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모어 살롱 Dec 27. 2020

친구란 이름으로

올 해도 친구들과 계획한 송년회는 취소되었다. 지난해까지는 각자 바쁘기 때문에 약속이 미뤄지거나 외국에 있는 사람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할 때 취소되었는데 올 해는 모두가 시간을 맞춰봤지만 코로나가 기승이라 일찌감치 취소하고 각자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친구들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멀리 떨어져서 지내는 데 익숙하다. 가장 친한 친구들인 J, Y, I와는 중학교 2학년 때 만났다. 우리는 고등학교 입학 때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아직까지 우리는 각자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한다. 고등학교 입학 때 J는 태국으로, I는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Y는 나와 같은 학교에 갔지만 멀리 떨어진 반이 되어 함께하는 시간이 극도로 적어졌다. 


가장 감성적이고 예민할 나이, 우리는 가장 가까운 친구와 떨어져 생활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을 때라 해외에 전화하거나 문자 할 때는 통신 요금이 비쌌기 때문에 매일 하고 싶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학교 생활과 언어에 적응하던 친구들도, 난소 물혹 제거 수술을 하고 얼마 안 되어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왠지 이질감을 느끼던 나도 서로를 향한 그리움이 컸다. 간혹 국제전화를 하며 힘들 때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었다. 내가 고3 때 교통사고가 나고, 스무 살에 크게 폐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이 병원에 있는 내게 전화를 해 주었고, 고통스럽고 우울하고 슬픈 병원 생활에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J는 태국에서, I는 미국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Y는 간호학과에 진학하게 되어서 각자 더 바빠지게 되었다. 친구들이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올 때면 우리는 만날 수 있었고, 회포를 풀 수 있었다. 세세한 일상까지는 공유할 수 없지만 얼마나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는 것과 같이 반갑고 이야기가 통했다. 몇 년 전 Y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J도 한국에 들어와서 일을 하게 되었다. I는 여전히 미국에 있지만 SNS를 통해 소통하고 있다.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기술의 발달로 멀리 있을 때도 함께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소통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들과 만나면 언제나 중학교 2학년, 동네가 떠나가라 시끌벅적하고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깔깔대는 그때로 돌아간다. 나이가 들었다고 있는 척하지도 않고, 쿨해 보이려고 하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찌질하고 나약한 내 모습 그대로를 보고도 비웃지 않고 그대로 품어주고 어깨 두드려주는 이들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당장 나오라고 해서 속상한 일도 신나는 일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보따리를 쏟아낼 수는 없지만 언제 어디서나 나의 믿을 구석이 되어주는. 진짜 친구란 그런 것 아닐까.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눈치 보거나 계산하지 않고 진심을 꺼내 보여주어도 괜찮은 친구가 내게는 감사하게도 또 있다. 스무 살 때 재수를 하면서 독서실에서 만났던 언니들 또한 내게 나이를 뛰어넘어 인생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봄에 독서실에서 오며 가며 인사를 하게 되었고, 금세 친해져 점심시간이 되면 함께 도시락을 먹곤 했다. 수능 공부를 하는 나와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던 언니들은 마치 소울메이트처럼 모든 것이 잘 맞았고, 어느 관계나 마찬가지이듯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다른 부분을 마주했을 때는 피하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맞지 않는 부분은 조금씩 부딪히고 깎으면서 다듬어 갔다. 내가 처음 남자 친구를 사귈 때도, 언니들이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내가 미국에 갔을 때도, 다녀와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낼 때도 변함없었다. 내 인생의 가장 격동기였던 때를 함께 하느라 언니들은 나의 가장 못나고 모난 모습을 많이 보았고, 때로는 옆에 있기 때문에 소중한 것을 모르고 언니들에게 못되게 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주고, 잘못은 고치고 장점은 더 개발할 수 있도록 언제나 응원해주고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준 언니들은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다. 


다만 지금은 각자의 위치가 다르니 자주 만날 수 없어 아쉽다. 매일 만날 때도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다 집에서 몇 차례 전화가 와야 아쉽게 헤어지던 우리는 지금은 그때처럼 오래오래 수다를 떨지 못한다. 본래 얼굴 보고 이야기하던 버릇이 들어서 카톡으로는 마음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 예전보다 서로의 일상을 잘 알지는 못해도, 얼굴 보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해도 우리의 마음은 10년도 넘은 그 옛날과 똑같다. 서로의 위치에서 멋진 모습 이길, 언제나 행복하길,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우리는 함께라는 것을 잊지 말길. 친구란 이름으로 언제나 우리는 함께 만만치 않은 삶을 함께 걸어가고 있으니 언제든지 서로를 떠올리며 각자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다가 마음 놓고 대면해서 만날 수 있을 때 모두 다 털어놓고 신나게 수다 떨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리빨리의 시대에 천천히 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