분은 몇 가지 질문만 듣고도 이 사람이 병역거부에 대해 얼마나 많이 조사를 했고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우리한테 굳이 묻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계시는데...'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차마 저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까지 형의 마음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더 확실한 정보를 구하려는 그 태도의 바탕에는 동생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다 찾아본 정보를 내 목소리로 확인한 뒤에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 그 동생이 실제로 병역거부를 했는지 아니면 포기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형이 지지하고 함께 있어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담일이 어렵다고 썼지만, 다른 일들에 비해 어려운 뿐이지 너무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전쟁없는세상과 상담을 하고 병역거부를 했습니다. 여호와의증인을 제외하면 병역거부자 대부분이 전쟁없는세상과 상담한 후에 병역거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역거부 상담은 언제나 환영하는 일입니다. 병역거부에 대한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은 언제든 전쟁없는세상으로 연락주세요.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http://www.withoutwar.org/) 둘러보시고 상담 요청해주시면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눌  있습니다. 또한 전쟁없는세상 모임이나 행사에 오시면 여러 병역거부자들을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있습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분들, 병역거부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주저말고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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